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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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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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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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월이어도 한국에서 경험한 사월과 뉴저지에서 경험한 사월이 다르다. 여기 뉴저지는 사월이 되어도 쌀쌀함이 남아 봄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였다. 근래 들어, 날씨가 온화해 지고 곳곳에 목련과 벚꽃들이 피는 모습 속에서 봄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런 사월을 맞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하루 하루 감사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사월은 "사월의 노래"에서 말하는 대로 "생명의 계절"이다. 왜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이라고 노래했을까? 그 눈물은 감격의 눈물일 것 같다. 사월이 좋은 것은 또 다른 봄의 계절 오월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치 통장에 두둑한 발란스가 있으면 그런 기분을 느낄까? 오월이 되면, 바람에 날리는 꽃씨처럼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이 나이에 그런 기분을 갖는 것도 신기하다.
그런 데 한 세기 전 영국의 시인 T.S. Eliott는 그 유명한 황무지 (the Wasteland)에서 이 사월을 가리켜 "가장 잔인한 달(the cruelest month)"라고 했다. 이 생명의 계절이 어떤 사람에게는 잔인한 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일까? 이 생명의 계절을 생명의 계절로 맞지 못하고, 잔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시인은 독특한 통찰과 밀집된 언어로 그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같은 범상한 사람은 다 알지 못하는 내용을 품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시가 나온 시대는 1920년대 초로, 일차 대전 후, 혼돈 속에 살던 시대이다. 서구 문명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경험한 사람의 표현이다.
그런 배경에서 그 시대는 생산할 수 없는 어부 왕의 전설을 표현한 것이라 할 것이다. 생명의 계절은 젊은 청춘들에게는 반가운 계절이지만, 생산이 단절된 왕의 입장에서는 이 계절이 오히려 잔인하다는 것이다. 그 당시 서구 문명을 생산할 수 없는 왕의 모습과 동일시 했던 것 같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무엇을 보고 생명을 말할 수 있을까? 여기 저기 전쟁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움추리고 살고 있다.
이러할 때, 자연의 변화, 생명의 환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갑고 감사하게 여겨진다. 얼마 후에 또 지나가겠지만, 눈 앞의 현실이 주는 감동과 감사를 느끼고 사는 것이 지혜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과 정서는 평소 무엇을 주목하는가의 열매로 갖게 된다. 나같으면, 눈 앞에 있는 아름다운 꽃들, 귀에 들리는 아름다운 음악, 누군가의 선행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기 원한다. 얼마 후면 지나가는 것이기에 더 아쉽고 고마운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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