김희건목사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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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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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자쓰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곳 여행을 갈 때 새 모자를 하나 사온다. 모자를 제조하는 분이 학생으로 있었을 때는 수시로 모자를 선물해 주셨다. 그래서 집 안에 모자가 무척 많다. 뉴욕에서 모자를 매매하는 친구가 있어 친구들이 모일 때, 모자 하나씩을 선물해 주어 또 모자가 늘어난다. 꽤 비싼 모자들이다. 지난 번 이사올 때 꽤 많은 것을 교회 단체에 기증하고 왔는데, 또 모자가 늘었다.
일상 중 사람들을 만날 때 대개 모자를 쓰고 나간다. 흰 머리를 가려 주기도 하고, 머리 손질 않고 바로 나갈 수 있어 모자가 편리하다. 오늘날에는 모자 쓰는 전통이 사라지고 있지만, 100년전만 해도 한국이든 외국이든 남자는 모자쓰는 것이 상식이었다.
삶의 한 부분이었던 모자가 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모자를 쓰지 않는 편리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100년전 서양 화가의 그림을 보면 남자나 여자나 모두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 모자가 그 사람의 멋과 풍채를 한껏 올려 주었다. 한국 어른들도 모자를 쓰고 젊잖은 풍채를 드러내 주었다.
오래 전 한국에 살 때, 집 안에 중절모를 쓰고 두루마기 입은 30대 초의 남자 사진이 걸려 있어 누군가 물었더니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갔다고 한다. 누나에게 들은 얘기로는, 일제 강점기에 파출소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본 순사에게 몹시 얻어 맞고 지게에 실려 왔다가, 얼마 후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얼굴 모습이 마치 내 얼굴을 보는 것 같아서 오래 기억된다. 그도 중절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불의한 것을 보고 못참는 성격을 내가 물려 받은 것 같다. 옛날 고등학교 시절, 국내 체육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고, 학교 운동장에서 배구 시합이 있었다. 그 시합을 구경하다가 반칙하는 사람을 보고 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
불의한 것을 보고 참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성미 급하다고 하는 것이 옳은지,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애매할 때가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어리석은 말이나 행동에 대해 책망하지 않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이나 삶에 대해서는 몹시 책망하셨다.
성전에서 가축들을 매매하는 장사꾼들에 대해 예수님은 얼마나 분을 내셨던고! 그 배경에는 가난한 예배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종교 지도자들과 장사꾼들의 담합을 몹시 책망하고 분을 드러내셨던 것이다. 성전 밖에서는 싸게 사 올 수 있는 제물을 성전 안에서 비싸게 팔고 제사장들과 뒷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그 예수님에게 왜 참지 못하고 화를 내십니까?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관대하시고, 사회 지배층에 대해서는 엄격하셨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강자에 대해 약하고 약자에 대해 강한자로 사는 것 아닌가?
불의한 행동이나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약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책망하면서, 무슨 장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침묵하면서 불의의 소득을 나누는 것도 옳지 않다. 불의한 소득을 얻기 보다는 빈 손으로 떠나는 것이 더 의로운 행동이라 생각한다. 모자 얘기를 하다 멀리 떨어진 얘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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