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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갈렙] 살아 계시는 하나님과 십자가 사랑만을 남기자

복음뉴스 0 2022.04.08 19:58

문갈렙 선교사의 Mission Field 단상(斷想) ③  살아 계시는 하나님과 십자가 사랑만을 남기자

글 : 문갈렙 선교사 (GMP/한국개척선교회 소속)


오늘날 북미, 유럽과 호주 등 과거 우리나라로 수많은 선교사를 보내준 나라들도 이제는 선교지가 되어버렸다는 현실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선교사들이 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지역은 역시 이슬람권, 불교권, 힌두권, 공산권 나라들, 그리고 언어가 없어 아직도 종족들이 자기 언어로 성경말씀을 갖지 못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복음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망극한 사랑만으로도 넘치고 충분하지만 한국 선교사들은 그에다 빨리빨리 문화로 훈련된 열정과 속전속결의 자세로 사역지에서 창의적이고 담대하게 사역하며 영적 황무지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지역을 개발하고 가르치며 교회가 없는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여 예배가 없던 지역에 예배가 있게 하는 사역을 펼쳐가는 일꾼들의 땀과 수고의 발걸음은 분명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일 것이라 믿는다. 이처럼 부르심을 받아 교회와 파송단체의 파송을 받고 필드에 나가서 일하는 일꾼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릴 추수기의 고귀한 열매들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후방 성도들의 기도와 후원의 동역이 있기 때문이다. 동역의 모습을 기뻐하시며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여건에서도 놀라운 회심의 열매들이 열리는 것이다. 

 

전방의 일꾼들은 때로 변화가 없는 난공불락의 상황에서 낙심하기도 하지만 성령님께서 상기시켜 주시는 작지만 소중한 그동안의 열매들로 인하여 다시 추스르고 일어서게 된다. 중보하고 지원하는 후방 교회도 마찬가지로 파송한 선교사들을 통하여 이룬 선교 결실로 인하여 선교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는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 개척한 교회의 숫자가 선교의 성과로 분명하게 손에 잡히기에 기뻐하며 선교에 더 분발할 격려를 받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교회가 개척한 선교지의 교회들을 필드에서 만나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는 몇 가지가 있다. 한국교회가 개척한 선교지 교회의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솔직한 속마음의 토로를 들어본 적도 있다. 이를 계기로 선교사인 나는 사역지에다, 현지 심령들 가슴에다 무엇을 심어가고 있는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역에 대한 점검이랄까 반성이랄까, 이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선교를 왜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역의 노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은 바른 방향인가? 수행하는 방법은 주님이 기뻐하실 방법인가? 섬김의 대상들의 문화나 역사, 내적인 요구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겸손하게 접근하고 있는가? 선진국에서 와서 후진국을 내려다 보는 우월적 자세로 행동하면서도 섬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교회가 사명을 깨닫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로 전환한 이후 지금까지의 선교적 발자취에서 다 함께 감사할 아름다운 성과도 많지만 반성하고 수정해야 할 부분도 있다. 그 중에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한가지를 생각해 본다. 교회개척이라는 명제에 관한 것이다. 흔히 한국교회가 선교지에 개척하는 교회는 이름부터 특이하다. 한국 선교사가 그 선교지에 오기 전 먼저 다녀간 서양 선교사가 개척하여 세워진 교회이지만 교회 건물이 남루하고 왜소하여 이를 본 한국교회가 재건축해 주고는 기존의 교회 이름 앞에다 한국명칭을 붙여 교회 이름을 바꾸는 것이 또한 독특하다. 한국을 뜻하는 ‘KOR’나 건축을 후원한 한국교회의 이름 ‘ㅇㅇ’을 앞에 붙이는 경우다. 건축을 후원한 한국교회 이름과 담임 목사님의 친필 사인이 금박으로 새겨진 기초석이 또한 독특하다. 교회당만을 재건축을 하고서도 교회를 개척했다 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넉넉한 재정으로 단기간에 건축을 완공하는 것도 빨리빨리 문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왜냐하면 오래 걸리더라도 현지교회 성도들의 땀과 물질적 헌신을 보태어 함께 힘을 합칠 겨를도 없이 짧은 기간에 새 교회당이 뚝딱 건축되는 바람에 선교지 성도들은 우리 교회당이라는 실감을 못 가지게 되고 애착심도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나라는 동남아 국가이지만 기독교 역사가 500년 가까이 된다. 비록 지금은 이슬람이 90%인 형국이 되었지만 크리스천들은 대화 중에 한국의 개신교 역사 150년에 비하면 복음의 역사가 더 깊음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을 본다. 이런 현실에서 신앙적으로 후진하다는 선입관만을 가지고 무언가를 가지고 와 가르치려 들고 우월적 심리로 속도감 있게 사역을 밀고 나간다면 교만하게 비춰지는 행동들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생각한다. 한국교회 초기에 서양선교사들이 어느 한곳인들 교회 이름에다 서양 이름을 갖다 붙였던가? 예를 들어 ‘토마스장대현교회’ 혹은 ‘US-KOR Church’라는 식으로 작명한적이 있었던가? 지금 선교지에 한국교회들의 후원으로 건축된 교회들에는 한국이 심겨 있고, 어느 한국교회의 이름이 남아있고, 건축을 도와준 한국교회 담임목사의 성함이 기초석에 새겨져 있다. 한국교회만의 독특한 지배의식 혹은 자기과시적 발상으로 현지 심령들에게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해본다.

 

한번은 인도네시아 산골교회 장로님이 나를 은밀히 찾아와 하소연한 적이 있다. 자기 교회 이름에 붙은 KOREA를 의미하는 명칭을 어떻게 하면 지울 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같은 한국인 일꾼과 연관되어 있는 사안이라 무어라 답변을 드리기가 곤란하여 뚜렷한 답변을 못드렸는데, 어느 폭풍이 치던 날 교회 간판이 날아가버린 일이 생기고 난 후 그 교회는 다시 현판을 만들어 달면서 한국이름을 떼 버린 기존의 교회명칭만을 새겨서 달고서는 마음이 개운해졌다고 하였다. 이제는 식민지배를 당하는 느낌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450 년 이상을 식민지배를 당한 뼈아픈 경험이 유전자처럼 남아있는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 행동의 부작용을 본 것이다. 이제는 살아 계시는 주님의 거룩한 이름과 그리스도의 망극한 십자가 사랑만을 선교지 심령들의 가슴에다, 교회에다 남겨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라디아서 6:14a)

 

[편집자 주 : 위의 글은 2021년 8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3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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