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영적 예배를 드리세요

김경열 목사 0 2019.03.10 23:40
본문말씀 : 롬 12:1-3
제목 : 영적예배를 드리세요
                                      김경열 목사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롬12:1)
 I beseech you therefore,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hat ye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un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Rome 12:1)]
 
 
중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세대를 초월하여 무섭게 전염병처럼 번져갑니다.
사람들은 지금 3가지 중독에 빠져 있는데
아주 무섭습니다.

1) 하나는 스마트 폰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스마트 폰이 없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이웃과 친구가 단절되고 가족관계도 단절되고
혼자의 공간에 갇혀 엘리베이터나 차안에서도
길을 가면서도 예배시간에도 온통 스마트폰입니다.
 
2) 또한 게임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어른 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게임 도박을 무섭게 하고 있습니다.
불법도박을 통해 천만원에서 2천만원을
잃었다는 청소년들이 중독자의 36%나 된답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가 악순환됩니다.
지금 수없이 일어나는 사고 중 많은 원인이
게임중독 때문입니다.
가상인물을 자기로 착각해 잔인한 폭력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자기정체성을 잃고 있습니다. 

3) 또 하나는 음란물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사회가 온통 음란물에 함몰되어서
건강한 정신이나 가치관이 병들어 있습니다.
성이 상품화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은 다음 세대가 아니라
다른 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거룩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1) 살아있는 물고기의 신비는 바닷물에 쩔지않고
역류하며 헤쳐 나갑니다.

(2)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빠져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며 역류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3) 주님도 이 땅에 오셔서 어둠을 몰아냈습니다.
당시 종교와 정치가 야합한 시대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저항이 굉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외식과 위선과
거짓을 무섭게 책망하시고 시대의 타락을
묵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영성입니다.

(4) 타락해 가는 시대를 역류시키신
종교개혁자가 바로 주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란?
(1) 십자가로 죄악을 가로막고
(2)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3) 부패의 흐름을 역류시킨 사람들입니다.
여호사밧이 그러했고, 엘리야가 그러했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데 교회의 타락 속에서도 옷을 더럽히지 않고
신앙을 지킨 몇 사람이 있습니다.(계 3:4)
(중략) 정의를 구하며 진리를 행하는
한 사람을 찾으면 이 성을 용서하리라
(렘 5: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한 사람.
이들이 이 시대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소돔성의 심판이 죄악 때문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죄악을 가로막을 의인 10명이 없는 것
때문에 심판을 막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수가 아닙니다.

(1) 하나님은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사람
(2) 진리를 행하는 한 사람
(3) 의인 열 사람만 있으면 죄악을 가로막을 수 있고
탁류 같은 시대를 역류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저는 찬송 가운데
“세상 풍조는 나날이 갈리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이 찬송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장맛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
물고기가 강 물줄기를 타고 올라와서
시골집 처마 밑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빗줄기를 타고 냇가에서 올라온 것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성도 30만 밖에 되지 않을 때,
독립을 위해 3.1운동을 일으킨 애국자들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민족정신을 깨웠고
부패할 때 소금의 역할을 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영성도 야성도 잃고
세상과 함께 동화되어 떠내려갑니다.

(1) 우리는 비상하며 일어나야 합니다.
신앙의 야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시 빛을 발해야 합니다.

(2) 예수 안에 있는 생명 운동이 일어나서
이 시대를 향해 양각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영적예배가 무엇인가를
3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3)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자로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1) 예배의 실패는 신앙의 실패입니다.
설교, 기도, 찬송 헌금, 모두가 예배입니다.

(2)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3) 신앙의 본질은 예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영적 예배 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1.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길 원하십니다.(1절)

1) 이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라고 하셨습니다.

(1) 예배란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2)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한때 열린 예배라고 하니까
강단에 올라가 넥타이 풀어놓고 청바지 입고
예배드리는 것이 열린 예배라고 유행이 되었었습니다.

저는 열린 예배는 그런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1) 열린 예배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리고
심령이 열려 내 영이 보좌 앞으로 나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예배가 열린 예배요,
영적 예배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인간과 교제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성전이 열릴 때
언약궤가 보였습니다.(계 11:19)

계 11:1-2에는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만 측량하라고 했습니다.
예배자들만 측량 즉, 소유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예배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예배,
하나님의 임재와 신령한 교통이 있는 예배입니다.

성경에는 3종류의 예배가 나옵니다.
(1) 드리고도 화를 받은 가인의 제사입니다.
가인은 제사를 안 드린 것이 아니라 잘못 드린 것입니다.(창 4:5)
자기 멋대로, 자기 방법대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2) 또한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를 거부하셨습니다.
중심으로 드리지 않는 형식적인 예배였습니다.(사 1:12-13)

시간이 남아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물질이 여유가 있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바쁜 시간을 쪼개서 드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3) 또 하나는, 하나님은 영으로 드리는
예배자를 찾습니다.(요 4:23-24)
우리는 지금 예배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예배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어디에 가서 마음껏 찬송 부를 수 없고
기도가 안 되는 곳에서 형식적인 예배를 하면
얼마나 속상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언제나 무엇보다도
영적예배를 회복하시길 축복합니다.

2) 그러면 어떻게 영적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1하)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을 영적인 예배라고 했습니다.

제물은 반드시 죽여서 드리는 것입니다.
죽지 않은 것을 제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산 제물이란 말씀을 주목하세요.
살아가는 삶 자체가 예배라는 말입니다.

교회서 드리는 예배만이 아니라
주일날만 거룩하게 사는 게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천사 같은데 가정에서는 악마로 변하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교회서나 가정에서나 같아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예배입니다.
이것이 너희가 드릴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했고
영적인 예배라고 했습니다.

특히, 자녀들도 어려서부터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사무엘처럼 나실인으로 키워
구별된 자녀로 자라야 합니다.

병든 문화로 온통 오염된 다음 세대를
치유하는 길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만이
어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2) 중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3) 예수 생명운동이 일어나야만 됩니다.

생명이 들어가면 회복됩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고 했습니다.(요 8:31)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을 지배할 때
영이 살아납니다. 

2. 영적 예배자는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2절)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2상)고 하십니다.

(1) 주님은 이 세대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시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시대는 하나님을 떠난 시대였습니다.
이런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받는다는 말은 '물들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생각과 행동은
자연히 어두운 세대를 닮아가게 됩니다.

(2) 지금 사회가 건강한 정체성이나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짐승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만이 동성끼리 창조질서를 거역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서
이런 죄악들을 막아서야 합니다. 

2) 또한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2하)

신앙의 변화는 마음 속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에도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인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방탕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동거하여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거스틴이 32세에 유명한
암브로스의 설교를 듣다가 회심하게 됐습니다.

회심한 후 어느 날 옛날에 드나들던 술집의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어거스틴에게
“왜 요즘은 저희 술집에 오시지 않나요?”라고
유혹했답니다. 그러자 어거스틴은
“옛날의 어거스틴은 죽었고, 나는 새 사람이 됐소.”
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된 존재들입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진정한 변화는 마음에서부터
생활로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삶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3) 또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2하)

세상에는 영에 속한 뜻도 있고
육에 속한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있고 사람의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게 영적 예배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와서도
왕이 산해진미를 내려 주었지만 산당에 제사를 드린
음식이었기 때문에 먹지 않겠다고
뜻을 정하였습니다.(단 1:8)

열흘 간 산해진미를 먹은 다른 사람과
채소만 먹은 다니엘과 비교해 보라고 했습니다.
 
열흘 후 비교해 보니 채소만 먹은 다니엘의 얼굴에 더욱 윤기가 낫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셨고 훗날
바벨론의 2인자가 되는 자리로 높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몸이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길 원하십니다.

삶 자체가 예배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예배자의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에 빠져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물오리는 물에 살지만 물이 묻지 않습니다.
깃털에서 기름이 나오기 때문이랍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이기며 사는 것입니다.

영적 예배자로 회복될 때,
영혼이 살고 가정이 살고 민족이 삽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드림
                          (917-963-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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