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장 30절, 31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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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43)-알지 못하던 시대
행17:30,31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명하셨으니..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전도를 하다 보면 꼭 나오는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마땅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당혹스러운 질문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자’는 ‘단순 전도’에 훅 들어오는 공격적인 질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모르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꼭 등장시키는 인물 중 한 분이 ‘이순신 장군’입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고 ‘의롭게’ 사신 분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래서 모두가 존경하는 그분은 어떻게 된거냐는 겁니다. 이 질문은 사실 전도에 반격을 시도하는 ‘질문을 위한 질문’일 뿐입니다. 왜 우리의 관심이 과거 역사의 인물이어야 할까?
우리 자신의 영혼에 관한 문제를 남에 대한 질문으로 호도시키는 것 뿐입니다. 아덴 사람들도 이런 비슷한 질문을 마음 속에 지녔습니다. 그래서 그 질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지만’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명하셨으니..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예수가 전파되지 않았던 시대 사람들의 영혼 문제는 하나님께서 ‘간과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간과하신 것은 우리들이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생각을 서신서에서 조금 더 언급합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4-15).
예수를 알지 못하던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그 사람들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그 증거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롭다 여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활을 변증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덴 사람들도 호기심으로 듣고, 다음에 또 이야기 하자고 청합니다. 부활을 ‘토론의 제목’ 중 하나로 여긴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바울은 더 이상 그들과 변증을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부활을 믿게할까? 전도를 많이하고 이를 간증하시는 분들은 전도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서울대 수석으로 들어간 학생이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하는 것 같이 들립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가만히 새겨보면 전도를 자기 힘으로 하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알려주는 것으로 전하면 가장 효과적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 되었나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외의 모든 토론은 변증일 뿐입니다.
삶으로 부활을 증거하게 된 한 자매의 간증입니다. 이 자매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형제와 연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다보니 그 형제가 외도와 도박, 가정 폭력까지 일삼았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자매는 이혼을 결심하였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찾아가 이혼 상담을 하였습니다. 자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목사님이 충고합니다.
“이혼하는 것은 자유인데, 한 달만 더 살아보십시오. 이제는 아내로 살지 말고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선교사라 생각하고 살아보십시오.”
“그래도 10년을 함께 살았는데 신앙인으로서 그 정도는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지 않아요?” 그러자 자매는 한 달은 선교사로 더 참아낼 수 있을 것 같다며 그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자매는 한 달 동안 시어머니가 잔소리해도 ‘나는 며느리가 아니다. 나는 선교사다. 저 할머니도 구원해야 한다.’라며 참았고, 남편을 대할 때도 ‘저 형제도 내가 구해야 하는 영혼이다.’ 생각하며 대했습니다.
며칠을 지켜보던 남편이 왜 이렇게 사람이 달라졌냐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형제님, 저는 당신을 위해 한 달 동안 파견된 선교사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정말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유일한 아내가 떠날까 두려워 남편은 자신이 잘할 테니 지난 모든 것을 용서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 가정이 회복하고 하나님께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부활이 자매의 삶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전도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 삶에 어떻게 나타났나를 보여주고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역사하신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꼭 기억하고 싶은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으면 부활을 전하는 우리가 부활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 주여
부활의 증인인 우리가
부활 사건을 삶으로
가로 막아 온 것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삶으로 부활을
변증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