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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현] 올바른 그리스도교(基督敎)에 대한 이해를 바라면서, 제사장직(Priesthood)-아론 계열의 제사장들과 예수 그리…

복음뉴스 0 2022.04.09 11:19

올바른 그리스도교(基督敎)에 대한 이해를 바라면서, 제사장직(Priesthood)-아론 계열의 제사장들과 예수 그리스도

글 : 한삼현 목사(뉴저지 빛과 소금교회)


올바른 그리스도교(基督敎)를 이해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3대 직분(제사장, 왕, 선지자) 중에서 제사장직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 성도들에게 너무나 필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완전한 죄 사함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완전한 제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일찍이 아브라함 때에 나타난 멜기세덱, 모세시대 이후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도화된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 그리고 모든 날 마지막에는 성육신하여 온 인류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참으로 소중한 까닭은, 오늘날 성도들이 바로 온전한 반석 위에 세워질 거룩한 몸(the Church)이기 때문입니다. 

 

1. 아론 계열의 구약 제사장들(불완전함과 연약함과 한계)-“죽음으로 말미암아”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따르면, 아론 계열의 구약 제사장의 직분은 (매우) ‘연약하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이런 연약함의 주된 이유는 바로 ‘죽음’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죽음’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아론 계열의 구약 제사장들의 직분은 ‘육적’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곧 ‘영적’이지 못하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죄를 사하는 사역을 수행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부패한 무능한 본성을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론 계열의 구약 제사장들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제사장의 직분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사장된 그들의 수효가 그렇게도 많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구약에서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은 그 갈래가 너무나 많으며 복잡하다는 것을 우리가 실감합니다. 특히 역사적인 변곡점에서 그들은 끊어지기도 하다가 다른 계열로 대치되기도 하였습니다. 광야시대에는 아론과 나답-아비후(2명 즉사)-엘르아살-이 다말로 출발하였지만, 사사시대에는 아론의 4째 아들 이다말의 후손들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였다. 다윗 시대에는 이다말(4째)의 후손 아비아달과 엘르아살(3째) 계열 사독이 함께하는 듯하더니, 솔로몬 시대에는 아도니야의 반역에 가담한 죄로 말미암아 아비아달은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나고 이후로 엘르아살의 계열 사독의 후손들이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후에서야 24반차(순서)를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잠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였을 뿐이고 계속 머물러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또 한편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일반 백성들과 똑같이 부패한 죄인들이었기 때문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때마다, 먼저 자신의 죄를 위해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점은 바로 아론 계열의 제사장 직분은 잠정적이고 일시적이었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런 모습들은 옛(아론 계열) 제사장들이 본래는 그들의 직분이 아니었던 것을 잠시 일시적으로 맡아서 감당할 뿐이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 핵심은 결국 ‘죽음’ 때문에 계속해서(“항 상”) 이 직분을 가질 수가 없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이전에 제사장된 그들의 숫자가 많았던 까닭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사장 직분에 계속해서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었더라.”( 히 7:23)


2.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완전성과 무한성과 영원성)-“영원히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머물러 계시면서 결코 바뀌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지 않는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히브리서는 알려줍니다. 쉽게 풀어서 말한다면,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신 것은 물론이고 성육신하여 사람이 되신 후에도 잠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여 다시 사셨으며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영원한 왕과 제사장으로 좌정하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곧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특별히 자기의 몸을 제물로 삼아서 제사를 드리신 이후로는 언제나 영원히 제사장으로 머물러 계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뚜렷하게 이스라엘 역사에서 나타난 멜기세덱과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과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사실상 아론 계열의 제사장 직분이 제도로서 확립되기도 전에, 훨씬 예전으로 거슬러가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왕과 제사장으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진정한 제사장이 어떤 분이시며 완전한 제사장의 직분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멜기세덱에 관하여, 특히 히브리서 7:2∼3을 참고하라). 그리고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서(말미암아) 아론(계열)의 제사장 직분의 토대(foundation)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때가 차매 영원하신 성자께서 성육신하시고 참 사람으로서 자신을 제물로 삼아 완전한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완전한 제사장의 직분뿐만 아니라, 죄 사함의 완전한 제사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육신 이전, 옛 시대에도 진정한 제사장은 오직 장차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서 언제나 항상 오직 그분(Jesus Christ) 홀로 진정한 제사장이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 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제사장 직분을 영구적으로 가지고 계십니다.”(히 7:24)

 

이러한 제사장(Christ)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완전하신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까닭은, 항상 살아계시면서 그들을 위하여 대언(intercede)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진정한 대제사장으로서 합당하신 구체적인 이유는, 그는 거룩하시고 경건하시며 악이나 더러움이 없으시며 죄인들로부터 구별되어 하늘보다 높이 되심으로써 완전하고 고귀하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론 계열의 구약 제사장들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제사장이 되셨다는 사실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제사장 자 신이 죄인이라서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드릴 때마다, 먼저 자신의 죄를 위해서 속죄 제사를 드려야만 하였던 아론 계통의 제사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더불어 매일 반복하여 드렸던 아론 계열의 구약 제사장의 제사들과는 달리 자기를 제물로 드려서 단번에 제사를 완성하심으로써 다시금 반복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히 7:26∼27 을 참고하라).


[맺는 말]

이와 같이 옛 시대(율법)에는 여러 측면에서 약점과 한계와 불완전함을 지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셨지만, 율법이 주어진 후에(롬 5:20) 하나님께서 친히 맹세하신 말씀을 따라서(히 7:28) 영원히 완전한 제사장으로 아들을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측면에서도 연약하시거나 약점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구약의 약점이나 불완전함을 다 채우고도 남을 뿐만 아니라, 온전케 하시는 완전한 제사장으로 (아들이) 세워졌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대언하시는 완전하신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완전한 제사(예배)와 완전한 죄 사함(은혜)을 맛보시기를 축원합 니다.

 

[편집자 주 : 2021년 9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4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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