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한성개혁교회 임직 감사 예배 - 전반부

복음뉴스 2 2019.03.08 12:17
한성개혁교회(담임 송호민 목사)가 창립 27주년을 맞았다. 창립 27주년을 맞은 한성개혁교회(HanSung Reformed Church)는 3월 3일(주일) 오후 5시 30분에 임직 감사 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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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자는 아래와 같다.

장로 장립 : 이관용
집사 장립 : 김명욱, 고천주, 정원한
권사 취임 : 고옥주, 문숙자, 박효준, 김미화, 김시온

임직 감사 예배는 송호민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경배와 찬양은 육민호 목사(주소원교회)가 인도했다. 기도는 황성현 목사(한결교회)가, 성경 봉독은 원도연 목사(시온제일교회)가, 특송은 김성욱 집사(새언약교회)와 송승훈 형제(한성개혁교회)가, 말씀 선포는 김종국 목사(새언약교회)가 담당했다.

황성현 목사는 "디모데서에서 바울이 바라고 소망했던 그 장로 안수집사의 모습이 그대로 이곳에 실현되는 축복이 있게하여 주옵소서. 임직하시는 장로님 안수집사님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일꾼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과 교회 앞에 몸과 마음과 가진 것을 인색함 없이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인생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김종국 목사는 원도연 목사가 봉독한 데살로니가전서 1장 2-7절을 본문으로 하여 "믿음의 본이 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김종국 목사는 "빌립보 교회가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교회였다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한 교회였다.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과 소망이 충만한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한 것을 칭찬하고 칭찬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였기에 사도 바울이 자랑하는 교회가 되었을까? 첫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였다. 두번 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다. 세번 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망으로 인내하는 교회였다.

신앙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있는 확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능력과 성령과 확신 가운데서, 여러분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기억될 만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설교를 했다.



아래는 황성현 목사의 기도이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두가 한성개혁교회를 축복하며 기대하고 기도하며, 예배의 자리에 모이게 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늘 주님이 세우시는 한성개혁교회 장로님 안수집사님들이 주님의 뜻에 맞는 가장 성경적인 일꾼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디모데서에서 바울이 바라고 소망했던 그 장로 안수집사의 모습이 그대로 이곳에 실현되는 축복이 있게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임직하시는 장로님 안수집사님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일꾼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과 교회 앞에 몸과 마음과 가진것을 인색함 없이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인생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그렇게 온전히 드리면서도,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하여서 하나님만 높이는 일꾼들 되게하여 주옵소서. 아무런 대가가 없더라도 오로지 주님 앞에 쓰임받음이 기뻐서, 겸손하게 헌신할 수 있는 보석같은 일꾼들로 빛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또, 세운 일꾼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충성하다 자신의 뜻을 이루는 일이 많은 시대에, 한성개혁교회 장로님 안수집사님들 만큼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충성을 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들 되게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임직하는 일꾼들이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으며 칭찬받는 일꾼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그러나 교회 안에서만 인정받고 칭찬 받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밖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칭찬 받는 사람들로 세워 주시옵소서.

세우시는 분들 모두 인격이 훌륭하고 덕이 있게 하시며, 어려운 사람 불쌍히 여길 줄 알고,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으며, 다툼이 없고, 너그러움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화목케 하는 거룩한 화목제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담임목사님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이 땅 뉴저지에 영적 각성과 부흥을 이끄는 일의 중심에 한성개혁교회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이 예배 가운데 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 또 모두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가 세우는 일꾼들에게 부어주심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바람과 간구를 들으시며 응답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래는 김종국 목사의 설교 전문이다.

한성개혁교회의 임직예배를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한성개혁교회를 창립한 고 고제철 목사님과 류대수 장로님이 한성개혁교회의 1기라면, 오늘 장로로 임직을 하는 이관용 집사님과 임직자들이 송호민 목사님과 더불어 한성개혁교회의 제 2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새롭게 시작되는 귀한 종들의 임직을 바라보면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믿음의 본이 되는 교회라 하였던 것처럼 오늘 한성개혁교회가 바로 모든 세상을 향하여 믿음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나의 사랑, 나의 사모,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빌4:1)이라고 불렀는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요 영광이요 기쁨”(살전1:19) 이라고 불렀습니다.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이방인 교회의 성도들이었지만 참으로 행복한 성도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교회를 개척한 나그네 목회자였지만 참으로 행복한 목회자였습니다. 서로서로 보고 싶어하고 서로서로 사모하고 서로서로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교회였다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한 교회였다고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한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한 것을 지적하면서 저들을 칭찬하고 또 칭찬했습니다. 그러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했던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지상에 완벽한 교회가 있을까요? 물론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모델이 될만 한 교회, 좀 더 주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데살로니가 교회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교회는 사도바울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로 바울은 이 교회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본문 7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사도바울은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단지 하나의 교회가 세워질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를 꿈꿔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세계정복의 꿈을 가졌던 나폴레옹이 잡혀서 유배생활을 했던, 센트 헤레나 섬에서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군대는 다 사라지고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는 십자가의 군기를 들고 지금도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교회의 머리도 주님이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놓치 않고 붙들고 계십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는 대체 어떤 교회였길래, 사도바울이 자랑하는 교회가 되었을 까요? 그 이유를 몇가지 찾아보며 말씀에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첫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시면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라고 말씀합니다. 달리 말하면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 였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오래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간증거리가 많은 교회였다는 것 입니다. 이런 믿음의 간증이 많은 교회일수록 건강한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의 말처럼, 본이 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믿음의 간증이 없다 보니까, 교회 건물 자랑하게 되고, 교회 성도 많은 것 자랑 하게 되고, 교회 프로그램 자랑하게 되는 거예요. 원하옵기는, 한성개혁교회는 믿음으로 승리한 간증이 많아지길 소원합니다. 믿음으로 극복한 간증 같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겨낸 이야기 같은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믿음에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킬 뿐 아니라 그 믿음대로 살고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신앙의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야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과 믿음대로 살려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임을 보게 됩니다.  
  
믿음은 언제나 구체적인 행위를 수반합니다. 믿음은 행위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믿는 자의 행동은 그 사람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고백뿐 아니라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행위’가 기억되어야 할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내게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믿음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저자는 히브리서 11장 33-36절에서 믿음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신앙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치 아니하며, ......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믿음대로의 행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기억될 만한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으로 우리의 삶을 버티어 나가겠습니까? 돈이 많아 돈으로 버티 겠습니까? 아니면 세상 즐거움으로 버티겠습니까? 몸이 건강해서 건강으로 버티겠습니까? 여러분, 성도는 믿음으로 버티는 것입니다. 주일인데, 몸은 피곤하죠, 또 나가면 즐거운 것도 없죠, 생기는 것도 없죠, 그래도 믿음으로 일어서서 달려 나올 때,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여러분들이 성도들과 대화중에 뭐라고 하십니까? , ‘정말 피곤하고 그냥 집에 있고 싶었는데, 나오니까, 잘 한거 같아!’ 라고 한다면, 지금 한 그말이 믿음의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은 교회가 본이 되는 교회인 것입니다.

두번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시면 “사랑의 수고”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사랑의 수고를 영어로는 ‘labor of love’라고 했는데, labor 라는 말 속에는 ‘수고’ ‘노동’이란 뜻과 함께 아기를 낳을 때 겪는 산모의 ‘산고’와 ‘진통’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참 사랑에는 아기를 낳고 아기를 기를 때 엄마가 지니는 ‘산고’와 ‘진통’과 ‘수고’를 포함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사랑의 수고와 사랑의 산고가 있었다고 사도 바울이 지적했습니다. 사실 그와 같은 사랑의 수고와 산고의 근원은 사도 바울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기를 낳아 키우는 유모처럼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키웠기 때문에 결국 저들도 엄마의 사랑의 수고와 산고를 지니게 되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2:7,8). 사랑은 사랑을 낳았고 수고는 수고를 낳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랑과 수고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저들도 사랑과 수고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저들에게 사랑의 수고가 자기들끼리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온 마게도냐 형제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9-11). 

여러분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야고보서에도,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섬긴다고 한다면, 몸이 움직여야 합니다. 때로는 물질이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서로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되 수고가 수고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아십니까? 사랑하는 자를 위해 하는 희생과 섬김은 오히려 본인에게 기쁨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섬기고 수고한 다음에,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랑의 수고는 결국엔 자기 자신에게 더 좋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을 쓴 ‘토마스 아 켐베스’는 “고통이 없는 사랑에는 삶이 없다”고 했습니다. 곧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희생과 수고가 따르지 않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서 본문의 ‘사랑의 수고’라는 말에서 ‘수고’라는 말 ‘코포스’는 ‘자르다’, ‘채찍으로 때리다’, ‘애쓰다’를 의미하는 동사 ‘코프트’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고라는 말 ‘코프스’는 단순한 일을 위한 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되는 힘을 써야 하는 수고’와 함께 ‘고통을 동반하는 수고’를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수고와 고통은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신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굶주림, 잠 못 이룸, 매를 맞고 핍박받는 고통과 고생은 주님을 사랑하고 인간의 영혼을 사랑하기에 복음을 전해주려는 ‘사랑의 수고’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아주 역사가 작은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17:1-9을 보면 불과 3주 만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서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해서, 급하게 사도바울은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쳐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불과 3주 만에 복음을 전하고 세운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도 없는데, 얼마나 사랑으로 똘똘 뭉치는지, 유대인들이 교회를 없애려고 해도 없애질 못하는 거예요. 사랑의 힘이였습니다. 모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면, 서로 도와가며,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지역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는데, 사랑으로 똘똘 뭉친 교회라는 소릴 듣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많은 사람에게 본이 된 것입니다. 한성개혁교회도 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 받기를 소망합니다.

세번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망으로 인내하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3절 중반을 보시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 하는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 받았던 것은 소망을 가지고 그 소망을 굳게 지키면서 인내하였기 때문입니다. ‘인내’라는 말 ‘휘포모네’는 ‘아래에’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휘포’와 ‘남다, 머물다’라는 뜻을 가진 ‘메노’라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아래에 머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인내’란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 아래에서 지금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의 고통과 어려움에 절망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더구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시련 중에서도 주님을 소망하며 인내할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하고 위대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시편146:5)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소망하면서 인내로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히려 그 탄압과 박해의 고난을 인내로 견디면서 믿음과 영적인 삶을 더욱 성장시켜 갔습니다. 이들이 고난을 인내로 극복해 나가는 신앙의 모습은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 복음전파의 원동력이 되는 기억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은 믿음과 사랑도 충만했지만 무엇보다 재림과 부활과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현세적인 문제에 거의 모든 관심을 쏟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는 ‘마라나타’ 즉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였는데, 오늘 일부 한국교회 신자들의 인사는 ‘부자 되세요’ ‘복 받으세요’ ‘건강하세요’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은 평생 요한 계시록을 강해하면서 조선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천국을 바라보게 했는데 오늘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은 정치와 경제와 축복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한국교회 신자들로 하여금 정치 경제 축복에 집착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와트의 ‘소망’ 이라는 그림은 한 소녀가 지구 위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앉아서 한 줄뿐인 바 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 남은 한 줄은 ‘소망’입니다. 인맥도 끊어지고, 학맥도 끊어지고, 혈맥도 끊어진 절망 가운데 있다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늘로 연결된 마지막 소망의 줄이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줄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감옥 속에서도 소망의 줄을 끊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의 줄을 끊지 않았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광풍 가운데서도 소망의 닻 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망은 역경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런데 그 소망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고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갈라디아서에서는 ‘너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실수투성이요, 모순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경에 내노라하는 인물들 모두가 한 두 번의 실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겁쟁이에다, 의심까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인 모세도 살인을 하고, 반석을 치며 자기의 성질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최대의 군주 다윗도 간음에다가 간접 살인을 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하고, 부활을 확인하고도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위대한 사도 바울도 사소한 문제로 바나바와 결별하고, 마가와도 결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내를 가지고 그들을 훈련 시키셔서 후대인들이 부러워하는 인물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여러분! 타인이나 자신에 대해서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 있는 확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 5절에서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확신 가운데서, 여러분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기억될 만한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한성개혁교회도 이 세가지가 충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아멘.

 

[편집자 주 : 임직 감사 예배 후반부는 별도의 기사로 이어진다.]

 

김동욱 기자ⓒ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복음뉴스 2019.03.08 13:06
한성개혁교회 임직 감사 예배 노컷 동영상 ==> https://www.bogeumnews.com/gnu5/bbs/board.php?bo_table=gospel_tv&wr_id=368
복음뉴스 2019.03.08 13:06
한성개혁교회 임직 감사 예배 사진 모음 ==> https://photos.app.goo.gl/tfgwwBLixscC1BY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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