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 19:35)
And it came to pass that night, that the angel
of the LORD went out, and smote in the camp of
the Assyrians an hundred fourscore and five thousand:
and when they arose early in the morning,
behold, they were all dead corpses.(2 kings 19:35)]
미국은 1945년 뉴멕시코 사막에서
원자탄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 원자탄은 태양의 천배의 섬광을 발하며
성공적으로 폭발되었습니다.
이 가공할 핵무기 위력에
지켜보던 의원들이 오히려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가 이 강력한 핵무기로 다 죽을 것을 생각하여
이 살인무기를 막을 수 있는 방어무기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한 의원이 질문을 했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보고자는 있다고 대답을 했답니다.
그 방어 무기가 뭔가? 하고 물으니
‘평화’라는 무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평화라는 무기가 어디 있는가? 하고 물으니
창문 너머 보이는 십자가를 가리키면서
“저 십자가의 주인공 예수그리스도"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평화의 주인이십니다.
그 분만이 인류에게 평화를 주실 수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평화를 주셔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헐었다고 했습니다.(엡 2:13-14)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셔서 막힌 담을 헐어주실 때
진정한 마음의 평화도 가정의 평화도
민족의 평화도 인류의 평화도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민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우선순위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막아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제 36년 처절한 암흑 시대에 탑골공원에서 일어나
만세를 부르던 33인의 민족대표 중 16명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민족을 가슴에 안고 자기 생명과 바꾸리만큼
조국을 위해 기도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에스더가 그러했고
다윗이 그러했고 예레미야나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도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민족을 위해 기도해 주겠습니까?
우리 민족의 남은 과제는 평화로운 복음통일입니다.
동서독의 통일에 대해 전문가들도
20-30년이 지나도 힘들 것이라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남북의 통일도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때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에 의해서 이뤄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 후 보니까
동독지역 라이프치히 교회에서는 통일되기 10년 전부터
통일을 위하여 기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사실은 충격이었습니다.
훗날 우리 민족이 통일되었을 때
교회가 통일을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기도했노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선진들은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를 흘렸고
감옥에 갔고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들입니다.
이 분들의 민족정신이
오늘의 우리 민족을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36년 간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내 나라 내 조국을 사랑한 선진들의 희생 덕분입니다.
제헌 국회를 기도로 출발한 대한민국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결과입니다.
존 낙스는 기도하는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해답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했습니다.
기도만이 인간이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1) 기도할 때 역전승되었고
(2)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주셨고
(3) 적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라도 승리를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 영이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성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늘 반성합니다.
오늘 말씀은 힘이 없는 유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주변의 앗수르라는 나라가 유다를 공격해 왔습니다.
그때 유다나라의 왕이 ‘히스기야'입니다.
18장과 19장을 읽어보면
힘없는 유다의 모습이 너무도 처참하게 나타납니다.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해서 에워싸고
항복하라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편지는 하나님을 조롱하며 유다를 무시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풍전등화 같은 처참한 현실입니다.
이런 처절한 현실에서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했습니다.
문제를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기도할 때
위기에서 주의 사자가 나타나 역전승시키는
드라마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