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인 불편함, 본질로 가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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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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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불편한 점은 집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집주인이 세탁 시설 설치를 허락하지 않아 벌써 8년째 매주 동네 코인 세탁소(Coin Laundry)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생활도 익숙해질 법한데, 여전히 번거로울 때가 많습니다. 물론 아내가 전적으로 세탁을 도맡아 하기에 제가 불평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세탁기가 없는 삶이 주는 사색의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세탁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량 생산과 상하수도 인프라의 확충에 힘입어 각 가정에 빠르게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흔히 전기 세탁기의 등장이 가사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해방과 여유를 선사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자 루스 슈워츠 코완(Ruth S. Cowan)은 이를 ʻ가사 노동의 역설’이라 설명합니다.
세탁기가 보급되면서 개별 세탁 시간은 줄었을지 몰라도, 가사 노동의 전체 시간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마을 빨래터에서 이웃과 함께하거나 대행업자에게 맡기던 일이 전적으로 ʻ가정 내 주부’ 한 사람의 몫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ʻ청결의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빨래가 번거롭던 시절에는 겉옷을 몇 주씩 입기도 했지만, 이제는 손쉽게 빨 수 있다는 이유로 세탁의 ʻ빈도’가 압도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기술은 편리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더 자주 일해야 하는 ʻ새로운 기준’이라는 족쇄를 채운 셈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자동화 로봇에서도 나타납니다. 최근 한국 외식업계에서는 인건비를 줄이려 도입한 서빙·조리 로봇이 오히려 운영비를 상승시켰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잦은 고장과 오류, 고객의 즉각적인 요청에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결국 직원이 다시 개입하게 되어, 기계값만 추가로 지출하는 형국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형태는 어떻습니까? 이제는 SNS나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의 예배와 설교를 안방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운전하거나 걸을 때 좋아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찬양을 누리곤 합니다. 하지만 첨단 기기의 도움으로 은혜의 정보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역설적으로 조용히 앉아 말씀을 읽고 골방에서 기도하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어야 안심이 되고, 설교 준비라는 명목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만 늘어가는 제 모습을 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편리함이 도리어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사귐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과의 친밀감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조금은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무릎을 꿇고, 말씀과 직접 씨름하는 시간에 더 투자해 보시면 어떨까요? 최고의 뮤지션 음원보다 음정이 조금 틀리더라도 내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ʻ라이브 찬양과 기도’가 더 귀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영성에 있어서만큼은, ʻ의도적인 불편함’이 본질로 복귀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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