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창세기 9장 22-23절 말씀 묵상 [한삼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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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고 말할 것인가, 덮을 것인가?

본문: 창세기 9장 22∼23절,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노아)의 하체(벌거벗음)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렸으나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3장(=인간의 전적타락) 이래로 사람은 죄 자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인간의 죄악을 해결하고자 홍수 심판(Flood=청결과정)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의 죄(부끄러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노아-조상)의 죄(부끄러움)를 다음 세대가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많은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즉 세(함과 셈과 야벳) 아들이 그 아비의 부끄러움(죄)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에서 신자는 명확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부끄러움(죄)을 보고 말하는(=떠벌리는) 자는 저주에 떨어졌고, 보지 아니하고 덮으려는 자는 복과 은혜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1. 아버지(윗세대-조상)의 부끄러움을 보고 말하는 자는 저주를 자초하리라. 사실 우리 신자도 이미 경험하는 바가 있다. 오늘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 동안(대략 30년 정도) 솔직히 누가 더 약점과 허물을 많이 보고 파악하였겠는가? 바로 부모의 약점과 허물을 자녀가 훨씬 더 잘 파악하고 꿰뚫고 있을 것이다. 노아의 세 아들은 최소한 100년 이상 함께 살았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아의 500세에 세 아들을 낳았고 노아의 600세에 홍수심판을 경험하였고 그 후에 포도재배와 포도주로 부끄러움을 드러냈던 것이다. 세 아들 중에서 함은 특이하게 아비의 부끄러움을 목격하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형제들에게 말하였다고 밝힌다. 윗세대(아비)의 부끄러움(죄)에 대하여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까발렸다면 참으로 심각한 인격이었던 것이다. 바로 자기의 아비 곧 혈육이다(공경의 대상임을 생각하지도 않았고 아비를 너무 가볍게 여긴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는 아들이다. 현대사회에서 혹시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 별의별짓을 다 한다(경쟁자를 올무에 빠뜨려 약점을 잡고 이기려고 한다. 중상모략, 거지 증거와 증인 만들기). 가까운 사람의 허물이라면 더욱 많은 생각을 하고서 행동하여야 했을 것이다.


2. 아버지(윗세대-조상)의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고 덮으려하는 자는 복되도다. 셈과 야벳은 함께 옷으로 자기들의 얼굴을 가리면서 아비의 부끄러움(죄)를 보지 아니하면서 그 아비의 부끄러움을 덮었던(covered)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였을까? 먼저 아버지와 자신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인지하였고 존중내지 공경의 태도를 유지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넓게 생각하면 아담의 죄는 우리 모든 인류의 죄인 것이다(대표원리에 따라서). 그래서 아담의 죄와 죽음은 바로 나의 죄와 죽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비의 부끄러움은 더욱 나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국인은 ‘자식이 아비를 욕되게 한다’고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추구하는 자요 그것(허물)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죄가 가리어짐(covered)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롬 4:7)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은 남의 약점과 허물을 가지고 이야기와 영화와 출세하려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의 허물과 부끄러움까지라도 덮으려 하고 가급적이면 보지 아니하는 것을 복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바로 우리가 이런 은혜를, 특히 하나님과 아들로부터 우리의 부끄러움이 가려짐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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