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복음의 능력2)

민경수 목사 0 2019.08.27 09:25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복음의 능력2)
본문: 고전 15:50-58

지난 주일에 우리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일 때,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간다는 진리를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며, 영생의 생명을 오늘의 현실에서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됨을 확인했습니다.
복음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인생의 죄를 십자가에서 용서하여 모든 죄값에서 자유케 했다는 위대한 구원의 복된 소식good news”입니다. 이 복음을 통해 우리들은 죄의 삯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본문 55-57절).
오늘은 이러한 복음을 이미 받아들이고 신앙생활하는 신앙인들에게 적용되는, 복음의 능력의 또다른 이면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저 합니다. 중생을 통해 거듭난 우리 신앙인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살되, 새로운 존재가 되어 새로운 성품을 갖고 새로운 삶을 살아 가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 신앙인이 생물학적으로는 노쇠하여 가지만, 신앙적으로는 오히려 새로운 속사람의 생명이 약동하고 날로 새로워져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후 4:16). 뿐만 아니라 육신의 죽음이 닥쳐오면 오히려 영원한 생명의 몸이 있게 될 것을 기쁨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은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나니" 할렐루야!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는 현세에서도 하늘의 생명을 누리지만, 남들이 피하고자 하는 죽음까지도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신앙인들의 죽음은 영원한 안식을 얻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성도들은 화평과 안식을 맛볼 때가 많지만, 여전히 주님과 이웃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해야 하며, 세상의 불의와 싸워 이겨야 하며 환난과 박해를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육체에 남은 옛사람의 죄악된 본성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견고함과 인내, 즉 성도의 견인의 여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이 모든 긴장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이 진리를 확신한 사도 바울은 오히려 이생에서의 죽음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빌 1:21-23). 결국 성도의 죽음은 삶의 의무와 문제들, 그리고 자신의 불완전한 육체와 죄성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받는 축복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21:1-4절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고 다시는 사망, 애통,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없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22:1-5절에는 영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종 완성인 영생은 첫째, 영원한 축복상태로 영원한 생명과 함께 즐거움, 풍성함, 안식, 평화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며 섬기는 예배로 충만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하에 우리가 영원히 다스리는 것입니다 (계 22:1-5).
우리 모두 세상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인해 하늘에서도 낳아지는 거듭나는 중생의 축복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중생의 축복을 끝날까지 하나님께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돌리며 사시길 축원합니다 (본문 58절).

2. 신앙인들에게 남들이 피하고자 하는 죽음까지도 축복이 되는 이유는, 죽음은 영화glorification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이생에서의 육체는 비신앙인과 다름없이 죽습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 그 이유는 이 세상의 혈과 육으로는 신령한 하나님 나라에 참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50절). 따라서 한 알의 씨가 죽은 후 아름다운 많은 열매로 승화되듯, 영생을 위해서는 한 번 육체적 죽음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훗날 신령하고 영화로운 육체로 부활되는 것입니다 (고전15:42-44; 51-53).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영화로움을 얻기 위한 한 과정이요 단계입니다. 우리 현재의 몸은 변화되어 성령이 거하시기에 합당한 성전의 의미로서의 신령한 몸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늘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 우리의 천한 몸을 친히 자신과 같은 영광의 몸으로 변케 하실 것입니다 (빌 3:21).
애벌레에서 꼬치로, 꼬치에서 변화되어 푸르른 창공을 나르는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이 우리가 천국 하늘에서 누리게 될 생명의 부활과 영광의 모형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가지신 영광의 몸과 같은 영화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처럼 복음은 신앙인의 육체적 죽음후에 있을 아름다운 천국생활로 인도합니다. 고전 2:9은 이사야 64:4을 재인용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줄 하나님의 엄청난 배려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할렐루야!
C. S.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 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일해야 하는 때는 지났다. 휴가가 시작된 것이다. 밤은 끝났다. 지금은 아침이다. 이 세상에서의 그들의 일생은 ... 겉표지나 제목이 적힌 맨 앞장에 불과했다. 이제 드디어 세상 누구도 읽어보지 못한 위대한 이야기의 제 1장이 펼쳐진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계속되며, 모든 장들은 그 앞의 것보다 더 훌륭하다.”

심지어 복음을 영접하고 체험하며 신실하게 생활하는 신앙인들 중 일부는, 이 세상에서의 육체의 죽음을 보지 않고 홀연히 변화되는 사건을, 즉 휴거(rapture)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참예하게도 될 것입니다 (살전 4:16-17). 에녹 (일반 신자들의 모형) 과 엘리야 (사역자들의 모형) 의 경우가 이에 대한 구약의 모형입니다.
우리 믿는 신앙인들에게도 현세의 죽음을 이기는 놀라운 사건이 곧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에녹과 엘리야처럼 육체의 죽음도 체험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분들도 있을 것이고요!!!

우리 신앙인들에게 죽음은 더 좋은 영생의 삶을 살게 되는 시작입니다. 복음이 있기에 우리는 육체의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 신앙인들은 현세에서도 살고, 단 한번 육체의 죽음 후에 천국에서도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사는 “두번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인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는, 복음의 능력을 향유하시는 우리 모두 되시길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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