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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포스트 코로나 교회 가는 길의 전망 2

복음뉴스 0 2022.04.08 10:33

특별기고 - 포스트 코로나 교회 가는 길의 전망 2

글 : 조원태 목사 (뉴욕우리교회)

 

1 [포스트 코로나 교회 가는 길의 전망] 첫 번째 글을 쓸 때가 딱 한 달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어렵지 않게 바이러스 터널을 빠져나오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달 만에 풍경이 바뀌었다. 확진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 세기에 보일 법한 변화를 고작 일 년에 경험하는 시국이다.

 

환경이 요동칠 때, 전망은 유명무실하다. 예측이 쉽지 않을 때에, 변하지 않는 것을 붙잡아야 한다. 더불어 지금보다 더 변화무쌍했던 시절 에도 생존했던 성공사례들을 반추할 때, 우리는 ‘할 수 없다’ 보다 ‘할 수 있다’ ‘된다’ 생각하며 사기와 기세가 꺾어지 않을 수 있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한 여인의 기적 같은 생존후기를 보자. 에스더이다. 에스더는 평생 자리잡기가 곤란했다. 어릴 때 부모가 죽어 입양된다. 민족의 파국으로 포로 되어 자리잡기의 쓴 맛을 본다. 왕후인데도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해 설 자리를 잃는다.

 

죽을 각오이다. 이것은 흔들리는 내 마음에 이정표가 되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는 한국교회가 고난을 이기는 이정표가 되었던 것 처럼, 펜데믹 시대에 일사각오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교회모델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죽을 각오하면 못할 것 없다. 

 

하지만 바이러스 앞에 무턱대고 죽을 각오로 임하는 교회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는지도 지난 펜데믹 광풍 속에서 배웠다. 사회 의 눈치를 보는 교회도 문제지만, 사회의 민폐가 되는 비합리적인 교회의 모습도 전도의 걸림돌이 분명하다. 나는 진지하게 물어야만 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로 교회의 새로운 자리잡기에 임할 것인가?” 에스더에게 배운 것이 있다. 그녀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지키 려고 목숨을 걸었다. 공동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을 지키려고 진정 교회는 그 누구보다 심지어 의료진보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2 이런 맥락에서, 펜데믹을 지나며 공동체를 지키려고 집중했던 나의 경험들을 나눈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죽을 각오로 임한 것 같지는 않다. 때로 나 또한 담벼락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연약함도 많았다. 이런 부족한 사례들이 함께 걷는 이에게 용기이면 좋겠다.

 

펜데믹 충격은 대면의 현장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예배, 교제, 선교, 교육을 비롯한 교회의 주요 세포들을 직격했다. 해체되는 것처럼 보이는 가시적인 것들의 복구를 위해 대부분의 교회들이 대처했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인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복원되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마음이 무너지면 어쩔 도리가 없다. 회복의 탄성도 힘을 잃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지키려고 사력을 다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방법으로 편지이다. 비대면에서 궁여지책으로 마련된 공간이 줌, 유투브, 카톡 등의 소셜미디어였다.

 

그러나 쇼셜미디어는 연령층에 따라 접근성에서 배제가 일어날 뿐 아니라, 마음을 느끼는데 한계가 많다. 반면에 편지는 아날로그 방식이 지만 진정성을 전달함으로 마음을 지키는데 혁혁한 공헌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교회의 비전을 “다시, 러브레터(고후 3:2~3)”로 바꿨다. 

 

교회 안에 우체국을 세웠고, 우체국장을 비롯한 자원하는 직원들을 임명했다. 우체통을 상설적으로 비치했으며, 엽서를 제작했고, 매주 편 지쓰기를 독려했다. 한달에 한번, 예배 시간안에 편지 쓰는 시간을 가졌다. 올 한 해의 절반 시점에서 몇 백 통의 편지들을 서로 주고 받았다.

 

편지의 위력은 예상보다 놀라웠다. 가족들 사이에 회복이 일어났고, 교우들 사이에 격려가 빈번하게 왕래했다. 나아가 복음을 접하지 않았 던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자연스레 전도가 멈추지 않았다. 가정, 교회, 세상에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마음을 전달하는 1석 3조였다.

 

편지는 신약성서에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새벽마다 러브레터 시리즈로 바울의 편지들을 설교했으며, 교회에서 편지가 주요 아이콘으로 자리잡도록 목회적 집중력을 다했다. 우체국 직원들은 교회에서 사 준 우체국 모자를 쓰고 이런 보람을 시각적으로 확인해 줬다.

 

또 한 가지 사례가 [쎈 바이블 클럽, 이하 쎈바]였다. 다 약해지는 때 더 쎈 것이 없을까 기도하던 중 오직 쎈 것은 성경임을 깨닫고 펜데믹의 시작과 함께 쎈 바이블 클럽을 창설했다. 시중에 사용되던 [드라마바이블]이라는 오디오 성경읽기가 쎈바의 프로그램이다.

 

성경일독을 완성할 선택지가 97일, 122일, 200일 3종류가 있는데 우리는 매일 평균 1시간이 걸리는 97일을 선택했다. 지난 1년 동안 3번 진 행한 쎈바는 어제 3기가 종료되었다. 무려 165명이 성경을 일독했다. 펜데믹이 없었더라면 아마 1번도 성경일독하지 못할 분들이었다.

 

타주와 타국에 있는 분들까지 입소문으로 참여했다. 단톡방에 모두 초대해 매일 그날의 분량을 읽고 내게 주신 한 구절을 “미션완료”라는 글자와 함께 올렸다. 다른 분들이 올린 말씀을 읽는 것으로도 감동의 물결이 97일동안 멈추지 않았다. 분명 마음이 단단히 지켜졌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줌에 모여서 [드라마바이블]을 함께 들으며 정기적으로 서로 격려했다. [드라마바이블] 장사를 해볼라치면, 100여 명의 연기자/성우의 현장감 넘치는 목소리와 최고 작곡가들이 디자인 한 배경음악이 압권이었다. 각자의 셀폰에 에플리케이션으로 다운받 았다.

 

매일, 시편을 기도문으로 시작과 마지막에 읽고, 구약과 신약을 내용에 맞게 구성했다. [드라마바이블]은 https://dramabible.org/about에 소개된다. 쎈바 성경읽기는 20대 청년부터 80대 어른들까지 세대간의 장벽을 허물었으며, 쎈바를 통해 사람 마음을 지키는 체험이 깊었다.

 

그 밖에 예배에 참여하는 길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작년 7월 제한적인 예배가 허용된 순간부터 주일예배를 종전보다 하나를 더 늘

렸다. 사회적 거리유지로 인해 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가 제한된 까닭으로, 종전의 2차례 주일예배에서 하나를 더 증설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기세가 꺾이지 않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저와 부목사가 주일예배 안에서 매주 다른 포멧으로 인형극 메시지를 전 달함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지키주려고 했다. 고령의 어른들과 어린이들은 담임목사와 단둘이 소풍을 정기적으로 즐기기도 했었다.

 

특히, 펜데믹이 시작되자마자 교회 안에 [코로나 긴급대응 TF]를 만들어 복지, 의료, 법률의 전문가들이 수시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도록 했다. 펜데믹 이전부터 진행한 [만나와 메추라기] 프로그램은 실직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의 마음을 지켜줬다.

 

이런 효과들은 교우들로 하여금 자신보다 더 어려운 곳에 시선이 머물게 했다. 암담한 시절임에도 교회 부근 노숙자들에게 식사제공을 하 며, 서류미비자들이 눈물 흘리는 현장에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시스템이나 제도의 보완으로만 불가능한, 이것이 마음을 지키는 시너지였다.

 

우리는 새로운 자리잡기를 해야 한다. 세상의 논리에 예속될 수 밖에 없으며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교회는 분명 하나님이 예정하신 자리 가 있음을 확신한다. 마음이 무너지면 무엇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데 일사각오 하자.

 

유명한 흑인 신학자인 안젤라 데이비스는 말한다. “벽을 밀치면 문이 되고,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 펜데믹 벽을 밀치니 쎈바 문이 열렸 고, 비대면 벽을 눕히니 편지 다리가 되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빈익빈 부익부의 교회 흐름이 중단되고, 모두가 함께 생 존하고 함께 부흥하며 함께 새로운 자리잡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서로 으쌰으쌰 하자.

 

[편집자 주 : 위의 글은 2021년 8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3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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