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정관호] 거듭남, 어떻게 거듭나는가?

복음뉴스 1 04.15 19:09

 

바른 신앙생활 가이드 1 - 거듭남, 어떻게 거듭나는가?

글 : 정관호 목 사(뉴욕만나교회)

 

 

“1.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1-5) 

 

한 밤 중에 찾아온 니고데모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니고데모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가 바리새인이라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평범한 평민이나 서민층에 속해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그의 종교생활이 남달랐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약 6,000명 정도의 바리새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특별한 종교생활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관원(지도자)이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유대인의 관원이란 사실은 그가 산헤드린이라 알려진 70인 공의회의 한 사람인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당시 70인 공의회는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있었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정치, 종교, 사법의 통합적인 막강한 권력을 지닌 기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는 당대의 가장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이름이 있는 명망가요,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런 유능한 인물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밤중에 주님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는 본문에 분명히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대낮에는 니고데모 자신도 공적으로 해야 할 업무가 많이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 역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기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서로의 바쁜 일정 가운데서 개인적으로 만나 독대할 시간을 갖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가장 커다란 이유는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서 그랬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또 70인 공의회의 유력한 사람으로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나 예루살렘의 종교적인 지도자들과는 상당히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 형편에서 나이가 지긋이 들었을지도 모를 니고데모가 30대 초반의 예수님을 그것도 대낮에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지위와 체면에 상당한 손상을 줄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을 겁니다.

 

저는 니고데모가 당시에 가장 훌륭한 자질과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고 믿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가장 지적인 인물이요, 도덕과 윤리면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이요, 그리고 교육과 문화면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자였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밤에 찾아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직접 보고 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자기가 속해 있는 바리새인들이나 공의회 회원들과는 사뭇 다른 인물임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무엇인가 더 알고 싶어 하였고 더 배우고 싶어 하였고 더 얻고 싶어 했습니다. 여하튼 그는 용기를 내어서 예수님을 찾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랍비(선생님),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들을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2)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라 부르고 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낸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셔서 예수님께서 표적들을 행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님으로 알았기에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더 받고, 배우고, 얻고 싶어 하였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니고데모

 

그러나 우리 주님은 갑자기 그의 발언을 중도에 끊습니다.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그의 발언을 중지시킵니다. 그리고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 사실 니고데모에게 이 말씀은 아주 청천벽력 같은 말씀입니다. “너는 거듭나지 못했다. 거듭나지 못했으니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거듭나지 못했으니 하나님 나라를 체험할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선생이다. 바리새인이다. 너는 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 있겠지만, 실상 영적 진리에 대해서는 문맹자와 다름없다. 너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하다. 너는 이제부터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이렇게 지적하고 계신 셈입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갖고 있는 터 곧 율법에 관한 지식, 종교적인 열심, 선행이란 터 위에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더 얻어 붙여 더 훌륭한 것을 만들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노력이 근본적으로, 또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마치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존의 오래되고 낡은 집을 아주 무너뜨리고 부숴버려야 하듯이 그렇게 새로운 틀을 짜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낡고 허름한 건물에 새 페인트를 덧칠해 보아야, 또 필요한 몇 가지를 수리해 보았자 새 건물이 될 수 없듯이, 처음부터 기존의 것을 다 부수고 새 것으로 세워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일을 경제학에서 말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또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자기의 인간성이나 지식 그리고 사회적 지위나 체면 위에 몇 가지 기독교적인 요소를 덧붙여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교회 다니지 않던 사람이 예배 참석하는 일로, 교회 봉사하는 일로, 교회에 헌금하는 일로, 이웃을 돕고 구제하는 일 등 몇 가지 좋은 일을 행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은 세례 받고 성찬에 참여해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세례 받았다는 사실 하나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상과 같은 모든 일들은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나 있어야 할, 마땅히 있어야 할 일들입니다. 이 일들은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행하여야 할 일들입니다. 바로 니고데모의 실수와 실패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였습니다. 오히려 영적인 파산자요 실패자였습니다. 왜 그를 영적인 파산자 또는 영적인 실패자로 부를 수 있습니까? 그렇게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그렇게 마구 대해도 되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는 아직까지, 여전히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누구나가 다 각자의 인생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특히 돈이 없어서 고통을 당해본 사람은 돈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자식이나 가정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종종 ‘family value'를 강조하는데 이는 많은 가정들이 가정의 파탄으로 생기는 아픔, 슬픔,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돈이나 가정보다는 명예나 권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명예나 권력을 얻게 되면 원하는 돈을 얻게도 되고, 또 돈이 가져다줄 수 없는 또 다른 만족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인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게 되면 그 무엇이 그를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 쏟아 부었던 그 시간과 정력이 그에게 참된 기쁨과 보람과 만족을 안겨줄 수 있을까요?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진정 하나님의 나라 백성인가, 그리스도인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앞에 있을 영원한 세계를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 하는 자기 영혼에 대한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니고데모는 4절에서 반문하기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거듭나야 가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조금도 이해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5절에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우리 주님은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어로 쉽게 표현한다면 born from above, born again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거듭나다라는 말은 위로부터 나다’, ‘새로 다시 태어나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죄인은 누구나 다 거듭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죄인은 단지 강도나 창녀나 갱단의 한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니고데모와 같은 자가 죄인임을 보여줍니다. 인간적으로 남부러울 것이 전혀 없는, 갖출 것을 다 갖춘 자라도 창녀와 세리와 같은 죄인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죄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듭나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영혼에 심으시는 일입니다. 이 일은 신적인 일이요 초자연적인 일이요 하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거듭나는 일을 가리켜 거듭남’ ‘중생’ ‘신생’ ‘새로운 출생이라고 부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이 거듭나는 일을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말씀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물과 성령으로의 거듭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이란 단지 물세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물세례란 거듭난 자가 받는 세례이지 거듭나기 위해서 받는 세례가 아닙니다. 물세례를 받음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물이란 죄를 씻는 성결하게 하고 정화하게 하는 수단임을 보여 줍니다. 디도서 3: 5에 있는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또한 에스겔 36:25-26의 말씀도 이에 해당됩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정결하게 하되한걸음 더 나아가 물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26, “이는 곧 (너희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고에 나타난 말씀과도 같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 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는 말씀도 이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거듭나는 일은 물 곧 죄를 씻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 영원한 생명,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갖는 일은 자기 힘이나 노력, 또는 도덕적인 생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하나님의 큰 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듭난 사실의 확증

 

그렇다면 우리가 거듭났다고 했을 때 우리 자신이 거듭난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 거듭남은 회개와 믿음, 곧 회심(conversion)보다 앞에 옵니다. 그러므로 자기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주님과 구주로 영접한 자는 다 거듭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다시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자는 누구나 다 거듭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여러분 자신은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여러분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 니고데모는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훌륭한 면모를 가졌지만, 그때까지 거듭나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같은 자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였으나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며 그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돈과 지식과 학문과 명예와 권력이 우리 자신을 거듭나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것을 의지하고 따를 때 오히려 그런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거듭나지 못한 인생은 그가 비록 돈, 지위, 명예, 권력을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참된 안식과 쉼과 평안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생명을 지닌 거듭난 사람 곧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맛보고 체험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참다운 삶의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평안과 기쁨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Comments

복음뉴스 04.15 19:15
- 본문에서 계속 -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 않은 자가 있습니까?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자가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복된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달려 나아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여기 참된 삶의 길이 있습니다. 복된 인생의 길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이 세상에서 또한 오는 세상에서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편집자 주 : 2022년 4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1호에 실린 글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99 [김동욱] '온라인 교인'을 교회로 인도하자! 복음뉴스 06.25
298 [이윤석] 인종 차별(Racial Discrimination)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 댓글+1 복음뉴스 06.25
297 [이종식] 고 정필도 목사님을 기억하며 복음뉴스 06.25
296 [조진모] 동역의 길, 하나님의 일 복음뉴스 06.25
295 [강유남] 영, 혼, 육의 구원 복음뉴스 06.25
294 [이윤석] 확실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 댓글+1 복음뉴스 06.25
293 [정관호] 성경, 어떻게 읽을 것인가? 댓글+1 복음뉴스 06.25
292 [양춘길] 올해 휴가는 어떻게? 복음뉴스 06.25
291 [한준희] 알고 있어야 할 교회론 (1) - 교회란 무엇인가? 복음뉴스 06.25
290 [김현기] 패시브 VS 액티브 스피커 복음뉴스 06.25
289 [김혜영] 은혜와 의리 복음뉴스 06.25
288 [오종민] 정말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복음뉴스 06.25
287 [박시훈] 우리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복음뉴스 06.25
286 [김경수] 불안을 치유하라 댓글+1 복음뉴스 06.25
285 [유재도] 영원한 천국 댓글+1 복음뉴스 06.25
284 [이민철] 성경 대(對) 인간 권위(THE BIBLE VERSUS HUMAN AUTHORITY) 댓글+2 복음뉴스 06.25
283 [조희창] 1년 만에 미국으로,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 복음뉴스 06.25
282 [박인혜] 선물 복음뉴스 06.25
281 [임현주] 내 마음은 풍선 복음뉴스 06.25
280 [배성현] 나는 어디 있지 복음뉴스 06.25
279 [양희선] 로뎀나무 아래에서 복음뉴스 06.25
278 [김동욱]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복음뉴스 05.20
277 [강유남] 예수님 제자들의 거듭남 복음뉴스 05.20
276 [이종식] 온전한 가정을 세우는 길은 오직 제자훈련과 기도만이 답이다 복음뉴스 05.20
275 [이윤석] 율법의 요구와 넘치는 은혜 복음뉴스 05.20
274 [조진모] 어려운 상황속의 믿음과 지혜 복음뉴스 05.20
273 [한준희] 알고 있어야 할 하나님 나라 (4) - 하나님 나라의 현재진행형 복음뉴스 05.20
272 [한삼현] ‘진리’(the truth)가 무엇입니까? 복음뉴스 05.20
271 [이선경] 찬양의 개정판은 어떻게 써야 할까? 복음뉴스 05.20
270 [이민철] 성경을 변호하지 않겠는가?(Shall We Defend The Bible?) 복음뉴스 05.20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