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을 맞아
작성자 정보
- 김희건 목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학창 시절부터 계절에 몹시 민감했다. 봄에는 마음이 즐겁고, 낙엽지는 늦가을은 몹시 싫었다. 죽음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일찌기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바닷가에 나갔다가 눈 앞에서 한 친구가 익사했던 경험이, 늘 죽음을 생각나게 했던 것 같다.
그 후로 물가를 두려워했고, 죽음이 의식되는 삶을 살았다. 그 결과, 죽음에 대한 허망한 생각이 나를 교회로 인도했다. 그런 경험 후에도 늦가을, 겨울은 싫어하는 계절이고, 4월, 5월이 오면, 다시 살아난 느낌을 갖는다. 늘 찾아가는 뉴저지 히스토릭 공원에도 개나리 꽃들이 활짝 피었다. 왜 봄날의 꽃들은 노란 색이 많은지, 조금은 이해가 될 듯하다. 겨울의 어두운 분위기를 다 쫓아내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화씨 70도는 사람이 지내기 가장 좋은 온도이다. 이 온도를 몸으로 느끼면서, 오늘도 역사 공원을 걸었다. 옆 사람은 한 시간 가량을 뛴다. 대단한 열정이다. 나이들어가 달라진 것은, 이런 평범한 일상을 고통없이, 자유한 마음으로 맞아 들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감사의 마음이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와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한다. 그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순간 순간 우리를 붙드시는 손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사실이 나이 들어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우리의 하루 일상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나는 무엇보다도 걸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한다. 사람이 걸을 수 없을 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옆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평범해 보이는 이 보행의 축복을 마음으로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걷기를 힘쓰는 것 같다. 바람은 부드러운 비단처럼 얼굴을 스치고, 하루의 일상을 평강 중에 걸을 수 있다는 것, 이 만상을 보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감사로 다가온다.
어서 속히 저 중동 땅의 전쟁이 종식되고, 평강의 삶을 다시 찾기 바란다. 피해 복구에도 엄청난 돈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누가 불지르고 사라지면, 그 이웃이 그 불을 꺼야 하는가? 국제 사회에 법과 질서가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각자도생, 강자의 법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가?
이런 때일수록 인간애, 공의, 양심의 가치를 세우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이 더 고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이나, 나라의 운영은 인간만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이를 조용히 지켜 보는 하나님의 눈 앞에 삶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컸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살아온 삶은 언젠가, 다 설명하고 그 값을 치루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한다.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 내리라"는 말씀도 알아 두어야 한다.
자기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 희생에 보답하는 삶을 살라 하신다. 구약 시대에는 살륙을 정당화했을지 모르지만, 신약의 복음은 평강의 복음, 화평의 복음이다. 내가 먼저 그 화평의 삶을 찾고, 그 평강의 삶을 이웃 속에 나누는 것이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다. 그 평강은 그의 온전한 뜻과 통치 속에 사는 삶의 열매인 것도 함께 전해야 할 것이다. 결코 총과 폭탄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