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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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1-11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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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요한복음 8:1-11

제목:사랑은 받는 대상의 가치를 올려 주는 것



여러분의 눈에 사랑이 없이 이웃을 보면 제일 먼저 어디에 머물게 되나요? 사랑이 메말라 버린 눈은 외형적인 것(외모, 소유, 위치, )에 머물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빨라 집니다. 평가가 빨라 집니다. 함부로 말합니다. 아주 우습게 보기가 쉽습니다.


반면에 사랑의 눈이 충만하면 머무는 곳은 내면을 향합니다. 경솔함 보다는 진지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 본다는 것은 사랑받는 대상의 가치를 올려 주는 겁니다. 사랑받는 대상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동일 합니다. 상대방의 가치를 올려 주었을때에 반응은 어땠나요? 상대방이 굉장히 좋아 하는 것을 봅니다. 누군가 자신을 치켜 세워 주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면서 상대방의 가치를 올려 주는 겁니다. 물론 이런 표현들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너무 깎아 내리는 데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를 향해 다가 오십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상대방의 가치를 올려 줍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앞에 놓고 돌려 치려는 자들을 향해 말씀 합니다.


우선 율법에 익숙한 자들의 눈입니다. 이들은 틈만 나면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런데 입은 하나님 사랑을 말하는 데, 행위는 사랑과 전혀 상관없는 돌을 먼저 듭니다.


이들은 여인의 형편을 고려할 줄 모릅니다. 외형적인 것만 보고 쉽게 판단 합니다. 사랑의 눈이 멀어 있다 보니까 돌부터 들고 칠 준비를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 합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연약한 여인을 향해 돌을 내리 칠려는 기새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7절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앞에 모두가 줄행랑을 칩니다. 많던 무리들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에게 말한 이유는 뭘까요?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는 겁니다. 말씀은 늘 거울이 됩니다. 말씀이 없으면 자신 만만해 합니다. 그런데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나를 정확하게 봅니다.


예수님과 창녀만 남았습니다. 두 사람간에 인격적인 대화가 오고 갑니다. 예수님께서 너를 고발하였던 그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인이 대답합니다.


11절 “대답하여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예수님이 여인을 바라보는 눈을 보세요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여인을 향한 사랑의 눈입니다.

아가페 사랑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는 용서와 사랑입니다.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은 상대방의 가치를 높여 주는 겁니다 .사람들은 무시와 업신여김으로 함부로 취급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존귀한 자로 대우 합니다 .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가서.. 예수님은 삶의 방향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쫓아가면 됩니다 .


다시는 .. 지금까지는 죄된 인생을 살았다면 다시는 반복된 길로 가면 안됨을 알려 줍니다.


죄를 범하지 말라..

무슨 의미 인가요? 유혹이 사라진다는 것 보다는 취향이 바뀌는 겁니다. 우리 안에는 늘 죄의 뿌리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유혹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은 유혹을 이겨내라는 말씀입니다.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삶을 즐겁게 하라는 의미 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여인의 삶을 새로 세우고 계십니다 .

하나님의 사랑이 한 여인의 인생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임을 알고 나니까. 인생 길이 달라 집니다. 우선 누구나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율법에 똘똘 뭉쳐 있는 사람들 눈에는 돌로 쳐 죽여야 할 대상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용서가 가능 합니다.


용서를 받은 자로부터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제시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인의 일상의 삶을 봅니다.먼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첫째, 자신을 바라보는 눈 입니다.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 것은 지나갔음을 확신

합니다. 너는 내 자녀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니라 ..여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 합니다.


둘째,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말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라 입니다.

여인은 지금까지 자기 정욕을 불태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여인이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갑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영을 따라 사는 일상을 삽니다.


롬 8:4.. 육신을 따라 사는 자는 육신의 소욕을 생각하지만 , 영을 따라 사는 자는 영의 소욕을 늘 생각합니다…육신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전에는 남자를 기다리는 삶입니다. 손님이 많고 적음에 희비가 엇갈립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에 자신의 감정이 휘둘리지 않습니다.


육신의 본능에 만족하며 살지 않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부합하는 인생을 추구 합니다.

세상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성령을 의지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셋,아침부터 새롭게 기도로 시작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시작하겠다는 겁니다.

오늘 하루가 예수님처럼 긍휼의 마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여인의 기도 내용에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눈을 극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변했지만 세상의 눈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수군덕 거릴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귓가에 들려 온다 할지라도 극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넷, 그동안 죄로 갇혀 있던 재능 곧 카리스마를 개발해서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여인에게 주신 재능을 찾는 겁니다.

창녀와의 대화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은

하나, 주님이 바라보시는 눈은 동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웃을 향한 눈 아가페의 사랑으로 바라보라. 아가페 사랑이란 나의 시각이 아닌 주님의 시각으로 이웃을 바라보라.


하나, 똑같은 사랑 은혜 용서가 당신과 나에게도 주어집니다.


둘, 끝이 있고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사랑은 잔소리가 아니라 상대방을 존귀히 여기는 마음임을 알자는 겁니다.


마지막, 사랑은 연습해야 합니다.

주님이 한 여인을 바라보는 눈은 인격적으로 바라 봅니다 .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달라진 인생을 기대 합니다 .


주님이 보여주신 아가페 사랑으로 이웃을 바라봅시다

지금까지 나의 사랑의 방식은 어떠했나요?

나의 신앙 수준에 맞춰 사랑 보다는 돌을 먼저 들지는 않았는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의 모습들..굉장히 사랑의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랑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나를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니까.. 상대방을

소중히 여길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낮아진 자세로 사랑하라

가정 안에서도 부모된 자들이 보여준 사랑의 가치는 부모가 기준이었습니다.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 엄마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데 아이들을 이용합니다.

주의 해야 할 일은 내 화풀이를 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걸 주입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위신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기의 명예를 먼저 생각 합니다 .


김형석 교수는 사랑이란 “자식의 가치를 알아서 키워 주는 것 이다.

”그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식의 자유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한 인격의 핵심은 자유다. 자기 삶에 대해서 책임지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사랑의 가치.

사랑받는 사람을 향해 가치를 올려 줍니다. understand’라는 영어 단어는 이해한다는 의미입니다. ‘under’와 ‘stand’가 합해져서 형성된 단어인데 under는 아래, stand는 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쪽에 서서모든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이해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이 사람의 경우도 이해되고, 저

사람의 경우도 이해됩니다.


율법사들은 여전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들도 돌에 맞을 인생입니다. 이런 고백이 없습니다. 남들에게는 쉽게 돌을 들지만, 정작 자신은 주님 앞에서 돌 맞을 인생임을 고백 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자들 입니다.


우리는 남을 바라보는 사랑의 눈이 자라가야 합니다.

아가페도 연습이 필요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가치를 높여 줄려면 일곱 번 용서하면 될까요 라고 베드로가 말합니다. 아니다 일곱번씩 일흔번씩 하라 고 했습니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남을 향해 쉽게 돌을 먼저 던지는 것 아니다.


상대방을 향한 가치를 올려 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장 천한 여인에게 보여주신 아가페 사랑..우리 모두 익숙해져야 할 사랑의 눈입니다.


이런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때에 하나님 나라는 점점 더 가까워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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