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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자들의 향기를 맡으며 6

백의흠 목사 0 09.0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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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30분에 모여 8시 40분에 대형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독일의 베를린에서 안내원이 와서 90KM 떨어져 있는 Tabor를 향해 출발했다.

운전 기사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어제 밤에 비행기로 프라하에 와서 버스 회사에서 버스를 인계 받았다고 한다.

덴버의 송목사님이 장례 때문에 5일 뒤에 베들린에서 합류하고 22명의 목사님과 사모님이 참석했다.

차를 타자마자 이 여행을 준비하신 전지능 목사님과 박건섭 목사님이 펀드를 조성하여 보조 받은 각 개인당 700불씩 가정당1,400불을 돌려 주셨다.

원래 목표가 개인당 550불인데 이번 탐방을 주관한 인포 여행사에서도 많이 보조하여 많은 기금을 모았다.

여행자 보험도 인포 여행사에서 다 부담하였다.

타보로 가는 길은 많이 막혔다.

가이드가 주의 사항을 말해 준다.

프라하는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종교 개혁의 배경과 종교 개혁 전의 종교 개혁에 대하여 설명한다.

특히 박식한 우리 가이드는 얀 후스의 종교 개혁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를 한다.

너무 박식하고 정확히 말을 해서 신학을 공부 하느냐?고 물으니 독일에서 신약으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8개월은 공부를 하고 4개월은 관광 가이드를 한다고 한다.

1시간 반동안 차안에서 강의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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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보르에 도착하여 얀 후스의 박물관으로 갔다.

광장에는 후스주의자들의 지도자인 Jan Zizka의 동상이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 가니 후스중의자들이 로마 카톨릭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 파 놓은 지하 거주지로 들어 갔다.

타보르 도시 전체의 지하가 거대한 지하 공간의 도피소로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다닌 곳은 극히 일부인 550m인데 돌을 파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런 수고와 삶을 살았다는 것이 대단하다.

지하실 건설은 1420년 타보르 설립 직후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음식과 식량을 저장소로 사용되었지만 1437년에 타보르가 왕실의 도시로 승격되고 맥주를 양조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면서 지하실은 확장되었고 맥주를 숙성시키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깊은 곳은 표면 아래 16m나 되고 지하실이 하나의 터널로 연결이 되면 그 길이가 12-14km가 된다.

이 곳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엘리지베스 교회의 내부로 들어가고 15분 가량 후스주의자들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얀 후스의 박물관 내부를 보면서 그 당시 전쟁에 대한 모형과 지식카에 대한 유물들을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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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들러 보고 바로 옆에 있는 체코의 전형적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로 빵과 약간의 고기가 나왔는데 간편은 한데 나에게는 별로 맞지 않았다.

점심을 배부르게 때운 것 같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체코는 후스를 배출하고 후스주의자들이 바른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운 곳인데도 지금 체코에는 40%의 카톨릭 신자, 15%의 이교도 신자 그리고 나머지는 종교가 없다.

신교도인은 거의 없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를 배출한 프랑스에 신교도인이 거의 없고 그의 고향 노와용에는 신교도가 한명도 없는 것처럼 체코에도 신교도인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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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떠나 1시간 달려 프라하에 도착했다.

체코는 프라하를 중심으로 하는 보헤미아(Bohemia), 올로모우츠(Olomouc)를 중심으로 한 모라비아, 실레시아의 세지방으로 되어 있다.

가이드가 먼저 프라하 전체의 전경이 잘 보이는 언덕 위의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내려다 본 프라하 시내는 그림 엽서 그 자체였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 갔을 때 성에서 내려다 본 라인강을 지나는 시내의 그림 같은 모습의 모습과 비슷했다.

아내도 너무 멋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니 멋있는 경치 그대로의 모습이 안 나온다.

일분만 나오거나 멀리서 보는 것 같이 사진이 찍힌다.

눈으로 보는 광경이 훨씬 더 멋있었다.

여기서 나와 프라하 성으로 갔다.

Prague Castle은 시대별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성당, 왕궁, 수도원, 정원 등을 포함하는 성채 단지이다.

이 곳은 프라하의 상징이자 체코의 상징이다.

체코의 왕들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이 곳에서 통치를 했고 현재는 체코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가 이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근위대가 2명이 정문에 보초를 서고 있고 정각이 되자 6명이 줄을 서서 근무 교대를 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에 몰렸다.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혹은 단체로 여러 팀이 왔다.

중국 관광객들, 유럽 관광객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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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성 안에는 성 비투스 대성당이 있었다.

고딕 양식으로 크고 높게 건축되었고 체코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성당이다.

St. Vitus Cathedral은 수백년에 걸쳐 20세기에 완성된 프라하 성 내부에 위치한 성당. 다양한 기법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성당을 완공하는데 400년이 걸려서 작품들이 만들어진 시대가 다르다.

이 곳에는 여러명의 체코 왕과 귀족, 대주교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대성당의 정문은 예수님의 수난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성당의 역사가 그려져 있는데 왼쪽은 하인리히 4세가 보헤미아 군주인 바칠라프에게 비투스 성인의 왼손인 성물함을 바치는 조각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은 프라하 대주교가 카알 4세에게 성물을 주는 것이 그려져 있다.

왼쪽은 사백년의 기간, 오른쪽은 600년의 기간인 천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곳은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내부에 유럽의 모든 성당처럼 스테인드 글래스로 멋있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스테인드 글래스는 그 당시 가난한 성도들의 성경이었다.

글을 모르고 성경을 읽지 못하고 모르는 성도들을 위해 스테인 글래스의 그림을 통해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최후의 만찬 스테인 글라스에는 22만 6천개의 유리 조각이 들어 갔다.

성당 바로 옆에는 광장을 두고 마주보고 일반 건물처럼 보이는 대통령 관저가 있는데 경비도 허술하고 간소한 것 같았다.

그 곳을 나와 황금소로로 갔다.

이 곳도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이 곳은 포병 장교 숙소로 지금은 세공 가공을 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특별히 소설 성을 쓴 카프카가 살던 집이 있다.

이 곳을 내려와 바츨라프 광장으로 왔다.

어제 우리가 왔던 곳이다.

우리가 사진을 찍은 동상이 체코의 왕 바츨라프이었고 Musieum은 국립 박물관이었다.

바출라프 광장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의 성지 같은 곳이다.

1968년에 체코에 소련군 20만명과 장갑차가 이 곳에 집결 하였다.

그리고 체코의 민주화 운동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그리고 1989년 하벨 대통령 때에  공산 정권이 무너지는 벨벳 혁명이 일어났다.

벨벳 형명 당시 870만명의 체코 슬라바키아 국민들이 운집하여 체코의 민주화를 열망했던 장소가 바로 바츨라프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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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나와 어제 갔던 구시가지의 중심인 구시청사로 갔다.

Prague Old Town Square 는 11세기부터 교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지역이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시대별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여기는 얀 후스의 동상과 천문학 시계, 틴 성모 마리아 성당 등이 있다.

가이드가 프라하 천문시계에 대해 설명해 준다.

1410년에 이 시계가 설치 되고 지금까지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어제 지하철을 타고 갈 때는 여기 사람들이 다 초라하고 가난해 보였는데 프라이 시내에서 만난 사람들은 세련되고 멋있었다.

이 곳에서 자유 시간을 갖고 7시에 체코 식당에서 양갈비 구이를 먹었다.

맛도 별로였고 입에도 맛지 않았다.

역시 한국 음식이 최고다.

저녁을 먹고 얀 후스가 설교하던 베들레헴 교회를 잠간 들러 마지막으로 블타바강 위의 카를교(Karluv)에 갔다.

인스타그램에서 프라하의 사진이 나올 때마다 카를교와 구시청 광장의 모습이 나오는데 어제 이 곳을 봤어야 하는데 미처 생각을 못하고 너무 피곤해서 그냥 온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날이 이미 어두워져서 캄캄했지만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많았다.

다리 위에는 30개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바로크 양식이다.

이 곳은 얀 네포무츠키 신부가 대주교와 대립하던 보헤미아의 왕 바츨라프 4세에 의해 처형 당한 이야기와 장소가 유명하다.

낮에 사진을 찍었으면 멋있었을텐데 밤이기 때문에 카를교 위에서 불빛으로 환한 프라하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9시 경에 호텔로 돌아 왔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하루였다.

모든 목사님들과 가이드 등이 많이 수고하였다.

 

사진 설명 : 위로부터 타보르교회 ==> 타보르교회 ==> 타보르 Zizka 동상 ==> 프라하 성 ==> 비투스 성당 ==> 비투스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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