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작은 루피 오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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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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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상에 작은 ‘오뚜기’ 장난감 하나가 있습니다. 딸아이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오뚜기입니다. 크기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될까 싶은 아주 작은 장난감입니다. 모양은 ‘뽀로로’의 친구 중 하나인 ‘루피’ 모양입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상냥한 비버 소녀이지요.
이 오뚜기를 만든 사람이 왜 하필 루피를 모델로 삼았을까 헤아려 보면, 만화 속 루피의 캐릭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루피는 늘 밝고, 때로는 친구들에게 서운한 일이나 상처를 받아도 결코 실망에 주저앉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섭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게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아마도 그런 성품이 오뚜기와 꼭 닮았기에 루피를 오뚜기에 담아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뚜기는 역시 다시 일어섬의 대명사입니다.
오뚜기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휘청거릴 수는 있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튼튼한 다리가 있어서 외부의 흔들림에도 일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긴 팔이 있어서 어떤 환경에서도 딛고 일어서는 것도 아닙니다. 디딜 수 있는 다리도 없고 붙잡을 팔도 없지만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 밑바닥에 묵직한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간간이 ‘루피’ 오뚜기에게 툭툭 시비를 걸어 봅니다. 그래도 녀석은 결코 넘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루피 오뚜기가 참 좋습니다. ‘나도 저랬으면’ 하는 마음을 그 작은 오뚜기 위에 투영해 봅니다.
살면서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넘어졌을 때 어떻게 일어서는가가 관건입니다. 실패를 겪기도 하고, 뒤통수를 맞거나 사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계획했던 일들이 어그러질 때도 많습니다. 계획대로만 되는 인생이라면 좌절과 실패라는 단어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길은 ‘회개’에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슴을 치며 죄책감에 빠지는 것 이상이며, 깊은 후회 그 이상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회개’를 뜻하는 헬라어는 ‘메타노이아’입니다. 이는 단순히 슬퍼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첫째는 생각과 마음의 중심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요, 둘째는 잘못된 길임을 깨달았을 때 방향을 180도 돌려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온전한 의지적 행동이 수반된 돌이킴과 결단, 그것이 바로 참된 회개입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모른다고 잡아떼며 펄쩍 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깊은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에 짓눌려 감정적인 후회에 머물렀고, 결국 스스로 자멸의 길을 택했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으나,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중심을 돌이켜 다시 주님의 길을 걸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극단적인 선택 대신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면 어땠을까요?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차이는 단 하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가, 만나지 못했는가’였습니다. 회개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가로 증명되지 않으며, 오늘의 일시적인 감정을 회개의 열매라 부르지도 않습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결단입니다.
마음 중심에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동행하는 성도는 어떤 시련으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섭니다. 사도 바울이 그 수많은 고난과 실패 속에서도 끝내 승리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신앙의 중심추로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은, 저 책상 위의 오뚜기처럼 언제든 툭 털고 다시 일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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