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장동신] 능동적 사랑이 생명입니다.

장동신 목사 0 09.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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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주는 것이며,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는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1980)은  "사람들은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서 그림 그리는 기술을 배우지 않고 아름다운 '대상'을 찾으면 걸작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며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비생산적인 사람은 사랑을 주는 것이라고 할 때 ‘가난해 짐’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는 것을 꺼려합니다. 또 주는 것을 ‘희생’ ‘덕’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개념은 ‘박탈당하는’ 감정을 감수해야 합니다. 반대로 생산적인 성격은 주는 것을 잠재적 능력의 최고의 표현으로 생각합니다. ‘주는 자-나의 힘’ ‘주는 자-나의 부’를 통해 경험하는 환희가 있습니다. 생명력, 잠재력을 넘쳐흐르게 하고 소비하며 생동하는 나를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는 것은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활동성을 표현하는 것이며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이것이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능동성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줄 수 없으면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닙니다. 주는 자가 부자입니다. 잃어버릴까 안달나면 그는 가난한 사람이 맞습니다. 병자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는 자의 극치는 자신입니다. 곧 생명입니다. 다 주고나면 내가 곧 망할 것이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입니다. 가장 중요한 영역은 물질 영역이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내가 생명을 줄 수 있다면 나로부터 받는 그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내 안에 살아있음을 주는 것입니다. 반대로 빼앗으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 착취자입니다. 나 살려고 하는 짓인데 상대도 죽고 결국 나도 죽습니다. 서로 망합니다.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 무엇이 있으며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주고도 낙심된다면 비생산적 사랑을 사는 자입니다. 주는 것 자체가 사랑의 극치이며 절묘한 기쁨입니다. 주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면 그 생명은 내게 되돌아옵니다.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사람으로 만들고 둘이 서로에게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을 얻는 길입니다. 현실적이고 분명한 생명의 표현만이 서로에게 생산적 관계를 만듭니다.  

 

우리 서로가 대상의 관계가 아니라 성실하면서 생산적인(능동적) 관계로 만나면 치유된다고 에리히 프롬은 말합니다. 사랑은 능동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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