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장 1절, 11장 16절, 48장 35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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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에스겔서를 읽고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여호와삼마」
본문 : 에스겔 1:1; 11:16; 48:35
1: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11: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48: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선지자 에스겔은 주전 597년, 바벨론의 2차 침공 때 여호야긴 왕과 함께 젊은 나이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로부터 다섯 해 뒤, "서른째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임합니다. 이를 그의 나이로 본다면 서른 살 무렵입니다. 제사장인 그가 하나님을 섬길 자리는 마땅히 예루살렘 성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곳은 뜻밖에도 이방 땅 그발 강가였습니다.
당시 포로민 사이에는 두 목소리가 엇갈렸습니다. "곧 돌아간다, 예루살렘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헛된 소망과,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절망입니다. 바로 그때 강가의 하늘이 열렸습니다(겔 1:1).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보좌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만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니라, 포로의 강가까지 찾아오셔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먹이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겔 3:1–3, 17). 그리고 그의 혀를 입천장에 붙게 하셨습니다.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겔 3:26–27). 여기서 "꾸짖는 자"로 번역된 말은 책망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둘 사이에서 판결하고 중재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에스겔은 이제 자기 판단으로 백성을 꾸짖을 수도, 백성의 편에 서서 하나님 앞에 변호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에만 입을 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환상 중에 에스겔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끄십니다(겔 8:3). 그러나 그가 본 성전은 우상과 가증한 일로 가득했습니다. 장로들은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겔 8:12) 말했지만,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겔 8:6). 마침내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서 동문으로, 동문에서 성읍 동쪽 산으로 떠나갑니다(겔 10:18–19; 11:22–23). 이 단계적인 떠남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 비극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 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 떠나는 순간에 하나님은 흩어진 백성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겔 11:16). 영광은 성전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이 함락되었고,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온 한 사람이 에스겔에게 "그 성이 함락되었다"라고 전합니다(겔 33:21). 그 전날 저녁,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입을 여셨습니다.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겔 33:22). 3장에서 막혔던 입이 풀리고, 이제 하나님은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겔 36:22).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며(겔 36:26–27),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어 큰 군대로 일으키십니다(겔 37:1–10). 떠났던 그 동쪽에서 영광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고(겔 43:2–5),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죽은 것들을 살립니다(겔 47:1–12).
그리고 에스겔서는 새 성읍의 이름으로 끝납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겔 48:35). ‘여호와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돌아보면 그 이름은 마지막에 주어졌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렇게 계셨습니다. 포로의 강가에도, 심판의 자리에도, 회복의 약속에도 여호와께서 거기 계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적용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도 그발 강가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익숙한 자리를 잃고, 기도가 막히고, 하나님이 떠나신 것 같은 시간입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과 삶을 말씀 앞에 비추어 보며, 혹시 하나님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고난 가운데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흩어진 백성에게 친히 성소가 되어 주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그발 강가에도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고난이 길어질지라도, 장차 주실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오직 믿음으로 오늘을 걸어갈 뿐입니다(고후 4:1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