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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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 49절, 52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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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31)-기쁨


행13:49,52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사람은 기쁨을 추구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기뻐할 일 보다는 아프고 슬픈 일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름 기쁨의 대상을 정하고 그것을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어느 기쁨이냐, 기쁨의 대상에 대한 선택입니다. 무엇이 나의 기쁨인가, 이것이 우리의 마땅하고 정직한 질문이어야 합니다. 물론 정직한 대답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기쁨을 뜻하는 영어 단어 joy와 pleasure가 나뉩니다. 똑같이 기쁨으로 번역되지만 기쁨의 대상이 다른 것입니다. 이를 위해 묻습니다. 언제 기쁨을 느끼셨습니까?


제가 어려서 가장 처음 큰 기쁨을 느꼈을 때는 아버지가 세발 자전거를 선물로 사오셨을 때입니다. 그날 저녁 늦게까지 자전거를 타며 흥분한 가운데 놀았던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렇게 며칠 자전거를 타며 기뻐했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자전거 타는 것이 싫증이 났고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래 전 가수 서유석의 노랫말과 같았습니다.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며

얼싸안고 기어이 부셔버리는

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Pleasure의 한계입니다.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쁨이 조금씩 사라지고 다른 걱정이 생기게 합니다.


Pleasure는 그 잠깐의 기쁨 때문에 우리를 노예로 만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Fun으로 시작합니다. 마약에 빠지고 성에 탐닉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천천히 무서울 정도로 빠져들게 합니다.


처음에는 다 자신이 콘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쾌락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비롯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으로 믿음의 열매이자 성령의 역사입니다.


헬라어 '카라(χαρά)'로 불리는 joy는 순간적인 기쁨을 넘어 내면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기쁨의 영’으로 믿는 자에게 계속해서 흘러 나오는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선택할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자체가 기쁨의 근원이 됩니다. ‘기쁨(카라)'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한 선물인 은혜(카리스)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기쁨이 제자들에게 충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내면의 기쁨을 추구하는 선택을 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 선택은 일시적으로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내면의 평안과 기쁨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입니다. 그 선택이 기쁨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소아시아로 떠났던 바나바와 사울 일행의 선교 행적은 ‘무작정 선교’였습니다. 그 당시 무슨 선교 전략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가서 부딛쳤습니다. 요즘 말로 ‘맨 땅에 헤딩’입니다. 선교학에서 이를 ‘낙하산 전략’(Parachute strategy)라고 재미있는 이름을 붙쳤습니다. 그냥 낙하산으로 점프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깊은 기도를 통한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쁨은 말씀에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자 그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후에 이렇게 소고합니다.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전1:21).


아무 전략도 없고, 준비한 것도 제대로 없지만 그들의 ‘미련함’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기쁨이 그들의 기쁨이 된 것입니다.


진정한 내면의 기쁨을 원하십니까? 먼저 기도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그러나 너무 자신의 잣대로 ‘재지’ 마십시오. 성령의 감동하심을 믿고 ‘맨 땅에 헤딩’이라도 하십시오.


선교를 갈 것인가? 너무 재지 마십시오. 전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 너무 이것저것 따지지 마십시오. 조금 ‘미련해지십시오’ ‘전도의 미련한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기쁨이 우리의 기쁨으로 전이됩니다. 이제 그냥 해보십시오.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기쁨은 순종의 영입니다. 그때 뮬 밀듯 우리 내면에 넘쳐 흐릅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기쁨의 영이 넘치게 하소서

마음에 감동을 놓치지 않고

순종하게 하소서

더 이상 미루지 않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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