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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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4장 6-11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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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모든 사람을 향한 구원

본문: 요나 4:6-11


요나서를 읽으면서 강렬하게 느끼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향해 구원을 베푸시기를 원하심을 알게 합니다. 요나 4;11 “..좌우에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명이요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큰 그림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죄인의 멸망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여 살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나 1;2에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보시고 악독이 극에 달했다 그러니 가서 외치라.. 앞으로 40일 안에 성읍이 완전히 무너지리라..


그런데 하나님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 베푸시기를 더 좋아 하십니다.

요 4;11에 “…좌우에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명이요 내가 어찌 아끼지 해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니느웨르르향한 자비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 큰 성읍 니느웨가 그냥 폭삭 무너지는 걸 원치 않으신 겁니다. 지금 당장은 심판 받아 멸망 할 수 밖에 없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은 심판의 목적을 말하게 하여, 돌아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큰 뜻인 모든 사람을 향한 구원과 심판을 말하게 함으로써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자비 하심을 보여주고 있지만 요나는 반대로 행동합니다. 무자비한 삶을 추구 합니다.이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요나가 보여주는 무자비함사이에서 벌어지는 분노와 소망을 발견해 볼 수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탐탁치 않게 여김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요나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떠나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도망치는 요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요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광경들이 하나님이 니느웨를 향한 마음이 어떠한지 보여 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 하다가 혼쭐난 요나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하지만 풍랑을 만납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누구 때문인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 탓인지 알아 보기로 합니다.


놀랍게도 제비를 뽑은 결과는 바로 요나가 뽑혔습니다. 선원들이 요나에게 집중 공격을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자초 지종을 말하라.


요나는 설명합니다. 그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 중에 있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 그의 얼굴을 피하여 라는 의미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뜻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요나가 선지자로서의 소명에서 도망쳤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다고 요나는 결코 신앙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요나는 이렇게 답변을 합니다 요나 1:9절 이하에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라 .. 내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모두가 두려워움에 떱니다.


선원이 질문 합니다.

“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점점 파도는 흉융해 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하겠느냐 .. 요나는 말합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차마 처음에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삼일을 지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도하면서 다시 토해 내게 하십니다.

큰 홍역을 치른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사십일 후에 멸망 하리라.. 이 말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곧 바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야 이 니느웨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끝장이야.. 하나님의 계획을 증거하면서도 속으론 멸망을 상상해 보면서 통쾌해 합니다


요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 했지만 하나님은 악독한 백성들이 회개하자마음을 바꾸신 것입니다

요나는 이런 니느웨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뭘 느꼈을까?


나는 하나님 말씀에 처음에는 불순종했다고 된통 당한 후에 돌아왔는데 느니웨 사람들은 듣자마자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앞에 자신의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즉각적으로 순종 합니다.불순종은 분노를 일으키게 합니다.


반면에 순종은 소망을 갖게 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들으면서 이런 소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회개하면 살려 주실 것이라는 소망 입니다.


이들의 소망 대로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의 진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수 있도록 기회를 베풀어 주십니다.


극에 달한 인간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

요나 3:10에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는 곧바로 하나님께 분노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나 자비로움에 대한 배신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배신을 때림에 대해서 분노 하면서 요나4:3에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성질을 부리고 분노를 하자.. 하나님은 내가 성내고 분노 하는게 옳으나 질문 합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요나는 자비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바다에서 죽은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셔서 요나를 바다에서 살려내셨습니다. 자신에게 베푸는 자비는 좋아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면 아주 싫어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원에서 품꾼에게 준 한 데나리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침부터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온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이때에 아침부터 일을 해서 한 데나리온을 받은 품꾼이 주인에게 따집니다.

일한 시간도 차이가 나는데 왜 그렇게 주느냐? ”그때에 주인이 한 말이 뭔가요? “ 한 데나리온이거슬리냐 지금 시기하고 있는 것이냐 ” 라고 대답을 하십니다.


우리는 왜 분노 하나요?

나는 용서 받는 건 괜찮고, 남이 용서 받는 건 절대로 안된다는 생각의 차이에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나는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 하나님은 용서 하십니다. 심판을 거두 십니다. 내 생각과 다르게 선한 결과를 보여주는 하나님께 은근히 분노가 일어 납니다.


둘째, 요나에게 박넝쿨를 세우시고 거두심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향한 구원의 마음이 얼마나 강렬한지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요나에게 박넝쿨을 만들어 줌니다. 요나는 박넝쿨로 인해서 기뻐합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 먹어 시들게 합니다. 요나는 박넝쿨이 없어 머리가 뜨겁자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낫다고 성을 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질문 합니다. 왜 너는 박넝쿨의 유무에 따른 분노와 성냄에 대해서 직격탄을 날립니다. 요나야.. 너는 박넝쿨을 위해 수고도 아니하고 재배도 아니했건만 하룻밤 사이에 말라버린 박넝쿵을 아꼈거든..


11절 입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십이만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하나님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이 요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마음ㅡㅡ요나는 자기가 기르지도 않고 재배하지도 않은 박넝쿨이 말라버린 것을 아까워 합니다.


하물며 죽어가는 십이만여명을 그냥 죽어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마땅하냐는 겁니다.

요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을 닮아가지 못합니다.


여전히 자신과 관련된 것에는 짜증을 냅니다.

마지막, 주님의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요나 4;11에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이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질문 앞에 요나의 답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11절의 질문은 바로 오늘 내게 던져 주시는 질문 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행동을 만듭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생각과 갈등 구조를 만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오심은 내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자비 속에서 나의 영적 태도는 어떠한가?

요나처럼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무 무자비하지는 않는지.. 요나를 보면서 마치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듯 합니다 .너무 옹졸한 자신.

사실 요나가 니느웨로부터 엄청난 손해를 보았거나.. 침해를 당한 건 없습니다. 그저 남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마치 자신이 심판자처럼 행동 합니다.


요나의 분노의 원인은 뭘까?

하나님께서 누가 그 축복을 받아야 할지 요나와 상의하지 않고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아낌없이 베푸셨다고 비난한 데서일 것입니다.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자비와는 전혀 다른 무자비한 마음을 갖고 이웃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요?

타인을 향한 무자비보다는 타인을 향한 여호와의 풍성한 사랑을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또 하나..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보자

하나님의 부르심은 항상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내 생각과 충돌 합니다 .갈등이 일어납니다. 왜 그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지.. 그냥 박살을 내야지.. 하는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자비와 충돌 입니다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감정에 의해 정의되ㅐ하나님의한테만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은 결과가 어떻든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부르심에 도망치지 맙시다

하나님의 모든 이들을 향한 구원의 마음이 자신을 통해서 증거 되어지도록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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