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장 38-42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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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마음
본문: 요한복음 19:38-42
인생을 살면서 주변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실패로 인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런 상황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불쌍한 마음이 드시나요? 빨리 달려가서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지요? 마음은 원이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다음에는 꼭 도와야지 하면서 다음 기회로 또 미루시나요? 도와주어야 하는 데 하면서 그냥 발만 동동 구르십니까?
많은 경우에 한 번도 어려움이나 고통을 겪어 보지 않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말을 합니다. 누구나 겪는데 “뭐 그렇게 힘들다고 난리를 치는 거야.”.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뭘 얻겠다고 저렇게 줄을 서 있는거야.”. 아픔, 상처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쉽게 말을 합니다.
같은 성도로서 우리가 사는 크로노스 시간에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방해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로 행동으로 가로 막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크로노스 속에 개입하시고 진행해 가실 일을 말합니다.
상대방이 힘들어 할 때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합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함께 하심을 함께 공유 하는 겁니다. 가는 길 힘들고 지치게 할 때에 “너 혼자가 아니야” 네 곁에는 늘 주님이 함께 하셔“ 이런 말을 전해 준다면 용기가 생겨날 것입니다. 울적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를 도운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갈때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장사를 도운 사람들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채찍에 맞으면서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피가 나고 땀이 비오듯이 하면 어떻습니까? 눈에 짠물이 들어가면 눈이 따갑습니다. 어디 성한 곳이 없는 상태 속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십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내가 대신 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괜스레 돕는다고 말했다가 큰 코 다칠까봐 용기 있게 입도 벙긋 못합니다. 잘못 말했다가 같은 당 출신이라는 오해를 받으면 자신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이 선뜻 나서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실 때와 죽음 이후에 장사로 도와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주고(혈루증으로 고침받은 여인으로 추정), 십자가를 대신 지고(구레네시몬),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거둡니다.
..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 장면.. 십자가를 대신 지고, 피와 땀을 닦어주고 ..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잘 처리해 주는 것..모두가 남들이 선뜻 나서서 하기 힘든 도움을 용기 있게 감당한 분들 입니다.
우리는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간과하곤 합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재수가 없어서 대신 십자가를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구레네 시몬 같은 경우에는 세 복음서에서 억지로, 붙잡혀 라고 언급합니다.
피와 땀을 닦아 준 사람은 아마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치유 받은 여인이 아닐까 말을 합니다. 여인은 흘리는 피와 땀을 닦아 주면서 무슨 말을 했을까요? 예수님 너무 감사 합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모진 고통을 당하십니다. 피을 닦아주면서 자신 또한 눈물을 흘립니다.
사실 시몬이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사실을 볼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실 때에 흉측한 모습과 극도로 약화된 상태를 말해 줍니다. 이걸 본 병사들이 구레네 시몬을 억지로, 붙잡아 십자가를 지게 했다는 점은 명령받은 병사들이 골고다까지 예수를 끌고 가야 했을 것입니다.
억지로 붙잡혀 십자가를 지고 가지만 반항하지 않습니다. 잠시나마 예수님의 짐을 덜어주려는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돈을 지불해서 향품을 사고 하는 일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도움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겪으실때에 돕는 이들은 제자들이 아닙니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돕고 함께 합니다. 오히려 도망가고 모른다고 발뺌을 합니다. 이들의 헌신과 수고는 줄곧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뤄진 사건들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시체를 무덤에 잘 안장해 준 사람들입니다. 바로 아리마대 요셉 입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입니다. 사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놓고 예수의 제자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요셉이 한 일은 빌라도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당돌하게 달라고 요청합니다. 38절에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요셉은 공회원이라 얼마든지 가능 합니다.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38절 하반절에 ”..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왜 갑자기 예수의 제자됨을 숨기던 아리마대 요셉의 태도가 바뀌었을까?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춘 하나님의 섭리이다. 예수님께서도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고백 합니다.
하나, 요셉의 갑작스런 이런 마음이 발동한 것은 나의 역할이 이 때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두 명의 공회원이 한 일이 속보로 뜹니다. 예수의 시체를 장사 지내기 위해 향품을 사고.. 뒷 감당을 잘했당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집니다. 궁금증이 생겨 납니다.
왜 밤중에 찾아 왔던 이들이 대낮에 수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예수의 시체를 장사 지냈을까?
다른 대답이 없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속에 이뤄지는 이들의 행동 입니다.
두 사람은 특별히 뭘 깨달았을까?드러내놓지 않고도 제자로 일할 수 있지만 드러내야 할 때에 드러내는 용기 있는 두 사람 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야 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습니다.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하는 겁니다.
또 하나는 씨앗이 열매를 맺으려면 시간이 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말씀을 듣고 .. 근심하여 돌아간 부자 청년 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 네가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깨달은 니고데모 입니다. 멋진
인생이란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때에 끝까지 이들이 삶을 보지 않고.. 중간에 함부로 욕하거나 비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경각심을 줍니다.
하지만 남들이 머뭇거리고 있을때에 중요한 일을 돕는 데 자신을 헌신 합니다. 비싼 향품을 준비하기 위해서 자기 돈을 투자 합니다.
몰약과 침향은 당시 매우 귀한 향료였으며, 특히 침향은 고급 향료로 취급되었습니다. 백 리트라라는 양은 일반적인 장례식에서 사용하기에는 매우 많은 양으로, 왕이나 귀족의 장례식에나 사용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백 리트라는 약 33kg 정도의 무게로 추정 된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드러내놓지 않고 비밀리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있음을 알게 합니다.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는 공인들입니다. 드러내놓고는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지만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클라이막스에 자신들의 과거의 삶이 어떠했는지 노출 시킴니다.
또한 아리마대 요셉의 영적 생명이 바깥으로 흘러 넘쳤다는 점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를 만나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돕고 일을 풀어 가는 상황 속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절실히 느낌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그 영을 바깥으로 흘러 보내는 겁니다. ..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또한 받은 은혜를 베푸는 아리마대 요셉 입니다.
요셉은 죽음을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네 복음서 모두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때 그 분의 시신을 돌본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고통받고 죽은 한 남자의 시신을 안고 있습니다.
마 27:59-60 에 요셉은 시신을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안치하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갔다 “ 라고 요셉은 예수의 죽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받은 은혜를 세마포로 싸서 정중히 안장을 합니다.
또한 부활을 준비한 사람 입니다.
당시 정치범들은 죽더라도 그냥 방치해 두어서 짐승들의 먹이감이 되도록 했습니다.하지만 아리마대 요셉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그냥 방치하면
안된다 고 생각하여 예수님의 시체를 정성껏 세마포로 쌌던 실천을 했던 사람 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리마대 요셉의 도움은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한 사람 입니다.
마지막,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돕는 심정으로 주변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 일환이 됩시다
비밀스런 제자도 있습니다. 늘 저 사람은 돕는 데 익숙해져 있어 라고 소문난 제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라 할지라도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주님의 종들이 되면 어떨까요?
하나, 때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돕는 역할 입니다 . 드러내지 않는 도움입니다. 굳이 남에게 알리지 않는 태도 입니다.
둘,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게가 에스더 왕후에게 너가 왕후가 된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나서야 할 때에 용기를 갖고 나서는 도움입니다.
셋, 서로를 도우면서 서로에게 영적 버팀목이 되는 삶입니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주변을 돌아보면서 사는 겁니다.
나오미와 룻의 관계를 보면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두 사람입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 도와 줍니다. 아름다운 연대를 통해서 삶을 만들어 갑니다.
보아스도 이들을 보면서 돌봐 줍니다.
성도들도 피 한방울 섞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서로간의 섬김, 돌봄의 의식 , 평가하지 않는 모습, 넉넉히 기다려 주는 것..이런 것들이 성도간에 보여주어야 할 공동체의
삶입니다.
넷, 나의 빌라도를 만나야 할 일이라면 믿음으로 요청하는 겁니다.
아리마대 요셉처럼 때론 주님을 돕기 위해서 빌라도를 만나야 할 일이라면 믿음으로 요청하는 겁니다.
누군가의 도움은 상대방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사명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여정에 도움을 끼쳤던 사람들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도 같은 흔적을 남기길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