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3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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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10)-거짓
행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 사회심리학 교수, 로랑 베그(Laurent Begue)는 황당하고 기발한 연구에 수여하는 이그 노벨상을 심리학 분야에 수상(2013년)한 바 있습니다.
이그 노벨상은 매년 사람들을 웃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를 선정해 상을 줍니다. 로랑 베그는 ‘술을 마신 사람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가설을 입증한 실험 연구로 이 상을 받았습니다.
엉뚱한 주제를 다루기 좋아하는 그가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라는 책을 써서 다시 흥미를 끌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남보다 ‘도덕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평균의 착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증빙자료로 재미있는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무작위로 선정한 미국인 1,000명의 일반인에게 ’셀렙’(celebrity) 중 과연 누가 천국에 갔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득표수를 받은 사람은 마더 테레사였습니다. 무려 79%가 마더 테레사는 천국에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 뒤를 이은 사람은 아직 살아있는 마이클 조던이었습니다.
65%가 마이클 조던은 천국에 갈 것이라는 데에 표를 던졌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엉뚱합니다. 그 뒤를 이어 안타까운 사고로 죽은 다이아나 왕세자비가 60%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것입니다. 마더 테레사도 79%인데, 자기 자신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무려 87%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균의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균의 착각을 가진 사람들이 ‘도덕적 인간’들이고, 그들은 나쁜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덕성의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나와 타인, 그리고 사회 사이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학자들, 그들 모두는 그 당시 사회에서 유력인사(셀렙) 들이었습니다.
가장 ’도덕적인 셀렙‘들이 추구하던 당시의 사회가 가장 ’나쁜 사회‘가 된 것을 예수님께서 지적하십니다.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렸을까? 예수님은 이것을 ’거짓(위선)‘이라고 지적하십니다.
거짓은 모든 안 좋은 것을 정당화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한 이후, 무화과 잎으로 자기를 가립니다. 무엇을 상징합니까? 자기들의 죄를 자기들이 수습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죄가 용서 받는다는 진리를 도외시하고, 무용지물이 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스스로 ’도덕적 인간’이 되려한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의 실체입니다.
거짓은 믿음을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러한 ‘평균의 착각’에 사로잡힌 ‘도덕적 인간’의 표상이며, 이 사건은 그들의 거짓(위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집을 팔아 드리기로 해놓고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를 숨긴 아주 ‘인간적인’ 발상으로 인해 부부가 세 시간 간격으로 죽게 됩니다. 가히 엽기적인 사건입니다.
아나니아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자비롭다’는 뜻이고, 삽비라는 아람어로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의 뜻과 다르게 어디에도 하나님의 자비하심도, 아름다움도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문제 삼은 것은 바로 그들의 ’속이는 행위‘입니다. 아나니아의 거짓은 욕심에 의한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그 배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베드로는 지적합니다.
“아나니아야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안타깝게도 아나니아는 ‘성령 충만’이 아니라 ‘사단이 충만’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과거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들었던 질책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단이 생각하는 사람의 일’은, 십자가가 아닌 인간적인 영광을 취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나니아는 인간적인 영광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베드로의 질책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하느냐?’에 그 초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숨은 동기를 보시는 분이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숨은 동기에 따라 성령의 역사와 사단의 역사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과연 이 일은 하나님의 영광, 그분의 honor를 지키는 일인가? 그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오 주여
주의 일을 감당한다 하면서
우리 자신의 명예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기억하게 하소서
’왜 이 일을 하려는가?‘ 묻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