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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복음뉴스 0 2022.10.07 14:59

제목 :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요한복음 25-8)

: 이윤석 목사(NY 부르클린제일교회)

 

[들어가며]

 

기적이란 하나의 비유와 같다. 그것은 거기에 우리에게 줄 교훈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표적이라고 한다. 표적들의 큰 목적이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위하여 가능하게 했던 모든 것을 깨닫도록 하는데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핵심구절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16)”이다. 어떤 면에서 복음의 전체적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 충만한 본질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며 또 우리가 어떻게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본문은 가나의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이다.

 

1) 우리가 요한복음 사건과 표적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을 알게 된다

이런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얼마나 낮아지셨는가 하는 겸손에 대해 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굽어보셨다. 우리에게 이런 예증과 모범을 통해서 도움을 받아 엄청난 부요를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항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실 뿐 아니라, 모든 상황을 지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2)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충만함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마리아는 성급함과 주제넘음의 죄에 빠쪘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명령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를 책망하셨다. [내 때가 되면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일들을 하겠나이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신앙은 항상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간구하고 탄원하는 자일 뿐이다. 우리는 주님께 빚쟁이처럼 요구할 수 없다. 우리에게 그런 자격이나 권리가 없다. 예수님의 이런 책망이후, 어머니 마리아가 뭐라고 했는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이것은 매우 옳은 자세이다. 충만한 생명을 위해서, 자기에게서 나온 확신이 결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거침이 될 때가 많다. 우리는 먼저 이 세상에 먼저 살았던 선배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노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선배들의 자서전이 고마운 선물이다. 그들의 말은 마리아처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였다. 우리는 지금 포도주가 모자란다. 다 써 버렸다. 우리는 무엇인가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그분이 해답이시다. 유일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요, 신앙의 선배들의 말과 같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가 따라와야 한다.

 

1.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아는 데는 양면성이 있다는 기초부터 다시 배우자

1> 한쪽만 강조하고 주장하면 빗나가며, 소극적인 위험에 빠진다

1) 첫째 위험은 지나친 자기 열심으로 자기를 신뢰하는 행동이다

자기 열심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형편에 강조점을 둔다. 우리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며 결정한다. 그러나 곧 탈진하고 지치고 낙심하게 되는 신앙생활이 되어버린다. 왜 그런가? 우리가 해야만 할 일에만 강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2) 둘째 위험은 정반대로 전적으로 수동적인 신앙이다

단지 기다리고 기다릴 뿐 아무 일도 할 것이 없다고 하나님 편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데, 문제는 해야 할 일을 안하는 것이다. 예정을 운명과 숙명으로 이해하고 있다. 성령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고 한다.

 

3) 가장 위험한 것은 사단의 방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대해 알기 시작하고 영적 생활의 고차원에 이르기 시작하는 순간 사단은 노력을 배가한다. 우리 주님을 계속 끈질기게 공격했듯이, 우리를 살펴보며 사방에 올무를 놓는다. 빛의 천사처럼 다가와 우리로 지나치게 행동하든지 아니면 완전 수동적이 되든지 하게 한다. 그래서 모든 노력을 좌절시키고, 바닥에 머물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2> 참된 입장은 무엇인가? 성경의 특성을 지닌 균형이다

그것은 우리를 통해서 예수께서 활동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말씀대로 그대로 해야 한다. 바로 다음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 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7,8), 여기 두 가지 요소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를 통해 예수께서 활동하시고, 예수께서 통제하고 인도하시는 활동을 하신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신앙생활에 혼돈과 무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이제 더 적극적인 입장에서 살펴보자

1) 주님의 방법은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굴복함으로 시작해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충만함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잘못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의 전제조건을 가지고 그것을 믿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에 감동적인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런 축복은 의무를 감당할 때부터 시작한다. 어떤 의무인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것이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2) 우리 주님은 사실 가장 평범한 명령을 내리셨다

열왕기상 19장에 하나님의 위대하고 능력있는 종, 엘리야를 보라. 한번은 침체되고 불평하던 엘리야가 호렙산 동굴로 도망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굴에서 나와 산마루에 서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강한 돌바람이 불었다. 바위를 가르는 매우 힘있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엘리야는 기대했었지만 아니였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어떤 신호로 바람과 능력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지진과 불 가운데도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 후 가느다란 음성이 들렸다. 바로 그것이다! 책망이 그곳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세미하고 잠잠하게 그 일을 하셨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세미한 책망이 필요하다. 우리는 바람과 지진과 불을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의 축복은 거기서 오지 않는다. 우리의 복은 단순한 명령을 통해서 임한다. 세미한 음성은 조용하고 기대하지 않던 것이다. 세미한 음성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단순한 명령을 듣고 깨닫는 것이다.

 

2.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받는 일에 적용해보자

1)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가? 꼭 실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실천하는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저 단순하게 명령을 준수하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흥분과 괴로움, 자제력 상실과 조급함이 지나야 세미한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불순종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큰 복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늘 지름길에 관심이 있다. 일들을 자기 방식대로 처리하고자 한다. 영웅적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과거에, 자신이 은혜를 받아 뜨거워졌다고 신학교 가려하여 상담한 분이 있었다. 왜 신학교에 가고자 하느냐는 질문에, 하나님을 더 알고자 신학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그때 필자는 아닙니다. 성경을 더 읽고, 말씀을 교회에서 공부하고 순종함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상담해주었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 현재 우리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놀라운 희생물을 드려도 귀하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믿어야 할 요한복음 성경을 통해서 강조하여 자꾸 말씀하신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3:17).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행복과 기쁨과 축복을 누리려고 한다면 실천이 따라야 한다. 이것이 너무 중요하기에 주님께서 계속 말씀하신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14:21). 우리의 소원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그 아들을 뵈옵는 것이다. 그러나 지키는 자에게만,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생활의 충만함이다. 특별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사랑하는 자이다. 가룟인 아닌 유다가 묻는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14:22).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14:23).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알고 싶어 했다. 그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면 그의 말을 지키고, 그분은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14:24)” 신앙생활은 너무 분명하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말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2) 우리가 실천하되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은 하나님의 명령 하나 하나를 구체적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다는 뜻이다. 마리아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일반적으로 말했다. 주님은 지금 일반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하라고 말씀한다. 우리 신앙의 모든 면을 살펴보자고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대충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하나 하나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경기하는 자는 반드시 법규를을 따라서 경기를 해야한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다(딤후2:5). 예를 들어 마라톤을 하는 사람은 목표가 있다.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야 한다. 그런데 엉뚱한 길로 달리면서 자신이 경기하는 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경기하는 자는 자기가 뛰고 있다고 자랑하는 자가 아니다. 그의 목표는 상이다. 달리다가 너무 힘들어 잠간 차를 이용하거나, 그 후 살짝 내려서 달려가자 한다면, 그는 심판관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사람이다. 신앙의 경주를 하는 우리는 구체적인 법칙과 규정과 법규들이 있다. 그가 달려 왔던 것이나 달려가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4:13).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 시시하게 보이는 것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만일 자동차 수리공이 작은 나사나 볼트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중요한 것만 하자!’라고 생각하여 꽉 조이지 않을 때, 차를 몰고 길을 간다면 나중에 대형사고로 끝나고 만다. 우리의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을 정말 알고자 하는가?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 안에 거처를 삼기를 사모하는가? 우리는 충만하고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의 명령과 말씀을 구체적으로 세세히 청종해야한다.

 

3. 그 명령이 무엇일까?

1) 그의 명령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연구하는 것이다

성경을 진심으로 읽고 연구하되 성령께서 조명해주실 것을 기대하라! 그 구체적인 가르침대로 살고자 헌신하자! 많이 읽고 연구할수록 자신의 무지에 정말 놀라게 된다. 축복이 더 빨리 임하리라

 

2) 그에 의지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 자신이 하신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교제하신 시간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축복의 본질이다. 우리는 매일 삶 속에서 성경을 연구하며 묵상하여 기도하는가?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을 주셨다. 읽고, 그 길을 따라야 그리스도인으로 주의 임재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느니라.(10:19).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탈진할 수 밖에 없다. 그분께 직접 나아가 찾고 말씀하고 원하는 바를 아뢰자! 복되고 용기를 주시는 말씀에 자신을 맡기자! 계명의 말씀의 자신의 마음을 열자!

 

3) 그의 명령은 하나님의 백성, 교회에서 친교하는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14:7).”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도 자신의 힘으로 참된 복을 얻지 못한다. 복은 하나님의 백성들 (성도들)이 함께 모일 때에 임했다. 우리가 함께 주 안에서 대화함으로 우리는 많은 도움을 받는다. [넘치는 은혜]를 쓴 존 번연은 그의 책 가운데 다음과 같은 묘사를 제공하고 있다 그가 베드포드라는 도시의 한 길을 걷고 있는데, 네 명 정도의 가난한 여인들이 햇볕 쬐이는 길에 앉아서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예수 믿으며, 믿음으로 이런 평화를 얻는 것 같애, 나는 기쁨을 새로 얻었어. 사랑의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이 행복해!“ 번연 자신이 이 대화를 듣기만 해도 큰 축복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3:16). 하나님을 진정 경외하는 자들이 모여 그 내용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큰 복이다!

 

4) 그의 명령은 생활 속에서 실제 행동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시금석은 생활 속의 실제 행동에 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쉬운 일인데, 가정에서나 사무실에서나, 직장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삶에 당연히 믿음의 비밀이 있어야 한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 3:9). 믿음의 비밀이 무엇인가? 그것은 보석처럼 값진 것이다. 그것은 잘 간직해서 보석함에 넣어두어야 한다. 보석함이 무엇인가? 청결한 양심이다. 곧 믿음과 청결한 양심은 서로 나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거리낌 없는 양심(24:16)인가?

신자일지라도 거리낌이 있으니 삶 속에 축복이 없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니라(요일 1:6). 우리가 아무리 영리하게 이 축복을 얻으려고 해도 어두운 가운데서는 불가능하다.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면서 신앙생활하려는 것은 시간과 정력만 낭비할 뿐이다. 우리는 빛과 어두움을 동시에 걸어갈 수 없다. 반드시 하나를 포기해야만 한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말한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4). “나는 충만함을 간구했어요! 그래도 들어주시지 않네요.” 그것은 거짓이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계명을 지키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순종하지 못한다면 그분을 매우 사랑한다고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만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자! 인내와 회개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자.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자!

 

5) 그분의 명령은 선한 일을 힘쓰는 것이다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3:8)”[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함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계명들을 성취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그 계명들을 이루도록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서 순종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순종함에 이를 수 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정하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하심이니라(8:3,4). 우리는 선행을 실천하면서 그 말씀을 지켜야 한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이것은 큰 도약이다. 마리아는 [포도주가 모자란지라]고 말했다. 필요한 것은 포도주였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다. 그분이 우리에게 이런 특별하고 놀라운 명령을 내렸으니 우리는 순종하자 그래야 충만함을 체험할 수 있다.

 

4. 우리는 이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16).

1) 우리가 구원받고 속죄함 받는 것은 시작이며, 더욱 나아가야 한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8,19).”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베드로 사도가 말하듯,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는 삶만 아니라 그 이상이어야 한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1:4). 이로서 우리는 지금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 땅에서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약속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약속이다.

 

2) 우리는 물을 길어와 항아리 아구까지 채워야 한다

항아리가 거기 있었다. 그것은 손 씻는 청결예식을 위해 언제나 그곳에 두었다. 다음 말씀을 들어보라: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항아리에 즉시 물을 채우라!” “그리고 이제는 그것들로부터 포도주를 길으라!” 주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우리는 방금 물을 부었는데, 주님은 포도주를 떠다 주라고 말씀하신다.

 

[나아가며]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그때 믿음으로 순종했는가? 그렇다. 그래서 표적이다. 주님이 태어날 때부터 손이 말라버린 38년 된 병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렇다: 그가 손을 내밀래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3:5).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첫 번째 표적이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충만함을 체험하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가능성과 고귀한 약속을 깨닫고 행동하자! 믿음과 순종으로 예수 안에서 가장 행복한 자가 되자!

 

* 2022년 9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6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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