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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식] 목회 중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대하는 지혜

복음뉴스 0 08.13 09:36

제목 : 목회 중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대하는 지혜  

글 : 이종식 목사 (베이사이드장로교회) 

 

목회하다 보면 목회자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저런 사람은 좀 사라져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사사건건 부정적인 발언을 하고 뭔가 목사가 추진하려는 것에 찬물을 끼얹듯이 하는 자가 있다. 그리고 언제나 긍정적인 면 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찾아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 그뿐 아니라 모든 것을 쉽게 진행되지 못하게 하고 까탈스럽게 작은 것까지 일일이 따지는 자가 있다. 그래서 목회자가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하게 하고 의욕을 떨어뜨리는 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목회자는 그런 사람을 교회에서 떠나게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더욱 화를 불러와 교회 전체를 어렵게 한다. 결국 잡초 하나 뽑으려다 온전한 곡식까지 다 뽑는 일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반대하고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목회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에 대한 나의 목회 원리는 먼저 그가 말한 것을 곰곰이 다시 생각하며 그것의 옳고 그름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의 주장을 포함하여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그가 설혹 말을 할 때 무례한 말투나 기분 나쁜 자세로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고 해도 그런 상대방의 행동을 빨리 잊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다음 날은 전혀 아무 일이 없었다는 식으로 그를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경우 목회자들이 지난날의 기분 나빴던 것을 기억하며 상대방을 대하기 때문에 인상은 경직되고 반갑게 마주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인사까지도 안 하고 피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정말 문제가 생긴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알게 된 교인들은 목사가 참 속이 좁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나에게 무례하게 나오는 자가 있다고 해도 속히 그것을 잊고 그를 새로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런 자세를 목회 원리로 삼게 된 것은 갈라디아서의 한 말씀과 에베소서의 한 말씀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목회를 시작한 어렸던 나에게 정말 귀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 요점은 내가 예수님처럼 죽어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이 잘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죽으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나도 죽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죽을 수 있는 일은 다 죽어보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상대방이 무례한 말을 하는 것도 참을 수 있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그 어떤 무례한 말을 들어도 발끈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항상 마음에 품고 사는 말씀은 에베소서 4장 26, 27절의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 말씀의 뜻은 아무리 화가 나고 섭섭한 일이 있어도 하루해를 넘기지 말고 그것을 잊고 내일부터는 새롭게 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기분 나쁜 것을 하루 이상 마음에 품고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하면 먼저 목회자 자신에게 좋다. 목회자가 어떤 성도의 무례한 말씨 하나하나를 신경을 쓰고 산다면 정말 그는 아무것도 못 하는 폐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사람들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그렇게 무례했다는 것조차 기억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도의 무례한 자세나 행동 때문에 하루 이상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목회를 하고 싶으면 목회자는 성도가 행한 무례한 행동을 빨리 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마음에 생긴 분을 하루해가 지기 전에 풀어버릴 때 생기는 일은 상대방을 잃지 않고 오히려 내 사람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사에게 자신이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위축 되게 되어 있다. 이제 목사가 자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고심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면 교회에 남아 이제는 목회자를 적으로 간주하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경우가 생기면 그에게 먼저 전화하여 그렇게 말했다고 기분 상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의 말을 해준다. 상대방에게 자유함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렇게 전화할 분위기가 아니라면 다음에 만날 때 이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롭게 그리고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모든 경계의 무장을 푸는 것을 본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변함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은 교회에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본 모든 교인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목사가 마음이 넓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성품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목사는 이러한 겸허한 행동으로 양을 잃지 않고 목사라는 직을 존중 받으며 목회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목회 원리는 그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다른 때보다 더욱 성심껏 돕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가 기도를 요청했을 때 그리고 심방을 요청했을 때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찾아가 위로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는 더 이상 일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사람이 아닌, 평생 나를 돕는 자로 변신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 목회자들은 성경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생활에서도, 목회에서도 다 성경적으로 선으로 악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길만이 실수 없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이끌어 가는 방법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전도사 때 경험했던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1985년도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LA에서 그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학생회를 담당하기 위해 교육 전도사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가는 날 보니 여학생 둘이 무엇인가를 종이에 써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 내용은 환영이 아니었고 나의 부임을 반대하는 문구였다. 그 사정을 알아보니 그 교회에서 전임자로 학생부를 맡고 있던 전도사를 그만두게 하고 다른 일을 맡겼는데 그것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그리고 그렇게 반대한 이유는 교회가 분열되어 있어서 자기편에 서 있지 않은 교역자를 내보내기 위함이었다고 오해를 한 것이었다. 나는 그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를 환영하지 않는 교회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부임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도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언제나 이런 상황이 오면 도망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견뎌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생부 전도사로 부임하여 학생회를 맡게 되었다. 그때 학생이라고는 다 합쳐서 대여섯 명이었는데 첫 주일 날 학생회 예배실에 들어가 보니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모두 다 데모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를 고심하며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난 것은 학생부 전체를 위한 금식 철야 기도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오직 기도만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스터를 만들어 앞으로 한 달 후에 학생부 전체 금식 철야 기도회가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 학생부 중에 누구든지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은 금식하고 기도회에 참여하라는 공고문이었다. 그런 광고를 본 학생회의 전임 전도사는 나에게 와서 웃으며 그런 일을 어떻게 하려고 계획했냐고 물었다. 이 교회에서는 장년들도 그런 기도회는 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학생들이 그런 기도회에 올 것 같냐고 말했다. 그리고 거기다가 지금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학생들이 오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이 잘 안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기도 밖에는 해결책이 없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성경이 가르쳐 준 원리대로 계획한 것이었다.  

 

그런데 철야 기도회 하는 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학생들에게는 변화가 전혀 없었다. 내가 부임한 지 3주일이 지나도 주일날 학생부 예배실엔 아무도 오지 않았고 빈방을 나는 홀로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기도를 드리는데 이런 기도가 나왔다. 그 학생들 중에 수장이 되는 아이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아이에게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학생이 어느 날 나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그 용건은 자기가 학교에서 숙제로 책을 읽어야 하는데 영어가 미흡해서 한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글책을 갑자기 찾을 수가 없어서 문제였는데 전도사님 집에 책이 많다고 들어서 급하게 전도사님에게 전화했다는 것이었다. 그 책은 나다나엘 호던이 쓴 주홍글씨였다.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그 책을 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필라델피아에 오기 전에 어느 서점에서 세계 문학전집 70권을 싸게 사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찾아 전화를 주겠다고 하고서는 책을 찾는데 책이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문학 전집을 살 때 한 권이 빠졌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하필이면 그 학생이 찾는 책이 빠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학생에게 전화해서 찾아보니 없다고 말하게 되었고 (그 학생은 더 큰 오해를 하며 “그럴 줄 알았어요. 빌려주기 싫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죠?”라고 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그날 참 망연자실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혼자 중얼거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든 것이 뉴욕의 서점에는 그 책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화하니 마침 그 책이 있어서 페더럴 익스프레스로 그 아이 집으로 책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아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아이는 말을 더듬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전도사님, 제가 전도사님에게 나쁘게 했는데 왜 저에게 이렇게 잘해주시는 것인가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의 전도사가 아니냐. 그렇다면 내 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부담갖지 말아라.” 그 학생은 그날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수요일 교회에 가 보니 그 학생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감사의 표시로 넥타이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금식 철야 기도회가 열렸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약20명의 학생들이 그 모임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 수장되는 아이가 아이들을 모아서 데려온 것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우리 교회에 다니지 않던 처음 교회에 전도되어 온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 모인 학생들이 서로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배고파 죽겠다는 말이 여러 곳에서 들렸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너 몇 파운드 줄었니?” 하고 서로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그들이 밥을 먹지 않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금식의 개념을 모른 그들은 다이어트로 알고 하고 온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들의 몸무게가 빠지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서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주님 저들의 다이어트를 금식으로 받아 주셔서 오늘 저들의 삶에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날 나는 예수님의 속죄의 피에 대하여 설교하였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사람은 오늘 이 시간 앞으로 나오라고 부르니 20명 중의 18명이 앞으로 나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밤을 새워 회개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날 먼젓번 학생회를 담당했던 전임 전도사가 기도회 중 그곳을 방문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울며 기도하는 많은 학생을 보며 놀란 듯 자리에 앉아 있었고 함께 기도하였다. 그분은 나중에 나에게 와서 이 전도사는 천재인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분은 내가 머리를 써서 그렇게 많은 아이가 온 것으로 안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하나님이 가르쳐 준 대로 하면 천재 소리를 듣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기도로 시작된 학생회는 내가 필라델피아에서 공부하며 전도사로 있는 동안 80명으로 성장하여 큰 학생회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주게 되었고 장년들을 목회할 때도 엄청난 지혜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목회하는 동안 교회에서 나를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를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아군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를 반대하는 자에게 넓은 아량으로 선을 베풀 기회를 찾아야 하겠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언제나 나의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그 한 사람에게 하는 선한 일 때문에 다른 양 떼들이 나를 믿고 따라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는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를 따라 해 나갈 때 어려워도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2022년 8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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