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장 29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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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58)-눈 높이와 흉내
행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영국 대형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어떤 젊은 신사가 이 박물관에 들어와 그곳에 진열된 작품 앞에서 엉거주춤하게 앉은 자세로 그 작품들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노트를 꺼내 이것저것 열심히 적으면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습니다. 이 신사의 이런 거동을 수상하게 여기고 지켜보던 수위는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그 젊은 신사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같은 작품들 앞에서 이것저것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진지한 태도로 설명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은 잘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관람이 끝나고 돌아가려던 그 신사에게 수위가 궁금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선생님, 어째서 어제는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작품을 보셨습니까?”
그러자 그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바로 이 아이들의 작은 키로 이들이 볼 수 있는 눈높이에서 작품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였죠. 제 자세가 좀 이상했지요?”
비유하자면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이 바로 이 선생님의 자세였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그 박물관에 근무하던 수위의 궁금히 여기던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시기 위해 그렇게 눈높이를 낮추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성육신의 신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눈높이를 높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판단’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우리 뜻과 맞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입니다.
‘판단’에는 이미 우리의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하는 하나님의 모습이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6)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과 눈높이를 맞추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완전해 질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눈높이를 맞춰야 주님을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노력할 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주님을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처럼 될 수 있냐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흉내’는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왜 남의 행동이나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모욕이 될까? 그 이유는 ‘그렇게 변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그렇게 변화될 마음이 있는 것이지만 흉내는 상대를 자신보다 낮게 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남미의 어느 축구선수가 손으로 눈을 찢으며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정을 지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양인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행동이어서 많은 한국 축구 팬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그래서 그 선수는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였습니다. 동양인이 될 마음이 없이 흉내낸 것일 뿐입니다.
몇년 전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관짝 밈’을 올렸을 때 흑인 비하 논란이 일었습니다. 흑인들이 춘 춤을 따라 하기 위해 얼굴도 검게 칠했기 때문입니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씨는 SNS에 그런 인종차별적 행동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만약 고등학생들이 흑인이 되고 싶어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흑인을 비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마음이 없으면서 그런 모습을 취했다면 그런 흉내는 모욕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흉내‘를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3)고 단언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의지와 노력, 그리고 믿음이 없으면 그 모든 행위가 ’흉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를 보여준 인물이 마술사 시몬과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입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마지막 변론을 듣는 베스도 총독과 그리립바 왕에게 당당하게 말씀합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흉내내지 말고 눈높이를 맞춰가라는 강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눈높이를 맞추려면 우리의 본성을 바꿔주시는 성령님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분명히 흉내내지 않고, 하나님께 눈높이를 맞추며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오 주여
흉내만 내는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주님께 눈높이를 맞추게 하소서
늘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우리 스스로에게 묻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