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1장 10-13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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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네 눈을 들어 보라!
본문 : 창 31:10-13
오늘 본문은 야곱이 자신이 꾸었던 꿈을 부인인 레아와 라헬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야곱은 본문과 같은 꿈을 꾸고 난 직후, 외삼촌 라반에게 처와 자식들을 데리고 귀향하게 해 달라 요구했습니다. 라반이 허락하며 품삯을 정하라 하자, 야곱은 이제 앞으로 가축 중에 아롱지고 점이 있고 검은 양과 염소가 태어나면 자기 삯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창 30:31-32). 이에 라반은 야곱의 말대로 약속했습니다 (34절). 그리고 그는 야곱이 돌보던 양과 염소중 아롱지거나, 점있거나, 검은 색깔의 가축들을 모두 가려 내어, 아들들에게 맡겨 비열하게도 3일 길이 뜨이는 곳에 따로 두어 전혀 접촉치 못하게 했습니다(35-36절).
결국 야곱은 라반의 남은 가축들, 즉 색깔이나 얼룩, 또는 점이 없는 단색의 양과 염소들 만을 돌보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야곱의 몫은 새로 태어나는 가축들 중에 얼룩졌거나, 점 있고 아롱진 양과 염소들 만이 해당되게 되었습니다. 그 외 새로 태어나는 단색의 가축들은 외삼촌 라반의 몫이 되고, 그럼에도 그 가축들을 야곱이 계속 돌봐야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는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야곱에게 오히려 더 불리한 야곱의 요구였습니다. 모두 한가지 색깔의 양과 염소들입니다. 이들이 서로 교접해서 암컷들이 새끼를 배고 낳게 될 때, 과연 어떠한 색깔의 가축들이 나와야 정상일까요?
단색의 양과 염소들이 되어야겠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단색의 가축들 사이에서 얼룩지고, 점있고, 아롱진 양과 염소들이 낳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해 칼로 껍질을 벗겨 하얀 줄무늬가stripes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들을 물구유에 세워 두었습니다. 물을 먹으러 오는 가축들이 그 앞에서 교미하여 모두 얼룩지고 점있고 아롱진 새끼들이 낳아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더우기 실한 가축들에게만 줄무늬 가지를 보여 주어 실한 가축 새끼들은 모두 야곱의 소유가 되었고, 약한 가축들에게는 줄무늬 가지를 보여주지 않아 모두 단색인 약한 가축새끼들을 낳았고, 이들은 외삼촌 라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러니 야곱의 소유는 점점 더 많아져 갔고, 라반의 소유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37-43절).
신기하지요? 이 같은 일이 정말로 푸른 가지에 하얀 줄무늬를 만든 가지들 때문이었을까요? ‘줄무늬 가지’가 무슨 요술 방망이도 아닐텐데...
진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야곱에게 보여준 꿈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10절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더라”
그리고 그는 꿈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지시한대로 자신의 눈을 들어 보았습니다. Look up and see!
그리고 천사가 양떼를 탄 수양이 모두 다 얼룩지고 점 있고 아롱진 것들이라고 말하는 음성 또한 들었습니다.
본문 12절 전반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
야곱은 이같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며 꿈 속에서 “네 눈을 들어 보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고, 장래에 있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미리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는 오늘날 영적 야곱인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야곱처럼 꿈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 꿈이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이뤄짐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기에 이러한 일들이 꿈을 통해 사전에 보여지고, 그대로 현실에 실현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절 전반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이는 조부와 부친을 통해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직접 계시하시는 분임을 말해 줍니다. 바로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난 사건을 언급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면 벧엘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까?
야곱이 형 에서의 칼날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할 때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잘 때 꿈에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창 28:10-15).
그 때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3-15).
이처럼 수많은 양떼가 야곱의 것이 된 것은 20년전 바로 이 벧엘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라반의 짐승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 31:9).
그 규모가 어떠했었나요?
성경에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죽이려는 형 에서에게 주려던 예물만도 엄청났었습니다. 언급된 가축의 숫자만 해도 550마리였습니다 (창 32:14-15). 야곱은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는 고향을 떠나 벧엘 들녘에서 외로이 잠들었을 때 만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역경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약속이 이뤄지는 현장을 반드시 접하게 됩니다. 이 같은 야곱 외에도 성경의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롬 4:18-22).
모세는 지팡이 끝에서 갈라지는 홍해 바다를 바라 보았습니다 (출 14:15-16).
엘리야는 손바닥만한 구름 한 점에서 3년 6개월 동안이나 가물었던 땅을 적실 큰 소나기를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왕상 18:41-45).
하나님은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볼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짐을 보게 하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지금 여러분은 혹시 사람을 바라 보다 실망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혹은 환경만 바라보고 낙심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 모두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하나님을 눈을 들어 바라보시길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3차 전도 여행 중에 눈을 들어 로마를 보았습니다 (행 19:21). 그 후 바울은 예루살렘 감옥에서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하리라”란 하나님의 말씀을 꿈에 들었습니다 (행 23:11). 하나님은 이 꿈이 실현되도록 바다 폭풍의 위기에서도 바울을 구원하셨습니다 (행 27:20-25). 마침내 사도 바울은 미리 눈을 들어 보았던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행 28:14). 할렐루야!
우리 모두 영적 야곱으로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꿈이 아니라, 거룩하고 신령한 하늘나라 꿈을 꾸시게 되길 간구합니다.
야곱처럼 “네 눈을 들어보라!”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마침내 보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