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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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9장 1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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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64)-‘사도외전’ (Acts 29)


행29:1 “이제는 너희가 나설 차례이니라.“


‘외전’이란 말은 side story란 뜻으로 본 스토리는 끝났지만 미진하게 느껴져서 붙인‘사족’(蛇足)이란 의미입니다. 불필요하지만 집고 넘어갈 만한 의미있는 부연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이후에는 사도 바울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없기 때문에 성경의 다른 부분이나 성경 외의 자료들로 그 행적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감금되었다가 잠시 석방되었고 후에 다시 투옥됩니다.


그리고 네로 황제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울,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영화에 바울이 남긴 마지막 말이 인상 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는다.”


잘 모르는 것이나 100%가 아닌 것에 생명을 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은 진짜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거기에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이제는 핍박을 받고 쫓겨나서 다른 곳으로 갈 필요 없이, 로마에 갇혀서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사람들, 즉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한 영향을 끼쳤던 겁니다.


일부 유대인들과 로마 사람들은 2년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거부하지 않고 성실하게 듣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감옥 속에 핀 기적’입니다. 많은 새 생명이 잉태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시간들은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투옥 중에도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를 썼습니다. 소위 ‘옥중서신’으로 불려지는 편지들입니다.


잠시 석방되었을 때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썼으며 나중에 재투옥되어 마지막, 순교의제물이 되기 전 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새 물결 속에서 바울은 “거침없이 담대하게” 선포하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든지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고 예수님의 일을 설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빌레몬서를 통해서는 도둑질하고 도망갔던 노예 오네시모를 용서받게 함으로 교회의 인물로 쓰임 받게 합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로마 군대의 핵심이며 황제 친위대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밖의 모든 사람, 즉 수많은 로마 귀족들 심지어 왕족들 집안에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를 그토록 사랑하고 아껴주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 (문안한다)”(빌4:22).


무슨 말입니까? 그 당시 황제는 네로인데, 심지어 네로의 친인척 가운데 몇몇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갇혀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이 찾아와서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난 겁니다. 우리도 이런 확신을 가져야합니다. 그 어떤 것도 복음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입니다.


사도행전 묵상을 끝내면서 얻은 큰 기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먼저 신약의 흐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울 서신들이 어떤 상황에서, 왜 쓰여졌는가를 더 잘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신약성경을 나름대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재구성‘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의 상황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3장 ‘사랑 장’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말씀이 왜 다른 데는 안 나오는데 고린도전서에는 있는가?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는 사랑이 필요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갈라져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왜 바울이 영적 전쟁에 대해 말씀을 합니까? 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까? 왜냐하면 그곳에는 아데미 신전이 있고 영적전쟁이 아주 치열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스페인어로는 ‘Los Hechos’ 라고 번역합니다. 직역하면 ‘행해진 것들’이란 표현입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해 행하신 것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행적들이 ‘믿음의 계보’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는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장’(11장)에 구약 인물들의 믿음의 행적으로 믿음을 설명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앙에도 계보가 있습니다. 이젠 우리의 이야기가 ‘사도외전’의 계보에 들어갈 차례입니다.


정치계나 경제계에서 인맥과 계보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보는 예술계 및 문학계에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법조계에도 학연과 지연은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주먹세계에도 계보가 있습니다.  그냥 아무 계보 없이 독불장군으로 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계보에 우리의 성품에 맞게 행함으로 속하는 겁니다. 흔히 바울을 믿음의 사도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 베드로는 소망의 사도라고 그 특징을 들어 명명합니다. 그리고 그 행적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계보에 들어갈 것인가? 이제는 우리도 마음에 정해서 그 발자취를 따라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사도외전‘에 우리의 기록을 올릴 차례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나설 차례이니라”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아침입니다.


오 주여

이제도 우리도 우리의 행적을 

‘사도외전’에 싣게 하소서

우리가 속할 믿음의 계보, 소망의 계보,

사랑의 계보를 바라보고 나가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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