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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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편 6-7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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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7-억울하다고 느낄 때


시7:6-7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서 내 대적들의 죄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구약 성경에서 억울함을 제일 많이 겪은 사람은 단연 요셉입니다. 형들에 의해 억울하게 애굽으로 끌려가 노예로 팔렸습니다. 애굽에서도 주인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감옥에 갇힙니다.


주인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억울하기 그지 없었을 겁니다. 그는 주인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보디발에게도 섭섭했을 겁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기 아내를 범하려고 한 노예를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너무 약한 처벌이 아닐까? 당시 노예는 물건과 같았습니다.


보디발의 신분이면 즉결 처분을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감옥에 가둔 것은 사실 보디발이 자기 아내를 믿었다기보다 요셉을 더 믿었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보냈을까? 보디발이 ‘사실’ 그 자체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나이 속성’ 때문에 요셉을 감옥에 보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요셉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억울해도 인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그렇게 보디발의 아내가 악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서 이런 억울함을 당해야 했고 그래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억울하다고 항소했다면 진짜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대신 요셉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겼습니다. 몇 년 뒤 요셉은 애굽왕, 바로 다음의 권력을 쥐게 됩니다. 수비대장인 보디발보다 높아진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다고 복수를 했습니까? 


아닙니다. 진리가 드러나고 자신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가족들이 기근으로 굶어죽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에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요셉의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암담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진리입니다. 요셉이 억울함을 가지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감옥은 바로를 만나기 위한 지름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억울하다고 느낄 때,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변명하려 애쓰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늘 이러한 요셉의 사건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는 억울함에 ‘격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탄원하는 식가욘의 시를 쓰고 있습니다.


식가욘의 정확한 뜻은 알려지지 않지만, ‘격정적인 탄원시’ 정도로 이해되고 있는 이유가 시편 7편이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라고 표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근거없는 중상모략을 당할 때 그 억울함 때문에 잠을 못 이룰 때가 있습니다. 근거없는 소문으로 우리 개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자존심이 짓밟혀 생존의 위기를 겪을 때도 있습니다.


이때 결백을 주장하고, 싸우고 싶은 마음에 치를 떨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변명하고 싶은 마음의 격정이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식가욘’의 의미입니다.


이때 다윗은 선언합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10절). 이것이 다윗의 굳건한 신앙 고백입니다. 요셉을 통해 배운 진리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자존심이 상해도 원망과 불평이 앞섭니다. 조금만 불편해도 참지를 못합니다. 범죄하기 쉬운 우리의 속성입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 외쳐 기도합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9절).


그러면서 세가지 히브리 동사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맡김의 기도’를 드립니다(6-7절). 첫째는 ‘쿠마’(일어나소서), 둘째는 ‘우라’ (깨소서), 셋째는 ‘슈바’(돌아오소서)라는 명령어를 과감히 사용합니다.


이는 마치 골프를 치면서 휘파람을 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공이 잘 안 맞거나 경기가 안풀릴 때, 휘파람을 불 듯이 우리 안에 억울한 마음이 들 때 소리지르며 기도로 풀고 주님께 맡기는 ‘식가욘의 지혜’입니다.


이런 선언적 기도는 굉장히 큰 힘이 됩니다. 내가 하는 말을 내 귀가 듣고, 내 마음이 확정됩니다. 그리고 그 선언적 고백을 하나님께서도 들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억울하십니까? 잊지 마십시다.

쿠마(일어나소서)

우라(깨소서)

슈바(돌아오소서)

우리 안의 성령님의 도우심을 ‘불일듯 하게 하기’(stir up 딤후1:6) 위한 선포입니다.


오 주여

우리 안에 있는 ‘식가욘’이 있습니다

우리의 방패가 되소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 깨소서, 돌아오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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