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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요셉의 사랑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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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의 사랑의 손길

본문: 창세기 43장 15-34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어느 학교 선생님에게 열두살 먹은 딸이 있었습니다.

그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딸에게 어머니 역할까지 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일 때문에 딸에게 시간을 충분히 내주지 못하는 게 문제였고,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빨리 크리스마스 휴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시작되자, 첫날 부터 딸은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혼자 지내면서 식사 시간 이외에는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그랬고 또 다음날도 그랬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계속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자 크리스마스 트리에 선물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뜨개질로 짠 한 컬레의 양말이었습니다.

딸은 두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이걸 다 짜야 한다고 얼마나 마음 조였는지 몰라요.

제가 방문을 잠그고 지금까지 했던 건 바로 이 뜨개질이었어요. 이젠 다 짰어요.

아빠 양말이에요! 좋으세요?”

“암, 좋고 말고, 애야, 정말 예쁘게도 짰구나, 고맙다”

아빠는 딸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딸을 덥석 껴앉았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 철없는 아이야, 양말은 시장에 가서 사면 되지 않니? 난 양말 같은 건 원하지 않아.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단 말이야!

난 너와 함께 지내며 너를 사랑하고 너의 사랑을 받고 너의 관심을 사고 싶었던 거야!”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 납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상대방이 잘 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치 않는 것만 해 줍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전혀 모릅니다.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도 그런 일들이 종종 발견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잘 해주고 선물을 주려고 하는데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오히려 자기를 혼내 주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도망갑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이 이런 상황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돈과 선물을 준비하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도착합니다.

요셉은 그들이 도착하자 자기 집으로 데려오게 하고 점심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집으로 인도된 형제들은 두려워 떨기 시작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했는데도 형들은 그것도 모르고 두려워 떱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도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오히려 두려워 떱니다.

아무리 사랑을 베풀어도 사랑을 사랑으로 알지 못하면 그 사랑은 전혀 무익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오히려 하나님을 무서워 하는 하나님으로만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의 요셉의 사랑의 모습을 통하여 ‘사랑이 무엇인지’ 발견하면서 우리 모두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을 많이 받고 이 사랑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사랑은 포기함으로 얻어 집니다.

13, 14절,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 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이 드디어 포기할 수 없었던 막내 아들 베냐민을 포기합니다.

이것은 그가 포기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어서 포기한 것입니다.

베냐민을 포기하지 않으면 양식을 구하지 못해 전 가족이 굶어 죽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이 포기는 그와 그의 가족에 큰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야곱이 포기를 하니까 드디어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입니다.

지금까지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 힘으로 살아 온 야곱이 포기하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야곱이 상상할 수 없는 말을 합니다.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잃으면 잃으리라’고 합니다.

자식을 포기해야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식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자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관리인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항상 자식을 끼고 다니면서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야곱처럼 “잃으면 잃으리라”하고 하나님 앞에 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자녀를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녀가 변합니다.

야곱은 포기 함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고 복을 받습니다.

복의 길목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내가 막고 있는 길목에서 비켜서면 복이 들어 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내려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셉이 형들과 베냐민이 함께 오자 만찬을 준비합니다.

만약 베냐민이 안 왔다면 잔치는 커녕 야곱의 가족에 큰 어려움이 생겼을 것입니다.

베냐민 때문입니다.

베냐민이 야곱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야곱이 놓기 싫어하는 존재입니다. 포기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포기하기 어려운 것을 포기하였더니 잔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만찬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내가 포기하기 어려운 것을 포기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축복은 포기함으로 얻어 집니다.

사랑도 포기함으로 얻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나의 모습이 과연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다니면서, 예수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적인 것을 아직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그것을 포기해야 축복이 임합니다.

아직까지 내 생각, 내 주장, 내 의견을 고집하십니까?

이것을 포기 하세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내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잘 내어 놓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안 내 놓습니다.

자기에게 손해 볼 것 같은 것은 내 놓지 않습니다.

자기의 자존심, 자기 속에 있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은, 자기가 주장한 것들은 잘 내 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 놓아야 우리 속에 자유가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포기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모든 억압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포기할 수 없었지만 결국 포기하자 복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포기할 것은 미리 미리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이 임합니다.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데 포기하지 않고 막다른 길목에 서야 포기하면 그 때는 상처가 너무 큽니다.

포기가 축복입니다. 포기는 잃는 순간이 아니고 얻는 순간입니다.

포기하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포기하면 자유함이 시작됩니다.

포기하면 마음이 순수해 집니다.

반대로 욕심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순간부터 ‘욕망’의 종이 됩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데도 결단이 필요합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포기했기 때문에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가족에게는 복 받는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분명히 기억하세요.

한 사람의 포기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줍니다.

나의 포기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줍니다.

내가 포기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내가 헌신함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복을 받고 기쁨을 누립니다.

세상을 변화 시키는 방법은 나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다른 사람을 위해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변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포기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독생자를 죽기까지 포기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얼마나 포기하는지를 보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있습니다.

아내를 위해 얼마나 포기하는지를 보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포기하고 희생하느냐?’ 여기에 사랑의 척도가 들어 있습니다.

남편을 위해서 나의 자존심, 나의 주장 다 포기하셨습니까?

포기해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주님을 위해 포기한 사람들을 보세요.

주님을 세상의 것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 때문에 세상의 행복과 성공을 포기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전도사님을 만났습니다.

한국의 카이스트에서 항공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근무했습니다

이제는 인생의 행복과 평안함이 보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직장과 위치를 포기하고 신학교에 들어 갔습니다.

이제는 생활고를 걱정할만큼 어렵게 살면서 전도사로 사역하면서도 기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헌신으로 인한 복은 기쁨입니다.

헌신은 헌신의 대상인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는 복을 받게 해 줍니다.

기쁨은 대가를 치르는 사람에게만 옵니다.

고생을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대가를 치를 때 하나님은 헌신의 기쁨과 보람을 안겨 주십니다.

헌신은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합니다. 남의 헌신이 내 헌신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헌신에는 희생이 뒤 따릅니다. 이익을 보려고 헌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손해를 봅니다. 손해 보지 않는 헌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손해가 기쁨과 보람으로 보상됩니다.

고난이 크면 복이 큰 것처럼 손해가 크면 기쁨도 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신앙에 방해되는 것들은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을 섬기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다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남의 유익을 주기 위해서 나의 즐거움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포기가 사랑과 축복으로 오히려 나에게 돌아 올 것입니다.

포기함으로 사랑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사랑을 오해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18절,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일 우리 자루에 넣여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를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요셉은 형들과 동생을 보자 너무 기뻐서 잔치를 베풉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요셉은 기뻐하는데 형들은 불안해 떨고 걱정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상대편은 생각지 않은 일을 걱정부터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만나도 겁내고 나쁜 일을 만나도 겁부터 냅니다.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마음 속이 어두워져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모든 것을 어둡게 해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헛되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죄지은 사람은 누가 부르기만 해도 내 죄를 알고 부르는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죄가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나도 떳떳합니다.

죄가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불안이 찾아 옵니다.

불안하면 불길한 상상을 합니다.


여기를 보세요,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사랑의 손길에 의해 지금 만찬에 초대를 받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총리가 이방인인 자기들을 초대하는데, 영광스러운 일 아닙니까?

그런데도 요셉의 형들은 불안해 하여 두려워 합니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우리를 붙잡아 억류하고 한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 것이다. 우리의 나귀를 빼앗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들의 상상 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것을 단정해 버리고 두려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이런 현상이 생깁니다.

불행은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나 자신이 만듭니다.

아직 일어 난 일도 아닌데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불길한 상상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나는 일찍 죽을 거야!” “어쩌면 나는 암에 걸릴 지도 몰라!” “사고를 당할지도 몰라!”

전혀 그런 징조도 없는데 미리 상상해 버립니다.

잠을 못 자고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과 잘못된 상상으로 자기 안에 있는 아름다운 복과 예비된 복을 막아 버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지금까지 나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왜 미래까지 인도 안 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 왜 미래를 지켜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미래가 밝아 집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이 두려움의 문제를 삼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 그 자체보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가진 파괴적인 위력 때문입니다.

병이라는 것보다는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 사고 보다는 ‘사고를 당할 지도 몰라?’하는 그 두려움 자체가 우리의 삶속에 미칠 수 있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더 걱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나” (딤후 1:7)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두렵게 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는 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자마자 하나님이 찾아 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는냐?”

이 때 아담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내가 두려워 하여 숨었나이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아직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벌을 내리시기 전인데도 그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찼습니다.

죄가 있으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여 죄 문제를 해결하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쫓아 버려야 합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어 달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쫓아 내어야 합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알아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요셉은 형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집으로 만찬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형들은 두려워 합니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걱정은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생기는 현상입니다.

근심하고 걱정하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어두워지면 기도할 수 없고, 그러면 영혼까지 어두워집니다.

어떤 일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 걱정한다고 해결 되겠습니까?

오히려 더 어렵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는 모두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정말 당당하세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요셉의 형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무서운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앞에 담담하게 나아가 당당하게 서게 만듭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비굴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들어오자 마자 머리도 못 들고 “하나님, 죄인 왔습니다. 죽여 주십시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려고 하는데도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이제 나에게 벌을 줘서 고생시키겠구나”하고 의심을 합니다.

형들이 자기 사랑을 제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벌벌 떠는 것을 보았을 때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이것이 나같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어려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다루기 까다로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조금만 좋게 해 주시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져서 교만하게 설쳐 대고, 우리를 낮추시려고 조금만 어렵게 하시면 죽다고 아우성 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제 주위 상황을 두려워 하지 마시고 단지 겸손하게 주님의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두려움을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안이 우리 안에 가득차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째로, 사랑을 받는데도 은혜가 필요한다.

31절,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34절, “요셉이 자기 식물로 그들에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오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 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요셉이 형제들에게 베푸는 사랑을 보세요.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까지 요셉의 사랑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을 받는데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까?

내가 잘나고 똑똑하고 열심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까?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우둔하고 미련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도를 전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모든 것을 다 깨닫고 알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야곱의 아들들을 통하여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무서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들을 어떻게 사랑하여 구원하셨는가?’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조금씩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 작은 사랑이 형들에게는 엄청난 두려움과 충격이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곡식값을 도로 넣어 주니까 “이것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거야”라고 생각하고, 식사를 대접하려고 집으로 초청하니까 “우리 나귀를 뺏았고,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거야!”라고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만약 자녀들이 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랑하려고 하면 할수록 두려워하며 도망치려 든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상대방을 붙잡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 않겠습니까?

사랑은 어느 한쪽의 마음만 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쌍방의 문제입니다.

나는 아무리 사랑을 주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사랑으로 받지 못하면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입니까?


요셉은 형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애정 표현이 그들에게는 오직 충격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깨달으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고 있습니까?

다만 우리가 못 느끼고 살아 가고 있을 뿐이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매일 같이 운전하면서도 사고 한 번 나지 않는 것, 다 하나님의 은혜 아닙니까?

질병과 사고 많은 세상 속에서 병 걸리지 않고, 사고 당하지 않고 사는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구나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뺀질거리며 사는데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 지은 인생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물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노예를 국무총리로 만드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셉을 많은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서 붙잡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모든 시련이 축복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일할 때 좋은 사람도 만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기도하세요.

“주여, 주의 종의 집에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기도 하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세요.

우리의 사랑은 갈등이 많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사랑합니다.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잘해 줍니다. 그러나 나한데 잘하지 않으면 나도 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한데 잘해 주면 사랑하고 나한데 잘 해 주지 않으면 이혼합니다.

우리의 사랑에는 조건이 너무 많고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를 미워하여 외국에 노예로 팔아 버린 형, 그런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압니다.

그러나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는데 애쓰거나 고만한 흔적이 없습니다.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사랑합니다.

형들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어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무조건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아닙니까?

사랑받은 자격이 없고 사랑 받을 만한 사람도 아닌데 나를 하나님이 조건 없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의 동기나 모습을 보고 결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무조건적인 그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다가도 순식간에 이혼하고 돌아섭니다.

부부가 서로 잘할 때는 좋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배신하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자녀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어도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죄를 지어도 사랑하고 부모의 가슴에 못질을 해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어떤 잘못을 하고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하고 처음 잘못한 것처럼 받아 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갖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세요.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됩니다.

조건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와는 상관없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정하세요.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 하세요. 그러나 최선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고난과 시련도 하나님이 축복과 영광을 바꾸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이제 나이가 들고 너무 늦었다고 한탄하지 마세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작하세요.

눈에 보이는 성공만이 성공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에 아름다운 성품의 열매가 있다면 그것이 성공의 열매입니다.

그것으로 감사 하세요.

비록 세상에 보이는 것은 갖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모신 기쁨으로 살아 간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성품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세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돌아 보십니다.

하나님은 꽃이 아니라 열매를 찾습니다.

아름다운 성품, 향기로운 인격을 원하십니다.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발견하시고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요셉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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