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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죄책감을 치유하라(2)

복음뉴스 0 08.13 09:23

제목 : 죄책감을 치유하라(2)

: 김경수 목사(서울, 광은교회)
     kks50205020@gmail.com

 

어떤 자매가 있었다.

그는 엄마와 남동생을 심하게 미워하였다.

두 사람이 너무 친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남동생에게만 애정을 쏟았다.

어느 날, 어머니와 남동생을 향해 저주하였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계속 그렇게 좋은지..."

그 직후 남동생은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

남동생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 자매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미칠 듯이 화가 났다.

밤이면 계속 악몽을 꾸고 어느 날부터 귀에서 망상이 시작되었다.

"이젠 네 차례야 네 차례"

그리고 장의 차량이 보이며 동생도 보였다.

그는 동생에게 아무리 미안하다고 말해도 동생은 떠나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자매는 몸이 급속히 쇠약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자신이 엄마와 동생을 저주했기 때문에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깊은 죄책감이었다. 이처럼 죄책감(罪責感)은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마음을 말한다. 심리적으로 본다면 잘못을 했을 때 느끼는 상한 감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죄책감은 자책감과 같은 말 같지만 굳이 말하면 차이점이 있다. 죄책감과 자책감은 모두 'a guilty conscience' (죄를 느끼는 양심, 자각) 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죄책(罪責)'the liability for a crime' (범죄에 대한 책임)의 의미가 강조되고, 자책(自責)'self-accusation' (자기 비난, 고발)라는 의미가 강조된 말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죄책감이란 죄로 인하여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죄의식이다. 일명 부적절하게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죄의식으로 시달리는 상한 감정이다(Guilty Feeling). 이러한 상한 감정이 있을 때 자기 안에 있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하며, 스스로를 경멸하고 깊은 절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이런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 했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살펴보기 원한다.

 

1. 인류의 최초의 죄책감 - 아담과 하와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죄책감 때문에 무화과나무 뒤에 숨어 버렸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실 때 아담은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고 피해 숨어버린 것이다. 즉 하나님이 금하신 실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죄책감으로 숨었던 것이다(3:8-12). 이것이 인류 최초의 죄책감이며, 자신이 불리할 때 숨는 죄책감이다

 

2. 다윗의 죄책감

다윗에게도 밧세바를 취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38:13). 그래서 이렇게 회개하였다 나는 귀먹은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38:13-14).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나는 귀먹은 자처럼 듣지 못하고 범죄 했다는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었다. 곧 이것이 성적인 죄책감이다.

 

3. 베드로의 죄책감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였다.

이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기는 주님을 따를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26:75).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이 말 한대로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연약한 소녀 앞에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다. 이때 닭이 울음으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며 울었던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가 가진 죄책감이다. 이처럼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살면서 지은 죄, 원죄와 자범죄,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부지중에 지은 죄, 폭력, 거짓말, 양심의 타락, 윤리의 부재 등등으로 인하여 오는 죄책감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느낀 죄책감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죄책감을 살펴보아야 한다.

 

다윗은 어느 날, 왕궁에서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한 순간의 정욕을 참지 못해서 자신의 오른팔과도 같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였다. 문제는 이와 같은 죄악으로 인해서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 다윗은 죄책감을 해결하고 자신의 아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간교한 흉계를 꾸몄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러 들여 밧세바와 동침하도록 만들려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충성스런 우리아는 자신의 동료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고생하는데 자기만 편히 쉴 수 없다는 이유로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전략이 실패하자 다윗은 더 무서운 음모를 꾸며서 전쟁에 나가 있는 총사령관 요압과 내통을 통해서 우리아를 고의로 전사하도록 만든 것이다. 결국 우리아는 맹렬한 전투 맨 선봉에 섰다가 이스라엘 군대가 일제히 퇴각하는 바람에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져서 전사하고 말았다. 이렇게 다윗은 자신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충신의 아내를 빼앗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우리아 장군을 비열한 방법으로 죽게 만들었다. 이렇게 큰 죄를 저지르고서도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데리고 들어와 아내로 삼았으며 아들까지 낳았다. 그래서 사무엘하 11: 27에는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다윗이 간음죄에다 살인 교사죄를 저지르고서도 도무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자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다. 그리고 비유를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범했는가를 깨닫게 하셨다. 그제야 다윗은 자기 죄의 중대성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라고 자신의 죄를 시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이 지은 죄에 대한 벌로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낳은 첫 아들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나단 선지자의 예언대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낳은 첫 아들이 심한 병을 앓게 되어서 결국 죽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떤 일로 인하여 죄책감을 가지고 산다. 이런 죄책감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살펴보기 원한다.

 

· 죄책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

 

1. 신앙으로 해결하기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당연히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죄를 짓고서도 양심에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도덕 불감증에 걸린 사람이다. 다윗은 순간적인 정욕에 눈이 멀어서 밧세바와 동침한 뒤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불륜의 씨앗이 잉태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어떻게 감출까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간음죄로 끝날 것이 살인죄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다윗이야말로 특정범죄 가중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그런데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기 전까지 양심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지만 그는 나단 선지자의 통렬한 꾸지람을 듣고서 자신의 죄악이 얼마나 중한지 알게 된 다음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그리고 그는 죄책감 때문에 금식하면서 땅에 엎드려 회개 기도를 한 것이다. 신하들이 다윗을 땅바닥에서 일으키려 해도 듣지 않고 일체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철저하게 죄의식을 느끼면서 통회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죄책감을 신앙으로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2. 회개함으로 용서함 받기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3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또한 이 죄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로마서 6:23"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한다.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죄와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죄와 죽음의 문제가 빠진 기독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죄책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용서받을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은 순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며 예수님이 오지 않으셨더라면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양이나 비둘기를 날마다 제단에 바쳐서 자신의 죄를 씻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짐승의 희생제는 우리의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번거롭기 짝이 없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영원한 번제가 되게 하심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단번에 해결하여 주셨다. 이사야 43:25절에는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 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또한 시편 103: 12절은 하나님께서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그래서 히브리서 10:10절은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제 때문에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조차 아니하시게 된 것이다(10:17)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하여 주신 것이다.

 

3. 죄책감을 넘어서기 위해서

죄책감에는 건설적인 것과 파괴적인 것이 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후서 7:8-10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건설적인 죄책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는 근심이며, 파괴적인 죄책감은 세상 근심과 똑같다. 건설적인 죄책감, 즉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를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게 하지만 파괴적인 죄책감, 즉 세상 근심은 결국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고전 7:10).

 

· 죄책감을 치유받기 위해서

 

1. 자기의 죄를 시인하라.

죄책감은 잘못을 했을 때 느끼는 상한 감정인데, 그때 상심하고 분노한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그 감정이 내면세계에 남아 있어서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어떤 이는 오래 전에 느낀 죄책감을 아직도 가지고 산다. 작은 일이 일어나도 결과적으로 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쏟지 못하게 되고 무력한 생애를 살아가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면에 남아 인생을 무기력하게 하는 죄책감을 정리해야 한다.

 

2. 믿음으로 치유하라.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본래 로마 가톨릭교회의 유능한 사제였으며 교수이기도 했다. 그런 위치에 있으면서도 루터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떻게 해야 속에서 꿈틀거리는 죄책감을 없앨 수 있는지 고심하였다. 그런데 그런 죄책감은 구약 성경 하박국을 인용한 로마서의 말씀을 깨달은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이 말씀을 통해서 그는 죄책감에서 자유 할 수가 있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는 믿음(10:17)을 통해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해결된다.

사람에게 잘한다고 해서 죄책감에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올바를 때 치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8:1-2).

 

4.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된다.

시편 103:12절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또 죄사함을 위해 기도하면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옮겨버리겠다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죄책감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죄책감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103:1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죄로 인하여 눌릴 필요가 없다.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자복하고 회개했으면 하나님께서 깨끗이 용서하여 주셨음을 믿고 더 이상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 2022년 8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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