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장 3-8절 말씀 묵상 [이영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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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룩한 삶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4:3-8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라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에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법을 배워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인정하면서 더욱 많이 힘쓰라고 격려합니다. 신앙은 완성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푯대를 향해 뛰어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성화를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전진해야 합니다.
3-6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이 부분은 오늘의 핵심으로,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알려줍니다.
당시의 데살로니가는 성적으로 문란했던 로마-그리스 문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성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오락이자 종교적 제사의 일부였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교에 입교하게 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4절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라고 말한 것은 당시 문화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성은 쾌락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거룩하고 존귀한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5절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는 색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는 의지적 통제를 요구했습니다.
6절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고 한 것은, 잘못된 음행이 결국 타인의 가정을 파괴하고 이웃을 아프게 하는 사회적 범죄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섹스가 곧 예배'였던 도시에서 '몸이 곧 하나님의 성전'인 신앙으로 옮겨온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과거의 구습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문화를 그토록 강하게 비판하신 이유는 두 가지 핵심적인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보호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서 열방과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가나안의 풍습을 따르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깨는 영적 간음이었습니다.
둘째, 맘몬적 세계관으로부터의 보호입니다. 가나안 문화는 '풍요인 돈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윤리적 타락이나 인명 경시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맘몬적 세계관'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시고자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가나안 사람들이 풍요를 위해 성을 도구화했던 모습은, 오늘날 물질적 풍요를 위해 윤리를 저버리는 현대 사회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너희는 그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레위기 18:3-4)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몸과 부부 관계를 다룰 줄 알아야 하며, 정욕에 휘둘리는 이방인과 달라야 합니다.
음행은 단순히 개인의 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고 형제를 해치는 일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7-8절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무게를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따로 생활 따로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거룩함은 일상의 성 윤리와 정직함에서 시작됩니다. 바울은 부정한 것들과의 단절이 곧 하나님의 뜻이신 거룩함을 향한 순종의 첫걸음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정욕을 따라 살지만, 하나님을 아는 성도는 거룩함이라는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연약한 믿음을 주님이 강하게 붙들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