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사도행전 8장 1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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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14)-박해


행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새들이 저희 집 환기통에 알을 낳고 부화를 시켜, 아침마다 새끼 새들의 짹짹대는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어미 새가 막지 않은 환기통 틈새로 들어가 알을 품고 부화시킨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미 새가 먹을 것을 지속적으로 가져다 주니, 그때마다 짹짹대는 소리가 아주 시끄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보니 더 이상 시끄럽지가 않습니다. 새끼 새들이 둥지를 떠난 것입니다.


새는 새끼가 날개만 생기면 둥지에서 떨어뜨립니다. 날지 못하는 새끼는 뱀이나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미가 새끼를 키우는 방법이 유사합니다. 어려움을 통과하게 합니다.


장시간 걸어야 하는 코끼리 새끼는 지쳐 쓰러집니다. 이때 어미는 본척만척 그냥 지나쳐갑니다. 자꾸 도와주면 자신이 왕인 줄 압니다. 교만해진 동물은 무리와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없게 됩니다.


자꾸 아기처럼 모든 이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동물만이 아닙니다. 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다 해 줘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하다가 정 못 하는 것만 도와줘야 합니다. 부모가 걷지 못하는 아기와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아기들이 걸음마 하다 넘어져도 부모는 걸어야 합니다. 사랑은 뒤따르게 만들고 앞장서 가는 것입니다.


이때 아기는 울면서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고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의심 받고 미움 받을 용기’가 없으면 자녀를 낳고 성장 시킬 수 없습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던‘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찾아왔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박해는 하나님의 ’미움 받을 용기‘입니다. 교회가 더 성장하여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마치 새끼 새가 둥지를 떠나 훨훨 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배려, 훈련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온전히 믿을 때 어려움이나 핍박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


또 이어서 말씀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될 때 오는 상황을 말씀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 때문에 박해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을 세상에 소개하고, 세상을 역행하는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기 때문 입니다.


조선 말기에 왜 기독교가 ‘야소교’라는 명칭으로 박해를 받았습니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하나님의 뜻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삶 가운데 가르치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등을 말하니 당시의 기득권자인 양반들이 가만히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박해한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미움받을 용기‘입니다. 미움 받을 용기가 없다면 그 사람은 아직 세상에 속한 것이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과 힘과 명예를 추구하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는 세상에서 십자가의 사랑이 참 행복이란 진리를 전파하니 세상을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미움 받을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새끼를 진정으로 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자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그릇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박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더 종말이 가깝습니다. 우리도 박해 가 올 때 우리를 통해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맡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주님 편이 안 되면 적의 편에 서게 됩니다.시험의 때가 가깝습니다. 박해가 아니라 박해를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 우리의 숨은 모습이 드러나고 정화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 주여

‘미움 받는 용기’를 주소서

세상을 거슬러 역행할 수 있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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