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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26-34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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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왜 신앙이 자라지 않는가

본문 : 마태복음 6:26-34


누구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는 누군가를 향한 소망 입니다. 소망을 다른 말로 굳이 표현해 본다면 바램 입니다 .발전을 기대 합니다. 자람을 기대 합니다. 변화를 기대 합니다.


또한 자신을 향한 소망입니다. 자신도 누구못지 않게 성장 하기를 원합니다. 변화를 기대 합니다.

상대방이나 자신을 향한 소망을 갖습니다. 하지만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제는 왜 변하지 않지, 왜 맨날 저 모양 저 꼴이지…왜 난 이 모양 이꼴이지. 왜 난 변하지 않지..자책 합니다. 우울해 합니다 .속상해 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한게 없다는 것을보면서 실망 합니다.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소망도 제자리 걸음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 사실 우리는 더 중요한 영적 자람을 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신앙은 저절로 자라는 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26절에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새 번역은 하나님께서 먹이시나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천부께서 기르신다고 강조 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겁니다. 먹이신다는 것은 꼴을 주신다는 점입니다.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제공해 주신다는

겁니다 .


하나님은 매일 먹을 것을 주시는 데 .. 잘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잘 받아 먹으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자람, 성장 소망 하시나요.. 먼저 영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것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왜 나의 신앙은 자라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첫째, 하나님이 기르신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라고 말씀 합니다


하나님은 기르시나니 라고 말씀 하셨는데..사람들은 염려로 반응 합니다. 하나님은 기르시나니…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그런데 안 자라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커녕..오히려 염려로 가득차 있을 뿐 입니다.


신뢰하지 못하다 보니까.. 감정적으로 대응합니다.

하나님의 기르심과 인간의 염려.. 이것은 하나님 보다 자신의 감정에 더 기울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감정을 따르는 게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겁니다. 감정을 따라 살면.. 온통, 불만, 신경질, 탓 만 자랄뿐입니다. 엉뚱한 것들이 자라갑니다.


신앙은 감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삶입니다. 많은 경우에 감정을 따라 신앙생활을 해 갑니다. 어느새 감정이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감정 중심의 신앙은 늘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 합니다. 하지만 이세벨 여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도망 침니다. 엘리야는 로뎀 나무 아래서 나를 죽게 해라.. 감정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감정에 머무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 말씀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주님은 듣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피조물을 예로 듭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백합화가 자기가 자라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도록 맡기는 겁니다. 수고도 아니하고….길쌈도 아니하고(실을 짜서 인위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일)이런 인위적인 수고가 없어도 꽃의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함을

강조 합니다.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철저한 맡김” 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는 '맡김'(surrender)이다.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것이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항복'이다.


백합화는 자기 기분에 따르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더워, 왜 이렇게 추워, 왜 이렇게 후덥지근해..왜 비가 안오는거야…마찬가지로 신앙이 자라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 보다


자신의 감정에 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32절에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


부족함이 없게 하시겠다는 말씀 입니다.

하나님이 기르신다고 하시는데… 신앙이 자라기는 커녕.. 염려만 커 가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못 믿기 때문 입니다. 못 믿으니까.. 염려만 잔뜩 쌓이는 겁니다


세례요한의 부모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입니다. 이들은 나이가 늙었습니다. 사가랴가 반열의 순서에 따라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기도 합니다.

천사가 나타나 “사가랴여 무서워 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틀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달라고 기도할때는 언제고..아들을 주신다고 하니까.. 어떻게 반응하나요?

눅 1:18에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사가랴에게 말씀 합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믿지 못하는 겁니다 .


사가랴가 염려 하고 의심하니까? 어떤 현상이 일어나나요?

눅 1: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벙어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 입이 열리나요.. 요한을 받아들일때에 다시 입이 열림니다.

안들으니까 …

시행착오를 합니다. 왜 나는 이렇게도 운이 없지 생각에 빠져 버립니다. 내가 나쁜 사람들을 만나다니..자기의 믿음 없음은 보지 못하고 남 탓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염려하는 자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 합니다 .

30절 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없어 .. 염려로 산다면 불행 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제가 한번 상상을 해 보는 데.. 예수님이 굉장히 답답해 하셨을

것 같아요.. 수도 없이 말하는 데 듣지 않고 의심과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믿음은 맡김입니다. 염려는 맡기지 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을 확신합니다. 염려는 이게 가능할까 의심합니다.


믿음으로 자라가야 하는 데. 염려는 성장을 방해 합니다. 둘째,신앙이 자라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라. 우리의 본분은 잘 듣는 겁니다.

자신의 신앙이 자라기를 기대 하십니까? 그러면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롬 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잘 들으려면 ..

*멈춰라.. 자기 생각을 멈춰야 합니다.

*오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그 얘기 다 들어봤어.. 뭘 다 알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수시로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의 본분은 철저한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먹고 사는 겁니다 . 야곱이 이스라엘로 속이는 자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자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 합니다.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야곱이아니라 이스라엘”이라 하라


야곱으로 살면 성장은 없습니다. 야곱은 빼앗고, 쟁취하고, 자기의 유익을 차지하고 마는 이름입니다. 장자가 되었지만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가족 관계를 깨트립니다. 도망치는 자.. 도망가서도 라반과 속고 속이는 인생…라반의 집에서 다 얻습니다 .하지만 속임는ㄹ 계략 속에서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야곱은 지금 앞에서는 에서 뒤에서는 라반이 좇아 옵니다

야곱은 또 꽤 를 냅니다. ..미숙한 생각.. 어떻게든 에서를 달랠려고.. 위기를 극복하려고 합니다.(자기의 지혜와 생각)

야곱은 씨름하면서 축복을 달라고 합니다.

이름을 바꿉니다. 다리 뼈를 부러트립니다.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이스라엘은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미 입니다.

다시는 야곱이 되지 말라.. 이스라엘은 이스라 와 엘의 합병어 입니다. 곧은자 라는 의미 입니다. 굽어 있던 자가 곧은자.. 로 살아가는 겁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꿔 주심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쟁취하던 자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듣는자로 살아가겠다는 각오요 결단입니다.


야곱의 정리

창 35:4) “그들은 자기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이방 신상들과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를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습니다.야곱은마치 염려로 사는 자 입니다 .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사는 자 입니다.


사 40에 보면 “내 의도와 내 생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방향을 맞춰 살아가는 자 가 될때에 이기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왜 우리의 신앙은 자라야 할까요

왜 신앙은 자라가야 할까요?

세상과 당당히 맞서 싸우려면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신앙이 없어 눈치 보고, 세상의 가치에 졸졸 따라 다녀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깊이를 더하라

어떤 환경, 어떤 관계 속에서 신앙이 깊으면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나의 신앙이 자라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신앙으로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성숙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만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는 벧후 1:5-7 에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시작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종착점이 형제 우애에 대한 사랑입니다. 


신앙이 자라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 곧 믿음의 자람은 나만 구원 받는 게 아니라 주변을 살리는 일로 사는 겁니다 . 교회 안에서나 가정 안에서나, 직장 안에서 내가 믿음으로 서 있는 자리는 나만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생명을흘러 보냅니다.


신앙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

벧후 1:5-7에서 언급한 자질들을 우리가 성장한다면 우리는 영적인 관점과 하나님의 은혜애 대한 감사에서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걱정한다고 염려한다고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습니다. 그 키..자신의 내면, 자녀, 사업, 배우자, 관계.. 내가 뭘 어떻게 기르겠다..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불가능합니다 .


그러나 하나님이 먹이시면 가능 합니다 .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십니다 .우리를 보듬어 주십니다.


언제까지 자신을 속이며 살 것인가?

빨간사과와 토마토 라는 책이 있습니다. 빨간사과는 겉과 속이 다름을 상징 합니다.토마토는 겉과 속이 일치된 것을 상징 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는 믿음 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강해지고 싶어 합니다. 남들보다 더 똑똑해 지고 싶고, 능력있어 보이고

싶고, 약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 부족함을 숨기고 강한 척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방향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기대하는 믿음은 자신의 강한 것을 내세우는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 입니다 .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음 있는 척 하면서 산다면 정말 불행한 자 입니다.토마토처럼 일관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먹이십니다.

신앙이 없으면 원망과 불평으로 한 평생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먹고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자신을 이기는 진정한 힘으로 신앙이 자라고 있음으로 보여 주자.

신앙이 없어 염려 속에 살지 말고 신앙으로 하나님께 묻고 답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의 삶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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