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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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7장 6-10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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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 에스라서를 통한 묵상

본문 : 에스라 7:6-10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7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바벨론에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은, 70년이 넘는 긴 유배 생활 동안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갔습니다. 성전은 무너졌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으며,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도 산산조각 난 듯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고레스 왕을 통해 귀환을 허락하시고(BC 538),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에스라서는 이 포로 귀환 공동체가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러나 이 회복은 단순히 땅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신 거룩한 백성으로의 귀환이어야 했습니다.


 에스라서 1-6장은 바벨론 포로 3차례 귀환에서 1차에 해당되는 부분을 다루며, 7-10장은 에스라 중심의 2차 포로 귀환의 내용입니다.


 BC538년 당시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의 고레스 왕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성전 재건을 허락합니다(스1:1-4)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돌아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스1:5-3:7).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절망했고, 주변 민족의 방해와 내부의 낙심으로 공사는 중단되기도 했습니다(스3:8-4:24)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으로 다시 일어나 BC 515년에 성전을 완공합니다(스5-6장,스 6:15)


 하지만 성전만 세워졌을 뿐, 백성들의 영적 상태는 아직 깊이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신앙의 혼합, 율법의 무지, 하나님의 언약에서 멀어진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약 80년 뒤, 하나님은 또 한 사람을 일으키십니다. 바로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율법학자로서 율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며, 가르치는 삶을 살았습니다(7:10). 그는 지식만이 아니라 삶으로 말씀을 살아낸 인물이었고,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깊이 분별할 줄 아는 참된 지도자였습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에스라에 관해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 묘사합니다(스7:6).


 에스라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받아 BC 458년에 2차 귀환을 이끌었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헌물과 행정 보고를 정리하며 첫걸음을 뗐습니다(에스라 8장). 그러나 안정되기도 전에, 백성들 안에 뿌리 깊이 스며든 혼합혼(이방결혼) 문제를 발견합니다(9:1).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어야 할 이스라엘이 그 땅의 가증한 풍습과 이방 신앙을 받아들이며 영적으로 무너진 현실이었습니다.


 이에 에스라는 충격과 절망으로 옷을 찢고 수염을 뽑으며 회개했고(9:3), 통곡하며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 거룩이 무너진 공동체는 결코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의 백성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율법에 익숙한 에스라였기에 너무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본질은 거룩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으로 성전이 세워지고, 레위인을 세워 제사제도가 회복되어도, 거룩이 무너지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아는 에스라는 도착 직후 행정이나 제도를 정비하기보다, 하나님의 거룩을 회복하는 일을 가장 먼저 붙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는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이며,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아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도자 에스라가 2차 포로 귀환에서 행한 핵심적인 일은 단순한 행정이나 제도 개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을 다시 세우는 신앙 혁신이었습니다. 동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며 통회하고 자복하며 중보한 에스라의 기도(9:3–15)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 는 율법을 온전히 체득한 학자이기에 가능했던 모습입니다. 결국 에스라는 백성의 동의를 얻어 이방혼을 단절하는 결단을 이끌어내고(10장), 이스라엘 공동체는 언약을 새롭게 세우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을 회복해 갔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에 익숙한 학자 에스라와 함께하셨습니다. 에스라는 금식하며 기도할 때, 왕의 도움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하심을 경험했습니다(7:6, 8:22–23). 율법을 지식이 아닌 삶으로 체득한 에스라이었기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님의 거룩으로 지켜내기로,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에스라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언약 공동체로 다시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차 포로 귀환을 기록한 에스라서를 통해 우리는 깨닫습니다. 진정한 귀환은 어디에 있는가?


 눈에 보이는 성전이나 예루살렘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의 회복, 언약 중심의 회복,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으로의 회복임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글로벌 시대에도, 소통과 인권을 앞세우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라고 말하는 기독교 신앙을 독선적이라 비난하고 미워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다른 종교나 사상과 섞여버린 혼합 신앙의 모습이 혹시 우리의 현실에는 없는지 돌아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방백과 고관과 백성들이 이방혼으로 하나님 신앙을 타협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도 이로 인하여 내 주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나아갈 뿐입니다.


주여!

하늘에 소망을 두며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꿈꾸는 저희들이지만,

이 세대를 거슬리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함으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이

당시 이방혼으로 인해 하나님을 근심케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리할지라도 주께서 심겨주신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소망과 믿음의 확신이 있기에 

내 자신을 돌아보며 겸비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여!

우리 모두 에스라와 같이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 거듭나게 하소서!

혼합 신앙으로 빛을 잃어가는 교회를 말씀 중심으로 다시 새롭게 세우며,

순수한 기독교 본질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이 부르심 앞에, 우리 자신이 한 알의 밀알로 주님께 드려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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