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호] ‘다시 오프라인으로, 그리고… 온라인으로’ – 우리가 왜 교회에서 예배드려야 하는지…
‘다시 오프라인으로, 그리고… 온라인으로’ – 우리가 왜 교회에서 예배드려야 하는지…
글 : 윤명호 목사 (뉴저지 동산교회)
지난 2014년 4월 뉴저지 팰팍시의 한 식당에서 교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벽에 걸린 TV 화면에서 나오는 방송을 보다가 저는 잠시 제 눈과 귀를 의심할 만한 내용을 보 게 되었습니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탄 세월호라는 배가 우리 눈앞에서 침몰하고 있었던 것입 니다. 세월호 침몰로 인해 탑승인원 476명중에 304명이 사망했고, 사망자는 대부분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속절 없이 바닷속에 수장되는 것을 보면서, 비통한 눈물이 저절로 솟아올랐습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후에,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특별 조사팀이 구성되어 수개월에 걸친 다각도의 원인 분석과정을 거친 후 밝혀진 세월호 침몰 이유는, 한마디로 ‘복원력 상실’ 때문이었습니다. 물에 떠 있는 선박은, 한쪽으로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쏠려 기울어지게 되면 침몰할 수 있기에, 한쪽으로 기울 때, 선체가 완전히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적당한 양의 평형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물을 알맞게 싣고 실은 화물들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바닥에 단단히 고정해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호는 출항 당시 선박 평형수는 적게 실은 반면 화물은 과다하게 적재했고, 또한 차량 및 화물을 선체에 단단히 고정하는 고박 기준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 조타수가 조금 급하게 배의 방향을 틀게 되었을 때, 선체에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순식간에 복원력이 상실되어 계속된 침수로 완전 기울어 전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원력을 잃은 배는 기울어졌을 때, 다시 일어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원력은 선박에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살다보면 갑작스러운 시련들을 예상치 않은 시간에 겪을 수 있습니다. 풍랑 이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처럼 삶이 좌우로 마구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 때, 역경과 시련으로 인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다시 원래 위치를 회복하는 마음의 근력을 가리켜 심리학자들은 ‘회복탄력성’ (resilience) 이라고 부릅니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고 그 시련을 딛고 일어나 더 높은 곳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절망하고, 좌절하고, 쓰러져 영영히 일어서지 못하기도 합니다.
작년 초, 코로나 전염병이 전세계로 급속히 번지면서 교회는 ‘대면 예배 중지’라는 전무후무한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모든 교회가 한동안 온라인 예배로 내몰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 깊으신 분들께 늘 예배는 ‘예배보는 것’이 아니라, ‘ 예배 드리는 것’이라고 배워온 성도들에게 TV 나 컴퓨터, 혹은 휴대폰 앞에서 드리는 온라인 예배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각 주에서 행정명령으로 모든 대면 모임이 강제적으로 중지되고, 통행금지 시간까지 생기는 마당에 성도들에게 온라인 외에는 아무런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경건한 성도들은 온라인상에서 드리는 예배에서도 최선을 다해,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려 애를 썼습니다. 주일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정장을 입고 넥타이 매고, 헌금도 미리 준비하고 예배를 준비하면서 온라인에서 경건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세가 흩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예배드리다가 편안한 옷차림에 예배드리게 되고, 처음엔 집중해서 예배드리다가 점점 중간에 잠깐 부엌이나 화장실을 다녀오게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가장 약한 곳이 제일 큰 타격을 입는다고, 영적으로 어린 성도들은 온라인 예배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특히 중,고등부 학생들의 신앙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유치부와 어린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온라인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보통 부모님과 따로 예배드리는 중고등부 학생들은 중고등부 교역자들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예배드리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서로 대면하는 느낌을 최대한으로 살리고자 Zoom으로 예배를 오픈해도, 학생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화면을 끈 상태에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태도도 오프라인 현장예배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전 교회 교인들이 총체적으로 엄청난 신앙생활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조속히 현장 예배를 회복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곧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 사태가, 1개월 2개월, 6개 월, 1년이 넘어 불가피하게 온라인 예배가 점점 길어지게 되자, 놀랍게도 처음에 그렇게 불편했던 온라인 예배에 점점 익숙해지는 성도들이 늘어났습니다.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생겨났습니다. 백신 접종을 모두 완료한 분들 가운데 지난 6월초부터 뉴저지에서도 실내 모임제한이 모두 해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를 나오지 않고 온라인상에 머무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온라인 공간은, 팬데믹으로 인해 교회가 엉거주춤하게 발견한 영적 신대륙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 상에서도, 예배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고, 성경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약점을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보통 현장에서 성경공부를 할 때엔 교통 혼잡같은 피치못할 사정으로 지각하거나 또는 타지로 출장가는 바람에 결석하는 경우가 생겼지만, 온라인 성경공부는 언제 어디서나 별 어려움없이 전천후로 모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온라인찬양대는 매주일이 숨가쁘게 준비해서 드리는 현장 예배 찬양대 보다 훨씬 더 준비된 찬양을 올릴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오프라인 공간이 막히면 얼마든지 온라인 공간에서도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소중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의 장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온라인 신앙생활이 현장에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신앙생활을 완전히 대치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생명은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통한 인격적인 교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 보면,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성도의 교통은, 초대교회 성도들 간에 성찬 및 애찬을 나누며 있었던 거룩한 교제- 코이노니아, 휄로쉽 을 의미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사도 신경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성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신앙고백은 당연히 사도신경에 들어가야 하고, 또한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죄 씻음의 확신과 부활 영생에 대한 신앙고백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의 교제가 다른 신앙고백만큼 중요한지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 간에, 자꾸 만나서 대화하고 교제하다 보면, 상처받고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는 주님께 예배드리러 가는 공간이지, 사람 만나러 가는 곳은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오래 전 한국에서 교회는 보통 예배당으로 불리웠습니다. 교회 가자는 말은 때로, 예배당에 가자 라는 말로 대치될 수 있었습니 다. 그리고 당시에 지어진 교회 건물은 대개 예배당 하나 덜렁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 열고 들어가면 신발장이 있었고, 신발 벗고 들어 가면 바로 마루바닥에 방석깔고 앉아 예배하는 예배당이었습니다. 그 거룩한 예배당안에서, 교인들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당은 그저 예배당- 주님을 만나 주님께 예배하는 곳이었지 사람을 만나 교제하는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성도들은 대부분, 막바로 집으로 갔습니다. 그 때 교인들은 ‘성도의 교제’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구역 예배가 생겨서, 각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여, 말씀을 나누고, 주안에서 서로 fellowship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떡을 떼는 식사 친교를 통해, 성도들은 서로의 영육간의 필요를 나누고 채워 더욱 강건해지고, 교회는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주님의 몸된 교회는 단순히 하나님께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성도의 교제’는 생각보다 중 요합니다.
수년 전, 늘어나는 교인들에 비해 교회당이 협소하여, 예배 숫자를 늘리면서, 주일 식사 친교하는 장소를 중고등부 예배실로 개조해서 사용했습니다. 주일날 성도들은, 거의 쉴 틈없이 1, 2, 3, 4부로 나누어진 예배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에 드나들었습 니다. 1부 예배가 끝나면, 성도들이 우르르 나가고, 2부 예배를 드리러 오는 성도들이 들어왔습니다. 예배 시간 중간 중간에 서로 서서 이야기할 시간도 장소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한 동안 교회당은 그렇게 예배만 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교회 성장이 멈추었습니다. 새가족들이 교회에 잘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교회에 남아서 봉사하는 손길도 줄어들었습니다. 주차장도 작고, 예배 공간도 작은 불편한 장소에서 서로간의 친밀한 교제도 없이 1, 2, 3, 4부 예배만을 드리면서 교회는 서서히 마치 고무풍선에 바람빠지듯이 교인수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각부로 흩어져 예배만 드리던 성도들은 서로 남남이 되어갔고, 교회는 가족 공동체로서의 하나됨과 서로 섬김의 열기를 잃어갔습니다.
그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교회가 예배당 만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중고등부 예배실을 다른 공간으로 마련하고, 친교실을 되찾았습니다. 주일예배 숫자를 줄이고, 예배 중간 중간에 서로간의 교제의 시간을 늘렸습니다. 예배드린 후에, 서로간에 애찬을 나누며 만남의 교제가 이루어지자 성도들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들도 활성화되었습니다. 봉사에 자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남자를 만드시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후, 여자를 지으시어, 인간(人間)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개인이 유일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과의 관계하에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은 누구나 집단에 소속되기를 원하고, 그 집단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욕구가 적절히 충족되어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감기에 걸릴 확률이 4배나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에 비해 폐렴, 암 발생률, 그리고 외과 수술을 받을 확률이 더 낮았습니다. 또한, 가족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경험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에 비해 평균, 3.7년 더 오래 삽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인간 문화권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삶의 만족과 정서적 행복에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종종 종교라기보다는, ‘관계’라고 말합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신앙 목표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한마디로 ‘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 (롬 13:8절)고 말씀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좋은 관계 맺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화평과 기쁨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행복을 누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기독교의 신앙 활동중 최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전도와 선교도, 생각해 보면, ‘타인과의 좋은 관계 맺기’입니다.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꼭 필요한 것이, 서로간의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인데,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는 7-38-55 법칙이 있습니다. 의사소통에서 정작 말은 7%밖에 중요하지 않고, 38%가 목소리의 톤과 절반이 넘는 55%가 시각적인 바디 랭귀지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법칙입니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문자보다는 어조가 전달되는 전화가 낫고, 전화보다는 만나서 상대를 보며 하는 대화가 가장 좋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서로간의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때에, 온라인이 비록 편리하다고는 하지만, 오프라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영혼 구원의 방법도 역시 오프라인 만남이었고 교제였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우리를 만나 주시는 대신에, 구약시대처럼 계속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시고, 혹은 가현설을 주장하는 이단들처럼 실제 육신이 아닌 어떤 온라인같은 가상 공간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서만 보여주셨다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 지식을 알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성육신 하신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 (히 1:1-2절)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성령의 강력한 역사는 오프라인에서 모이기에 힘쓰는 공동체 위에 임했던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코로나 백신으로 인해 팬데믹이 끝나가는 시점에, 강력하게 오프라인 모임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서, 온라인 공간이라는 영적인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오프라인이 막히면, 우리는 또 얼마든지 온라인 상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은 팬데믹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선박안에 담긴 평형수같은 축복이었습니다. 배가 기울어질 때, 완전히 침몰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팬데믹이 지난 후에도 역시, 온라인만을 의지해서 예배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온라인으론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오프라인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프 라인 예배가 있었기 때문에 온라인 예배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프라인 예배가 무너지면, 온라인 상에서의 예배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간에 거의 잃어버렸고, 잃을 뻔했던 오프라인 예배와 신앙생활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간에 온라인으로 기울었던 우리의 신앙생활이 오프라인으로 다시금 균형을 찾고 복원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오프라인을 회복하지 못하고 계속 온라인상에서 기울어진채로 나아가게 되면 자칫 완전히 침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람 사이에서 존재합니다. 온라인상에서 아무리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사랑이 이루어지고, 새 생명이 잉태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글로도 전할 수 있고, 전화로도 전할 수 있지만, 직접 찾아가서 만남을 통해서, 전하는 것만큼 확실한 영혼 구원의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직접 하늘에서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신비한 방법으로 구원하실 수 있었지만,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베드로를 보내어 인격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서로 만나게 하심으로 구원과 성령을 체험토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다시 오프라인으로 모여야 합니다. 특히 무너져가는 교회들이 다시 일어나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려면, ‘성도가 서로 교통’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교회 부흥의 비결이, 저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서 모이고 집에서 떡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 (행 2:46-47절)한 결과라고 말씀합니다.
오프라인 성전에서 모이고, 또한 집에서 한마음으로 모여, 함께 애찬을 나누며 주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부흥을 교회에 보내 주십니다. 성경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절)고 말씀했습니다. 온라인이 비록 장점이 적지 않으나, 그것은 희미하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완전한 교제와 서로를 확실히 알고 하나되는 축복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희미하게 아는 온라인에서, 서로를 온전히 보고 알 수 있는 오프라인으로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팬데믹 시대에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은혜인, 영적 신대륙 온라인을 그 때 그 때 활용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이제 온라인으로 기울어진 신앙생활의 환경을 회복하여 ‘다시 오프라 인으로, 그리고… 올라인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편집자 주 : 위의 글은 2021년 7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2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