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의 자리에서 찬양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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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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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7일 토요일 저녁, 에콰도르 남서부 해안 도시 과야킬의 페르페투오 소코로 성당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던 파트리시오 알프레도 산체스 몰리나리 신부가 뒤편에서 쓰러진 무거운 나무 십자가에 머리를 맞아 현장에서 숨을 거둔 것입니다.
이 비보를 접했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거룩한 미사 중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슨 큰 죄라도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은 아닐까?’라며 의구심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반면 또 어떤 이는 남겨진 유가족과 성도들이 겪을 충격과 비통함을 헤아리며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보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참사가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제사를 드리던 갈릴리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해 제물에 피가 섞이게 한 사건, 그리고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무고한 열여덟 명이 깔려 죽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거룩한 제단 앞에서, 무너진 돌무더기 아래서 비참하게 죽었는가?’ 하는 인과응보적 시선이 팽배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4-5)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확했습니다. 타인의 고난과 죽음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타인의 아픔을 거울삼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 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6장). 그곳에서 귀신 들려 점치던 여종을 고쳐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여종을 이용해 돈을 벌던 주인의 악의적인 고소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체포되어 옷이 벗겨진 채 모진 매를 맞았고, 발에 차꼬가 채워진 채 깊은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영락없는 죄수였고,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만신창이가 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웃을 일도, 감사할 조건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옥중에서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했습니다. 육체의 고통을 넘어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굳게 닫혔던 옥터가 흔들리고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절망 끝에 자결하려던 간수와 그 가정이 구원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펼쳐졌습니다.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졌던 다니엘의 세 친구가 주님의 임재 가운데 담대할 수 있었듯, 굶주린 사자 굴 속의 다니엘이 평안을 지킬 수 있었듯, 바울과 실라 역시 함께하시는 주님을 전심으로 신뢰했기에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벌어진 일들만 보고 섣불리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달라야 합니다. 고난 앞에서도 섣부른 판단과 낙심 대신,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와 찬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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