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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율법의 요구와 넘치는 은혜

복음뉴스 0 05.20 15:52

제목 : 율법의 요구와 넘치는 은혜

글 : 이윤석 목사(NY 부르클린제일교회)

 

[들어가며]

율법은 은혜와 진리를 가리킨다. 그뿐 아니라 구원을 위해 은혜와 진리를 요구한다. 그런데 그 율법은 그 은혜와 진리가 한 사람을 통해 와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율법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다. 모세는 비범하고 위대한 인물이지만, 대리자나 일종의 중개자가 필요하셨기에 모세를 택하셨을 뿐이다. 이와 같이  여러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각자 부분적으로 조금씩 계시를 받았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계시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그들을 사용하셨다. 그런데 이제 국면이 완전히 바뀌어,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진리가 오게 되었다. 율법은 죄가 심히 죄 된다는 것과 우리의 죄책과 무능함을 폭로하면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신인(神人)이 와야 된다는 것이다. 율법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할 것을 요구한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우리가 믿고 구원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만 아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이유와 근본을 알아야 감격이 있고 믿음이 견고해진다. 그것을 더 깊이 깨달아 알자!

 

* 왜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방식으로만 와야 했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부를 우리에게 해석해주시고 설명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만이 가장 친밀하고 모든 비밀을 공유하고 완벽하고 온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1. 다른 사람은 절대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1) 왜 그런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분이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을 본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누가 감히 그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철학자들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가소롭기 짝이 없이 교만하고 어리석은 말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충만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진리를 실제 알려주실 수 있다. 하나님을 계시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되신 분밖에 없다! 욥은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욥11:7)라고 말한다. 바울 사도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고전1:21)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는 죄인일 뿐 아니라, 지극히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만 하나님을 나타내실 수 있다.

 

2) 문제는 구약에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33:20)는 말씀 때문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거룩하심과 공평하심과 의로우심을 계시해 주면서, 아무리 하나님을 알려주어 봐야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 우리의 지극한 어려움이 있다. 진리는 직접 와야 하고 직접 나타나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보지 못한 채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 그러하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3)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를 알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 아기로 태어나셔야만 했다

안 보이는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셔야만 했다. 그 이유를 강조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 변화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변화산에 오르신 주님이 그들 앞에서 변화되셨다. 그 옷을 빨래하는 자가 더 이상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하얗게 되셨다. 홀연히 변화되심으로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런데 그들이 깊이 졸았었다(눅 9:32). 왜 그랬을까? 그 눈부신 영광 때문이다. 그 말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고,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 그들은 매우 무서워하였다. 왜 그랬을까? 그 신성과 그 영광을 얼핏 보기만 해도 몸이 무거워지고, 졸음이 몰려왔고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름이 사이에 끼어들어 그 영광을 직접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림으로 제자들을 도와준 것이다.

나) 사도 바울이 사울일 때 다메섹사건을 보자

가장 성경에 유능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선생으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얼핏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눈이 멀어 맥없이 길에 쓰러져 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얼핏 본 것만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쓰러져 버렸다.

다) 계1:17  이상이 임할 때 사도 요한을 보자

사도 요한이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보아야만 한다. 또한 진리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이 무엇인가? 반드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를 찬양해야 한다!

 

4) 바로 이런 것 때문에 바울 사도는 감격해 하면서 신앙을 고백한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전 3:16). 바울 사도는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9)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나타내는 동시에, 또한 감추셨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보아야 알 수 있는데, 그러나 죽기 때문에 절대 볼 수 없다. 바로 이런 때,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 할렐루야!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고,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오셨다는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육신을 입으셨기에 그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심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감격하는 성탄의 진리이다. 그래서 마태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1)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약에서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 조금씩 계시가 주어졌지만, 충분하지도 않았고 적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들이 이렇게 직접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육신하신 진리를 감사드리며 찬양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진리를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율법의 기능에서 멈춰야 했다.

2. 이제 은혜의 관점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심을 보자

은혜가 왜 이런 방식으로 와야 했는가? 이것을 설명하는 열쇠가 갈라디아서에 있다. 바울 사도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4:4)이라고 설명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아들을 보내셨을까? 그것은 율법이 이 두 가지 일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이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1) 우리의 대표자는 인간이어야 하고,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무엇인가? 사람이 타락했다. 인류 전체가 수치의 자리로 타락해버렸다는게 문제다. 죄에 빠졌다. 따라서 율법은 당연히 형벌을 요구한다. 마귀도 다음 같은 이유로 사람이 우리의 대표자가 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만든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최고의 걸작품이었다 그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귀가 끼어들어 타락이 일어났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신 최고의 성취가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귀는 조롱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 좀 보세요.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큰 목적을 갖고 지은 창조의 최고봉이라는 사람이 저 모양이네요!”

 나)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인류를 구속하고 회복할 자로서 반드시 사람이 와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내가 다 용서했다”선포하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율법의 입장에서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네가 저지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너의 실상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한다’ 말씀하신다면 마귀는 계속 의기양양하게 떠들 것이다: “사람을 용서하신다고요? 좋습니다. 하지만 저 꼴을 좀 보세요! 여전히  엉망이잖아요! 용서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가망이 없기는 마찬가지네요. 당신께서 지으신 최초의 모습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잖아요!”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결코 도덕적 영향력이 아니라, 속죄의 죽음이어야만 했다.

다) 또한 천사를 대표자로 보내는 것 또한 적절한 대책이 못된다 

사람이 실패했으니, 사람이 성공해야 한다. 만일 실패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을 내놓지 않는 한, 하나님은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으시다. 마귀에게 답변하실 수 없으시다. 그 조롱과 비웃음을 받게 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대표자와 구속자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어야만 한다. 이처럼 우리의 구속자는 반드시 여자에게서 태어나야하며, 우리처럼 실제로 인간 본성을 가져야만 한다. 왜 그런가? 우리를 위해 일할 자,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을 만족시킬 자는 반드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2:11)라고 말씀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혈과 육에 속하고 나눈 자녀들이다. 그런데 그분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오셨는가? 히브리서는 말한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2:14,15).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우리)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2:16)고 말씀한다. 우리는 우리를 대표하고 구원해 줄 존재가 필요했으며 반드시 여자로 인한 사람이어야 한다.

  

2) 여자에게서 나야 한다는 것 이상, 이제 율법 아래 나야한다

왜 그럴까? 우리의 대표자로 우리가 충족시켜야 할 요구(율법)를 대신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은 실제로 율법을 지키셨다. 비둘기를 제물로 드리셨고,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다. 또한 율법의 요구를 다 공부하셨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아셨다. 만일 그분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대표자가 되실 수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율법을 지키되, 완벽하게 지키셔야 했다. 그가 율법을 완벽하게 순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율법의 저주를 받아야 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우리의 대표자로 율법을 지키셨다. 둘째 아담이자 마지막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셨다.

   

3) 자! 이런 것은 우리가 다 죄책이 있으며, 율법의 정죄 아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 율법은 죄를 범하는 그 영혼이 죽어야 할 것(겔18:14)을 강력이 외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종말을 맞아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떨어져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표자로서 여자에게서 나섰고 율법아래 나셨다. 왜 그렇게 나셨는가? 우리 대신 율법의 형벌을 담당하시기 위해서다. 구약시대는 자주 천사로 오셨지만, 이제 사람으로 오셨다. 왜 그런가? 히브리서는 말씀한다: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2:9) 

 

3. 우리의 대표자는 이렇게 사람이면서도 하나님, 곧 신적 존재야만 한다

1) 만일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되었다 해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우리 모두의 죄와 죄책과 무게들을 감당하겠는가? 결코 못 감당하고 짓눌려져 죽음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리스도는 사람이자 하나님이셨다! 그분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시며, 육신이 되신 말씀이었다. 사람이 되셨다고 하나님이 아닌 것이 아니다. 참으로 신비한 두 성품이시다! 하나님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 아버지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세상에 내려와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래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여주셨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심으로 우리가 그 가운데 은혜 받고 진리를 알게 하셨다! 할렐루야! 

 

2)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문제를 다루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은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7,18) 하셨다. 누가 주님 외에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십자가 사건을 주님이 사람에게 목숨을 빼앗긴 것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전적으로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왜 그런가? 예수님은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28) 하셨기 때문이다. 주님 외에 아무도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오직 주님만이 죽음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널 상대해주마! 내가 널 뚫고 나가겠다!“주님은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도 여전히 죽음의 주인이셨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설교한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음이라“(행 2:23,24). 거룩하신 자로서, 인간이자 하나님이시니 죽음에 매여 있을 수 없으시다! 인간이자 하나님인 분 만이 우리 죄책을 담당하실 수 있고, 율법이 그 역할을 다하게 하실 수 있으며, 율법을 완전히 이행하실 수 있으시다!

 

3) 또한 주님은 죽음을 뚫고 나와 승리할 능력이 필요한데, 하나님이시기에 그렇게 하실 수 있었다 

베드로는 설교하면서, 주님을 ‘생명의 주’라고 불렀다. 왜 그런가? 그분은 생명을 만드시고, 지으신 분이기에 죽음보다 강하시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행 2:23,24)라고 설교했다. 부활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부활하시지 못했으리라!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전 15:54)는 말씀대로다. 그분은 죽음까지 다스리시는 주인이요 정복자이시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것처럼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7:16)라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다른 이들은 할 수 없었던 일을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이유이다. 히브리서는 말한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7:28).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계신다(7:25). 사도요한은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주님의 말씀을 기록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인이요 승리자로서 율법이 요구하는 짐을 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시며, 맨 나중 원수를 정복하신 분이시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서이다!

이렇게 율법은 은혜가 와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와야 할 것을 요구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셔야 할 것을, 신성과 인성을 가진 한 인격에 두 본성을 가지신 분이 구원자로 오셔야 할 것을 요구한다!

 

4) 우리 구주께서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구원의 열매를 주시려는 데 있다

어떻게 구원의 열매를 주실까? 율법은 새로운 본성, 새로운 마음, 새로운 시각, 새로운 삶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다. 그는 우리를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시작하시는,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시다!

가)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신의 성품에 참여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우리가 그의 성품, 즉 신인의 성품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주 예수께 받는다. 그에게서 태어나고, 그에게서 나온다. 인간 본성이 아담에게서 나왔듯이, 우리의 신의 본성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새로운 본성을 받는다. 그래서 그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히 2:11). ‘구원받는다’는 것은 옛 본성이 개선된다는 것이 아니라, 새 본성을 받는다는 것, 곧 완전히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나) 구원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지체의 각 부분이다(고전 12:27).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나? 그가 사람이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이 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와 연합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신인(神人)으로서 중재자가 되셨기 때문에 연합할 수 있게 되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는 구원이다. 이제 우리는 늘 마귀에게 이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서 그로부터 능력과 양분을 받으며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받는다!

다) 이제 주님은 자신의 일을 완성하셨기에 성령을 보내주실 수 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께 한량없이 부어주셨던 것을 우리에게도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성령이 우리 안에도 계시기에,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4:17)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이 사람이자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으심, 그 후의 모든 일의 결과로 성령께서 오셨다.

 

4. 마지막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히브리서는 말씀한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졌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2:17,18). 그가 사람이 되시지 않았다면, 우리와 똑깉이 시험받으실 수 없으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왜? 사람이 되시고 육신이 되셨기 때문이다. 바로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아래 나셨기 때문에 시험을 받으셨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가!

 

[나아가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사람의 체질을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 이 땅에 살면서 모든 것을 직접 겪어보셨기에 너무 우리 무지와 연약을 너무나 잘 아신다. 그분이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자신의 영원한 지식도 제한하셨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히 4:16)는 것을 믿자!

율법은 모든 점에서 성육신, 사람, 여자, 율법 아래를 요구한다. 동시에 하나님을 요구한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졌고, 감사하게도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 사람이요 하나님이신 분이 우리의 구주시다! 이것이 우리의 성탄의 의미요 찬양이요, 우리가 기뻐할 복음의 내용이다.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시고, 우리로 모든 것, 은혜와 진리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며 영원토록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을 주셨다! 이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자!(고후 9:15) 아멘!

 

* 2022년 5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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