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40b3f5e2c2989e5eb2a312d2d64e3ece_1674517773_4484.jpg
 
 

사도행전 9장 31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작성자 정보

  • 복음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오늘 복음(18)-위로


행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예수님은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로(요14:16) 소개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또 다른’(another)이라고 못박듯이 소개하신 것은 성령님이 예수님과 동일한 성격을 가진 분이란 의미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과 같은 역할을 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임마누엘’(God with us)이란 이름으로 소개된 예수님의 사역과 동일한 역할을 하시는 분으로 소개하신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3) ‘임마누엘’은 히브리어 단어 '임(עִם, 함께)'과 '누(נוּ, 우리)'와 '엘(אל, 하나님)'이 결합된 형태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를 음역한 것으로, "곁에서 도움을 주는 자"라는 뜻으로 임마누엘과 같은 의미를 같습니다

保 (보): 보호하다, 지키다

惠 (혜): 은혜, 자비, 선물

師 (사): 스승, 지도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보혜사(保惠師)는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는 스승’ 또는 ’곁에서 돕는 자’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위로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납니까? ’말할 수 없는 탄식‘의 동행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세라젬 헬스앤뷰티 대표 조서환씨의 이야기에서 동행의 사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조서환씨가 육군 소위로 전방에 근무하던 어느 날 부하사병의 실수로 수류탄 사고를 당해 한 쪽 팔을 잃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 중 대학 때 사귀던 여자 친구가 병문안을 왔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 여자 친구에게 “팔이 없는 나를 지금도 좋아하느냐?”고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물었습니다.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반신반의 하면서 묻는 질문에 여자 친구는 “나는 너의 팔을 좋아한 것이 아니고 너를 좋아했기 때문에 팔이 있고 없고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마치 천지를 다시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자 친구는 그 때부터 병원 근방에 방을 얻어놓고 병원엘 드나들면서 간호에 간호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생을 한 팔이 없는 사람의 팔이 되어야 하는 딸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의 딸에게 그 남자를 포기하고 새 길을 찾을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딸은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만약에 아버지가 한 팔을 잃으신다면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세요?” 그 말에 아버지도 딸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남자와 사귀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그는 제대하여 한 팔이 없는 것만큼 더 큰 노력을 하여 KTF에 근무할 때 영상통화를 가능하게 앱을 개발하는 업적을 세워 통신사 부사장이 되었습니다.


또 애경산업에서는 린스와 샴푸를 합친 효과를 내는 ‘하나로’를 개발했고 20세부터 80세까지 사용할 수 있는 2080 치약을 개발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맡은 바 최선을 다 한 것입니다.


조서환씨의 아내는 미래의 남편에게 가장 큰 위로와 힘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떠한 처지가 되던 ‘함께 있어준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과 ‘보혜사’에 담긴 의미입니다.


Ministry of Presence(함께 있어 주는사역)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위로자’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성령의 동행하심이 초대교회 가운데 교회 가운데 나타나심으로 엄청난 핍박 가운데에도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위로입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싶으면 함께 머물러 주면 됩니다. 동행의 삶을 그 누군가와 나눌 때 소망이 싹트게 됩니다. 어려움에 있는 분과 함께 동행할 때 그 상황이 끝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위로는 함께 하며 이끄는 것입니다. 즉, 천성을 향해 ‘동행’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말씀으로 영혼의 만남이 있는 것도 ‘동행’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위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동행 때문입니다.


오 주여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성령의 위로에 감사합니다

우리도 연약한 자와 동행함으로

위로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작은 위로‘로 빛을 보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1,184 / 18 페이지
번호
제 목
이름



최신글 모음


새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