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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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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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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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까지 살아 오면서 마음에 기억되는 귀한 분들, 존경의 대상들이 있다. 중학교 건물의 계단을 오르면 슈바이쳐 박사의 커다란, 근엄한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교회를 다니면서 최초로 갖게 된 소망은 슈비아쳐 박사와 같은 의료 선교사가 되는 것이었고, 의대를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 덕분에 먼저 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나중에 눈이 적록 색맹으로 알려져서 의대를 못가고 신학의 길로 바꾸게 되었다.
중학교 담임 선생님 서상균 선생님은 서울 법대를 나오고 중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셨던 분이었다. 유모러스하고 잘 생긴 분이고, 실력도 출중했다. 소리 없이 나를 도우셨음을 뒤늦게 깨닫고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중학교 3학년 때 교회를 찾게 된 것도 그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한 표현이었다. 그 분을 생각하면 외로운 섬을 밝히는 등대가 생각난다. 이름없이 사셨지만, 한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큰 역할을 하셨다.
대학시절 ROTC 장교로 갈까해서 추천서를 부탁할 때 영문과 백락청 교수님과, 언어학과 김방한 교수님이 선뜻 써 주셨다. 백랑청 교수님은 서글서글하고 호탕한 성품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김방한 교수님은 어릴 때 살던 큰 집의 주인 극작가 김우진씨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ROTC를 포기하고 사병의 길로 갔다. 편한 길을 찾는 것이 옳은 결정이 아니라는 (순진한) 생각때문이었다.
장신대 신대원 시절은 실망이 컸던 때였지만, 박창환, 이형기 교수님을 알게 되어 보람이 있었다. 두분 모두 몹시 인격적이고 학자적인 품위를 보여 주셨다. Drew 대학 시절 논문 지도 교수 중 한분이였던 Pain교수님은 이형기 교수님의 논문이 뛰어났다고 칭찬하셨다. Pain교수님은 역사 신학의 교수이면서, 화요일마다 예배를 인도하시고 설교도 하셨다. 그분은 Drew 대학의 성자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었다. 그 시간은 영혼이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분은 이정용교수님이시다. 나를 Ph. D. 과정으로 불러 주시고, 돌보아 주신 분이셨다. 부족한 내 과제마다 항상 A학점으로 격려해 주신 분이시다. 그의 저서 Marginality는 신학계의 큰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모든 한국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인격자였고, 한국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해 주신 교수님이자, 큰 형님이셨다. 안타깝게 60의 나이에 부르심을 받아 일찍 떠나가셨다. 징례식 날, 온 한국 학생들이 그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슬픔을 표현하였다.
잊을 수 없는 분 중에는 Dr. Donald Dayton 교수님이시다. 복음주의 신학을 가르치고, 내 논문 지도 교수님이셨다. 항상 웃는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오셨고, 학생들에게 책을 공짜로 주기도 했다. 교수라기 보다는 형님과 같은 푸근한 인상을 가진 분이셨다. 박사 과정에서 논문 지도자처럼 중요한 자리에 있는 분이 없다. 이 교수님은 자상함으로 내 논문을 지도해 주셔서, 정말 힘 안들이고 졸업할 수 있었다. 나의 삶의 여정에서 이런 분들이 있어 그 모든 학업의 과정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어 하늘의 하나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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