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 대하여 전하는 증거와 전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쉽게 말해서 다른 사람의 전도를 받고 즉시로 흔쾌하게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 안드레(Andrew)는 스승이었던 세례요한의 가르침과 증거를 통해서, 곧바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12사도로서 초대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특이하게 요한복음에 따르면, 시몬 베드로(=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수제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던 사람도 바로 그 형제 안드레였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 베드로(Simon Peter)는 자기의 친형제 안드레의 증거와 인도를 받고서 예수님을 즉각적으로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나 증거와 인도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넓은 의미에서는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어느 정도 관심과 생각과 마음(=열망과 기대감, 기도제목)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서 발견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인물 나다나엘(Nathanael)의 경우, 오늘날 우리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 나다나엘은 빌립의 증거와 인도에 대하여, 의외로 부정적인 반응을, 그것도 아주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나다나엘이 빌립의 증거와 전도를 거부했던 핵심적인 근거/이유는 “나사렛, 갈릴리(이방나라와 경계지역=border)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하는 편견이었습니다. 전쟁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이방민족과 빈번하고 손쉬운 접촉을 통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이방의 침입”을 가장 먼저, 가장 빈번하게, 받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은 신앙적인 영적인 절개(loyalty)가 없는 지역이고 또한 그런 지역의 사람들이라고 낙인이 찍혔습니다. 갈릴리에 대해서 드러나게 보였던 이러한 부정적인 태도는 당시의 일반적인 지식인들의 인식과도 매우 비슷합니다(요한복음 7:52, 찾아보라=성경을 봐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형제자매 여러분, 나다나엘의 경우 이만한 신학적 깊이와 성경적 지식이 오히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편견/선입견”으로 떨어진 말씀지식입니다). 결국은 사람의 그 어떤 것이, 비록 성경을 아는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음으로 인도할수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바로 자기가 그처럼 사모하고 기다려왔던 그 메시아를 눈앞에 두고서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과연 이러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날수 있을까요? 다음주에 이야기를 계속 이어갑니다.
••• 오늘의 메시지를 마무리하면서, 사도바울의 말씀을 되새겨 묵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