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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 39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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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16)-세례


행8: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이미 오래 전 가수이지만 ‘냇 킹 콜’은 아직도 그의 명품 소프트 보이스로 기억되는 가수입니다. 영화 ‘모정’의 주제곡,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을 부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열여덟 살 나던 해 어느 봄날 오후, 아버지와 함께 백인 동네거리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젊은 백인 청년이 다가와 아버지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길을 알려주려고 입을 여는 순간, 느닷없이 젊은 백인의 주먹질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스터’라는 존칭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냇 킹 콜의 아버지는 코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일어나 정중하게 사과하였습니다. “아이 엠 쏘리, 미스터.” 이 광경을 보던 주위 백인들은 낄낄거리며 웃었습니다. 


눈이 뒤집힌 젊은 혈기의 냇 킹 콜은 불끈 주먹을 쥐고 백인에게 대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의 팔을 붙들며 나직하면서도 엄격하게 타일렀습니다.


“참아, 냇! 지금은 안 돼. 아직은 안 된다.”

집에 돌아온 그는 한구석에서 분을 삭이지 못해 통곡하며 그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났습니다.


”백인과 대등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흑인이 백인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그는 ‘백인 이상’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백인들도 인정하는 유명 가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에 맺힌 그의 응어리는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 응어리들은 그가 발표한 노래들의 가사에 남아 있었습니다. ‘Too young’이란 노래를 통해 흑인은 늙어도 ‘Young man’이라고 호칭되던 것을 비꼬았습니다.


‘Rambling rose’(넝쿨 장미)를 통해 흑인들이 마치 넝쿨 장미인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Why you ramble? No one knows(왜 넝쿨되어 있나? 아무도 알 수 없다). 인종 차별을 빗대어 비난합니다.


노래들은 히트를 했지만 그의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에 돌아와 ‘세례’를 받고 그 모든 응어리를 풀어내고 부르게 된 노래가 ‘Oh Happy Day’입니다.


Oh happy day, oh happy day

When Jesus washed,

He washed my sins away

He taught me how to fight & pray

기쁜 날, 예수께서 내 죄를 씻은 날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영적 전투)를 싸우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 날입니다.


모든 차별과 응어리를 풀어내고, 뛰어넘어 믿음으로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된 날을 기뻐하며 부른 ‘세례 노래’입니다. 빌립에게 세례를 받은 에디오피아의 내시도 냇 킹 콜과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신뢰를 받고 국고를 맡은 자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고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시’로 자신의 한계와 모멸감을 벗어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며 그 마음을 달래던 그에게 빌립이 나타나 깨달음을 줍니다. 그의 질문에 답을 준 것입니다. 내시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시며 진정한 ‘신분 상승’을 이루게 하시는 분, 예수를 소개합니다.


이에 대한 에디오피아 내시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절실했던 것입니다.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행8:36)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세례 받은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이런 기쁨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냇 킹 콜이 부른 Oh happy day가 그대로 연상이 되는 장면입니다. 이것을 영어 성경에는 “계속 기뻐하고 찬미하며 갔다”로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면서 흑인 특유의 스웨그(swag)를 마음껏 발휘하며 노래를 부르며 간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왜일까? 내시로서 자신을 억누르던 모든 응어리와 한이 풀렸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세례의 특징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3:21)


세례가 죄를 씻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응어리만큼은 확실하게 해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춤을 추며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주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세례는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의식의 일환입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을 바꿔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을 줍니다.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자긍심으로 새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My way가 아니라 His way(주의 길)을 가기로 작정하는 예식입니다.


He taught me how~~

To fight and pray!


오 주여

항상 잊지 않고 기도하며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상황에

대적하게 하소서

싸워 승리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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