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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경] 찬양의 개정판은 어떻게 써야 할까?

복음뉴스 0 05.20 15:37

제목 : 찬양의 개정판은 어떻게 써야 할까?

: 이선경 전도사(퀸즈프리칼리지 지휘자)

 

문명의 시초로부터 음악은 종교적 예전과 예배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예배와 경배의 목적으로 음악은 찬양의 성격을 띠고 생성되고 발전되었다. 오랜 세월 전승된 찬양은 기독교 역사의 흐름을 따라 현재에 이르기 까지 내적 외적으로 변화를 가져 왔다. 그 변화는 찬양의 예전적 기능과 예배 음악의 형식으로 정형화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역의 주축이 되었다.

 

급격히 변하는 지금의 시대에서 우리는 예배에서 찬양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조명해 봐야 한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시대를 읽어 내고 시대가 안고 있는 영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위기 의식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교회 찬송의 형식인 코랄과 현대 컨템포러리 찬양과는 어느 정도 구분 짓는 개정 작업을 착수할 명분을 갖는다.

 

인류의 모든 역사의 발전은 건전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위기의식은 정면 돌파하는 힘을 갖는다. 건전한 위기 의식은 기도, 영적 긴장,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도전 의식을 낳는다. 바벨론 포로시대 선지자 에스라를 통해 모세오경을 재해석 하듯 찬양 또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했고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이 시대에 맞는 찬양의 개정판은 어떻게 써야 할까? 첫째, 찬양의 역사와 기능을 교회 공동체 신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둘째, 시대가 주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개인 중심이 아닌 교회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교회 내부 안에서부터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회복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시기에 불렀던 찬양은 위기 상황에서 찬양한 회복의 갈망이였다. 그 당시 공동체의 존재 여부는 그들의 정체성 회복에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우리는 누구인지, 부활 연합 공동체의 근간이 어디에서부터 시작 되었는지를 알기 위한 노력에서 교회 공동체의 회복은 시작 된다. 다시 말해 정체성 회복이 찬양의 개정판을 쓰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회복의 가장 큰 명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회복의 시작과 마지막이 모든 것에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찬송가 1만복의 근원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기초가 되시며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저 천사여 찬송하세
찬송 성부 선자 성령
아멘

 

이사야서 4321절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찬송의 목적이 분명하다. 하나님을 위하여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 하신 목적이며 우리가 찬송해야 할 이유다. 그러므로 찬송의 개정판은 창조 목적의 출발점으로 회귀하는 것, 그것이 회복의 개정판을 다시 쓸 수 밖에 없음을 입증해 준다.

   

종교 개혁과 회복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은 획기적인 성경의 개정판 운동이였다. 또 루터의 개혁은 교회 음악 개정판을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당시 중세의 종말과 근대 (morden)를 알리는 사건이였다. 그 당시 성경은 새롭게 재해석 되고 번역 되어서 대중의 눈 높이로 저변 확대 되었다. 찬송 또한 사제들의 전유물에서 대중이 함께 부르는 찬송으로 예배와 의전의 개혁을 일으켰다. 이 같이 개혁의 계기가 없이는 새로운 버전의 개정판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찬송가 585내 주는 강한 성이요’, 1529년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 - 1546)가 작사, 작곡한 이 찬송가는 종교 개혁 당시, 개혁의 불씨 처럼 퍼져 나갔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선교 초기 한국교회에서도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찬송의 능력은 교회 공동체의 새로운 개혁의 목소리로 진리와 믿음의 능력으로 새롭게 불려졌다. 일본 강점기에서도 찬송은 민족의 고난을 재해석하고 보이지 않는 강한 소망으로 새롭게 개정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종교 개혁 500주년을 지나 새로운 세기를 지나고 있다. 루터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200년이 지난 1723년에 요한 세바스챤 바하 (Johann Sebastian Bach, 1685 -1750)에 의해서 새로운 개정판을 작곡하게 되었다. 바하는 이 찬송을 칸타타의 형식으로 작곡했다.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었던 바하는 마틴 루터의 개혁 정신을 바탕으로 찬송가의 음악적 지평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정신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이러한 개정의 변화는 단순히 음악적 표현의 관점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서 새로운 개혁과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였다.

 

공동체와 연합

 

개인주의적인 신앙의 양상은 21세기에 들어와서 더 명확해 지고 강조되고 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함께 예배하며 함께 찬양하고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삶이였다. 많은 실수와 실패,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위기의 순간에서도 새로운 삶의 개정판을 쓰려고 노력했다. 특별히 초대교회 성도들은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지금 이 시대는 어떤가? 공동체 의식 보다는 개인적 의식이 강하게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는가. 교회의 자랑인 공동체 주의가 흔들리는 이 시대가 아닌지 자세히 살펴 봐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246 - 47절의 말씀이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서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고 본질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루터의 개인 중시의 관점에서 출발한 종교 개혁이라면, 21세기에는 공동체에서 비롯되는 제 2의 종교 개혁이 필요하다. 그 개혁은 연합의 성격을 담고 있어야 하며 그 중심부의 찬양은 겉과 안 모든 면에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내는 연합을 주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1890년 제임스 로우웰 (James Russell Lowell) 작사, 토마스 윌리암스 (Thomas Williams)가 작곡한 찬송가 586어느 민족 누구게나’, 이 찬송은 연합 공동체의 개정을 촉구하는 찬송이다. 이 찬송의 원제목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 에서 주는 영향은 민족과 사회와 신앙 공동체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 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 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아멘

 

성령으로 회복되는 공동체

 

펜데믹의 여파로 사회적 소외감으로 멀어진 현대 크리스찬들은 예배 찬송의 본질 회복을 위한 몸부림에서 새로운 교회 공동체가 시작 되어야 한다. 다시 쓰는 찬송가, 다시 경험하는 예배 음악, 이 모든 것에서 시온주의’ (zionism)의 운동과 같은 영적 부활의 찬양 운동이 이 시대 현대 교회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오랜 포로 생활로 굳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메마른 내면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에스겔 선지자의 불타는 소원을 에스겔은 이 같이 기록하고 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 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 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 나리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 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에스겔3747)

  

지금은 에스겔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우리의 신앙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찬양을 불러야 할 때이다. 교회는 새로운 찬양 운동을 통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 자기 중심의 신앙 생활이 아닌 연합의 부활 공동체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공동체로 다시 쓰는 찬송의 개정판이 출현해야 할 것이다

 

* 2022년 5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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