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 노래하는 음유 목사, 박지우 목사김현기 목사의 나의 인생 나의 노래 ③ 노래하는 음유 목사, 박지우 목사 (C&G 교회)
인터뷰 및 정리 : 김현기 목사 (필그림선교교회 예배 및 미디어 담당)
Q.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려 주실 수 있나?
저는 동두천에서 자랐고, 형이 음악하는 분이어서 어렸을 때 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자라왔어요. 집에 전축이 있어서 매일 LP를 꺼내어 들으면서 팝송을 듣다가, 5학년 쯤 되어서 기타라는 악기를 처음 잡고 독학으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비슷하지만, 저는 특별히 왜소한 체격에 별로 주목받을 게 없는 외모였는데,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주목해 주기 시작하면서 엄청나게 재미를 느겼죠. ‘아!이것이 나의 살길이다!’라는 생각에 아마도 더욱 열심히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음악을 하면서 여자친구들도 생기고 제법 인기도 있어서 여러번 초대를 받기도 했는데,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친구생일 파티가 있다고 다들 가는데, 저만 안부른 거에요.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집에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이 제가 부유하지 못해서 생일 선물을 못가져오니까 부르지 않은 거죠. 전 그날이후 그 친구들과 관계가 끊어 졌죠. 마음의 상처만 남긴채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 때 저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학교 앞에서 어떤 여자분이 전단지를 주는데, 거기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아세요? “당신을 초대합니다!”라고 쓰여있는 겁니다. 어느 교회의 전단지였는데 전 그 말이 지금도 저의 삶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친구들의 파티 대신 하나님의 초대장을 받게 된 겁니다. 그게 바로 제가 교회로 첫발을 내딛은 순간이었습니다.
Q.교회 생활은 어땠나요?
교회에 갔더니 형, 누나들이 너무 잘해주는 거예요. 기타도 치면서 노래도 하는 어린 동생이 들어왔으니 얼마나 예쁨을 받았겠어요. 여름성경학교도 빠지지 않고 다니고 신앙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학생회장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계속 하다보니, 교회 생활이 지루하고 재미없어지더라구요. 세상에서 하는 음악들은 신나고 즐거운데 교회의 음악은 어딘지 모르게 나의 열정을 채우기엔 부족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교회밖으로 다시 나돌 기 시작했습니다.
Q. 교회를 나가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요?
세상의 음악이 하고 싶어서 나갔으니, 제일 먼저 한 일은 밴드를 결성한 겁니다. 하고 싶은 음악들을 마음껏 하면서 공연도 하고, 남들앞에서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아 다녔죠. 동두천의 미군부대 앞에서 밴드로 서고 세상의 것들로 물 들어 갔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공식적으로는 업소의 일을 할 수 없었지만, 비공식적으로 미군부대앞의 클럽들에서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섰고, 약간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습니 다. 주로 그당시에 유행하던 Deep Purple, Led Zeppelin 등의 음악을 카피해서 무대에 올랐고, Europe이라는 밴드의 Final Countdown 같은 곡들이 주 레퍼터리였습니다. 그 적은 출연료로 눈믈 젖은 빵을 사먹어 봤다고나 할까요.(웃음)
Q. 미국은 언제 오게 되었나?
그렇게 동네밴드로 활동 하던 시절, 가족들이 미국 이민을 준비하고 오게 됩니다. 불과 19살 20살일 때 중부 뉴져지 에디슨으로 오게 되었는데, 다들 그렇지만, 이민 생활이 쉽지 않잖아요. 더구나, 부모님은 하루종일 세탁소에서 일 하시고, 저는 하루 종일 친구도 없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2-3년 동안은 정말 미국에 있는 게 힘들었습니다. 문화적으로 한국의 것으로 똘똘 뭉쳐 있는 상태에서 다시 뭔가 새로 배우기에는 늦은 나이였고, 말은 안통하고….결국 우울증을 겪게 됩니다.
아버지 생각에는 세탁소 하나 차려서 저와 같이 운영하면 될거라고 하셨지만, 저의 머리속에는 음악을 다시 하고픈 생각 말고는 없었어요. 그러니, 맨날 집에만 있고, 나갈 수 도 없는 상황속에 엄청난 정신적 압박이 몰려오는 겁니다. 그나마 그런 위기를 돌파할 수 있게 해준 건 몇몇 교포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사실 별로 건전한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미국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또 한가지 저를 다시 일어나게 해준 건 역시 음악이었습니다. 그당시 Midi 음악( 주: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음악)이 막 시작할 무렵인데 그 재미에 빠져서 원맨밴드를 만들고 뉴욕과 뉴져지의 업소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Q.가수 생활에 대하여 말해 주세요.
가수라고 딱히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뉴욕 뉴져지에서는 거의 최초로 업소에서 라이브로 노래를하게 됩니다. ‘바덴바덴’이라는 곳에서 Midi반주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니,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그런 분야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가수였습니다. 한국의 ‘가요무대’가 뉴욕에 와서 녹화를 할 때 제가 그 무대에서 강산에씨의 노래를 해서 방송을 타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같이 노 래하는 사람들이 이 지역에서도 조금씩 생겨났고, 저도 여러군데서 노래를 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뉴욕지역에서 열리는 대학가요제 예선이 있었는 데, 제가 참가해서 금상을 탔습니다. 그런데, 상은 탔지만, 한국의 본선에는 참가하지 못했어요. 알고보니, 한국에 참석하려면, 약간의 뒷거래가 있었어야 되는 거였지만, 전 그런 걸 알지 못해서 결국에는 본선에는 나가지 못하게 된겁 니다.
그래서, 그냥 한국에서 가수로 성공해 보려고 혼자 다시 한국으로 나가게 됩니다. 한국의 밤업소와 라이브클럽들을 전전하면서 라이브 가수로 활동을 했습니다. Eric Clapton 의 Tears In Heaven이나 Extreme의 More Than Words등 당시만 해도 좀 어렵다는 기타 주법들을 익혀서 노래하니까 한국의 라이브클럽에서는 제법 대접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마치 제가 유명한 가수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을 좀 하게 됩니 다. 그런데, 그 생활이….연예인처럼 살아가는 그 생활이 제 가 바라던 모습과 너무도 다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생각보다 너무 비참하기도 하고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생활속에 즐거움도 기쁨도 사라져 버리는 거에요.
Q.그래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 생활에 실망감이 더해져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가수로의 꿈을 접은 것은 아니었지만, 실질적인 쓰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레코딩 엔지니어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공부하는 학생으로 밤에는 클럽에서 가수로, 그리고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일하면서 다시 인생의 설계를 해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만난 한 친구 덕분에 함께 동업으로 레코딩 스튜디오를 차리게 됩니다. 그친구 덕분에 정말 비싼 악기들과 장비들을 만져봤고, 그 재미에 푹 빠져 있을 무렵, 제 앨범 레코딩 작업에 앞서 한국에서 온 한 가수의 작업을 먼저 하게 되죠.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곡을 힛트시킨 이원진 이라는 가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수가 함께 작업을 하던 중 사망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고, 그일은 저에게 큰 충격을 던져 줍니다.
Q.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그 친구 덕분에 삶에 대한 생각과 영적인 존재인 인간에 대한 생각들이 완전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죠. 내인생은 남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서 음악을 한건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니까 이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마음이 생겨버린 겁니다. 사실 전 목사가 되려고 했던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완전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자세가 달라졌던 거고, 사랑을 줘야되는 사람이 되었던 겁니다.
나 스스로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던 ‘탕자’와 같은 존재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경험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누구든지 만드신 분께로 돌아오면 그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악과 문화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일’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거죠. 그게 저의 비전이 된겁니다.
제 인생은 한마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서 이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받고, 내가 왜 태어나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 가에 대한 확신과 기쁨이 생겼고,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진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인생의 노래 단 한곡을 꼽는다면?
사실 제가 만든 곡을 뽑을 수 있을까 망설였지만, 이 가사에 너무 공감이 가서 이곡을 뽑았습니다. ‘당신만 보입니다’ 라는 곡인데, 가사는 시인이며 나구용 목사님의 사모님이신 김영자님의 시에서 따온 겁니다. 이 시를 보는 순간 노래를 만든것이 아니라 시 속에 있는 멜로디를 끄집어 낸 특 별한 곡입니다. 제 아내가 제 노래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당신만 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eLeCJYvwWc
악보
https://1d484450-812c-46e9-927f-928f1cb5d795.filesusr. com/ugd/068ed8_0f091edb2dd240879825e6003f757426.pdf
박지우 목사의 찬양과 아침편지 https://www.youtube.com/channel/UCpR6Bhcdn2f-2EVfph962Rw
[편집자 주 : 위의 글은 2021년 8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3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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