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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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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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 참포도나무 안에 거하라!_자기선언7

본문 : 요 15:1-6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은 「팡세」(Pensées, 생각한 것들 thoughts 즉, 명상록)의 제 3장 <내기의 필요성에 대해>에서 “하나님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당신은 어느 쪽에 내기를 걸겠는가? (파스칼의 내기 (Pascal's Wager)) 라고 도전했습니다.


사실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내기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미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출항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릴 지도 모를 두 가지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진실과 행복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이 피하여야 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과 비참함입니다.

1)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득실(得失)이 있겠습니까? 

신이 존재한다고 내기를 걸고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는 당신은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천국은 물론 내기 돈도, 인생의 행복과 진실도 얻습니다. 

2)반면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경우는 지옥으로 떨어지며 이 세상에서도 잘못과 비참함 가운데 지내며 내기 돈도 잃습니다.

3)혹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이 존재한다고 내기를 건 당신은 천국이나 지옥 아무 곳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내기 돈을 다소 잃지만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4)반대로 신이 없다고 내기를 걸고 그런 방식으로 인생을 지낸 사람은 내기 돈을 다소 벌지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인생의 값을 치르게 됩니다.

결국 파스칼은 인간은 주저하지 말고 “신이 존재한다”는 편에 내기를 걸고 살아야 인생을 잘 사는 것임을 역설했습니다.


미국 어느 연구소에서 18세기에 살았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과 맥스 쥬크의 가문을 조사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책으로도 소개했습니다. 맥스 주크는 무신론자였는데 그의 자손들은 대부분 잘못 살며 비참했습니다. 반면에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는 신실한 신앙인으로서 진실과 축복 속에 매우 훌륭한 자손들을 배출했습니다.


위의 두 예화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공통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에게 붙어 있음”과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있음”이 극과 극처럼 완전히 대조적이란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이 사실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느냐? Remain?   아니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있느냐? Not remain

별거 아닌 차이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이에 따라 전혀 상반된 결과가 도출된다는 진리입니다.


1. 오늘 본문 1절 전반에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7번째 자기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유일한 그 참 포도나무요” I am the true vine 

사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적 실패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당연히 “참”이란 단어를 덧붙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했습니다. 심지어 “극상품 포도나무”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사 5:2).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앞에서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유대 민족은 갈수록 신앙이 타락하여 '들포도'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구약의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악한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유일한 “그 참 포도나무”라고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영적 새 이스라엘의 도래를 천명하는 선포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첫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계시된 에덴동산의 '그 생명나무'(창 2:9)입니다. 장차 신앙에 승리한 성도가 하나님의 천국에서 맛볼 '그 생명나무'(계 2:7)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만이 영육심간에 생명을 주는 유일한 “그 참포도나무”임을 아시길 축원합니다.


2. 나아가 본문에서, 가장 근본적인 세가지 요소의 비유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즉 포도나무와 가지, 그리고 열매를 맺게 하는 포도원 농부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주님은 적어도 3가지를 강조하십니다.

1)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강조하십니다

포도나무는 생명력이 끈질기고 왕성합니다. 그루터기만 남아도 언젠가는 가지가 돋으며(참조, 사 11:1), 한그루의 나무에서 난 가지들이 온 마당을 그늘지게 하고 수많은 열매들을 맺습니다. 바울은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유대 나라의 하찮은 이단 종파의 괴수가 아니라 온 민족에게 생명을 주시는 참되고 새로운 근원이 되심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 생명과 은혜는 율법 종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함을 증거한 것입니다. 본문 5절 중반 “... 과실을 많이 맺나니 ...”


2) 그리스도와 신앙인의 연합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은 본문이 포함된 유월절 설교를 본격적으로 행하시기 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포도주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막 14:24).

그리고 이어진 본문에서 나와 너희는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생명 관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 다시 말하면 주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십자가 대속의 보배로운 피로 맺어진 생명 관계라는 말씀입니다. 나무와 가지는 한 진액으로 생명이 소통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보혈을 통하여 한 생명으로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바라시기에 열매가 없는 가지는 제거해 버리십니다 (본문 2절). 나아가 포도나무에서 제거된 가지는 즉각적으로 말라져 버리며 심지어 불살라진다고 까지 경고합니다 (본문 6절). 

사실 포도나무의 유용 가치는 꽃이나 목재나 잎이 아닙니다. 오직 '열매'입니다. 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은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불신자와 위선자들은 물론, 신앙이 없어 예수님과 연합하지 않아 열매없는 교인들도 함께 심판받게 됩니다. 

때문에 꽃처럼 찬란한 종교적 업적이 참 그리스도인이 된 증거라고 여김은 어리석습니다. 잎처럼 무성한 전통을 자랑함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무처럼 교권주의를 내세워서도 곤란합니다. 오직 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열매나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 등이 그 영혼과 삶에 알알이 맺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력이 넘치는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백해졌지요? 때문에 예수님은 유일한 참 포도나무이신 “자신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라고 권하는 겁니다. 

본문 4절 전반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거하라, remain, 헬 메노, “는 원어로 4절에 3번, 5절과 6절에 각 1번씩 도합 5번이 본문 안에서 쓰였습니다. 

영어 remain은 4절에 4번, 5절과 6절에 각 1번씩 모두 6번 사용되었습니다.

한글로는 “거하라”는 3번, 같은 의미이지만 다른 표현인 “있으면”으로 3번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에, 헬, , 엔”은 강력한 연합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도 "그리스도 안에" "주 안에" 등 계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문구입니다. 


신앙을 통하여 주님과 연합하여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곧 주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지속하라는 것입니다(Barnes, Reynolds). 

이 말씀은 믿음의 변절을 경고합니다. 즉 한번 믿고자 한 결단을 끝까지 성실하게 끌어가라는 말씀입니다 (Barrett, Hendricksen). 소극적인 면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버리려는 모든 악한 시도에 항거하여 예수님과 그의 말씀 가운데 우리를 복종케 하는 것입니다.

더하여 성령님의 계속적인 감화 감동을 받아 믿음의 선한 일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칼빈과 렌스키). 적극적인 면으로, 신앙활동을 꾸준하게 계속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찬양, 예배 등의 모든 영적인 활동은 물론 선한 사역과 봉사 등등에 적극 참여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몸인 교회 공동체와 함께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 몸이며 우리 신앙인들은 그 몸의 지체입니다.

“그[예수님]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엡 1:22-23).

“우리는 그[예수]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 5:30).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과실을 더욱 맺게 하도록 우리를 더욱 더 깨끗케 하십니다. 본문 2절 후반 “...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나아가 우리는 저절로 과실을 많이 맺게 됩니다. 본문 5절 중반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할렐루야!


우리 모두 파스칼의 내기에서 시사되었던 것처럼, 조나단 에드워즈 가문에서 증명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더욱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특히 “그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더욱 연합하며 교회와 함께 움직임으로 신앙이 더욱 거룩해지시길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보다 풍성한 하늘의 열매와 현세에서의 과실 또한 주렁주렁 맺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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