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But jesus turning unto them said, Daughters of Jerusalem, weep not for me, but weep for yourselves, and for your children. (Luke23:28)
우리는 100세 시대에 도래했습니다.
특별한 사고를 당하지 않거나 큰 병에 걸리지 않는 한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중에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병이 암입니다.
사망자 가운데 암으로 죽는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암>심장질환>폐렴 순으로 전체 사망의 45%를 차지합니다.
암에 걸린 확률이 약 남자38%, 여자32%가 걸려 3명 중에 한명은 암에
걸린다는 통계입니다.
암에 걸려도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암 환자 생존률이 요즘 70%가 넘습니다.
암환자 2/3 이상은 암 진단 후 5년 이상 생존합니다.
(갑상선>전립선>유방암)
매년 상승을 해서 암환자 절반 이상이 완치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암 환자들 중에서 가장 치료하기 힘든 환자는, 마음이 돌처럼 굳어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수술과 방사선, 약물치료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굳어진 마음을 푸는 것이 가장 우선해야 할 치료랍니다.
마음의 상처와 아픔은, 굳은살이 되어 우리 마음을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만듭니다.
돌처럼 굳은 딱딱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제가 눈물입니다.
사람들은 이 눈물을 두고 신이 내린 자연치유제라고 부릅니다.
천연 항암제인 눈물을 마음껏 흘리면 감정과 체면도 응어리도 풀리고 해결되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순수한 눈물이 마음과 영혼을 치료합니다.
눈물을 흘리면 신경전달 물질이 많이 분비되며, 이것은 면역항체를 두 배
이상 증가시켜 암세포를 억제하거나 감소하게 한답니다.
또한 눈물은 독소를 중화시키고 소화력도 크게 활성화 시킨다고 합니다.
말 못하는 어린아이의 가장 큰 무기는 눈물입니다.
울면 다 해결됩니다. 배고파도 울고, 아파도 울고, 괴로워도 웁니다.
아이가 울면 엄마는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눈물은 진실을 말합니다. 진실한 감정이 눈물로 나타납니다.
슬플 때도 울고 그리울 때도 웁니다. 뿐만 아니라 기쁠 때도 웁니다.
또한 눈물은 거룩한 전염을 시킵니다. 눈물은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감동을 전합니다. 눈물 자체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눈물이 메마를 때 삶이 삭막해 집니다.
하나님도 눈물을 보시고 응답하신 적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병들어 살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왕의 체면도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통곡의 눈물로 변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준다고 알려주라. 내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았노라.”고 했습니다. (사38:5)
진실하게 흘리는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은 감동하셨습니다.
제3공화국 초기 수많은 젊은 남녀가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송출되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
정부는 이들의 월급을 담보로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독일 정부는 박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하게 되었고. 당시 박대통령에게는 타고 갈 특별기조차 없어 독일 정부가 제공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했습니다. (64,12,10)
박대통령은 먼저 함보른 광산촌을 방문했습니다. 조국의 대통령이 왔다는
소식에 일하던 광부들이 석탄가루를 쓴 채 모여들었습니다.
그들 앞에서 연설을 하던 박대통령은“조국이 못살고 가난하여...”라는 말을 하다가 슬픔에 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함께 있던 광부들도 대통령이 울자 이국땅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박대통령은 계속해서 눈물을 쏟았답니다.
옆에 있던 독일 뤼프게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 마시오. 당신이 잘사는 나라를 만드시오” 라며 위로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지도자의 진실한 눈물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켰고, 가장 짧은 시간에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다.’고 탄식했습니다. 감성이 메마르고 심령이 마비되었다는 지적입니다.
현대에는 IQ가 높은 지성적인 사람보다 EQ가 높은 감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두뇌는 명석한데 인간미가 말라버린 사람보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 감성이 풍성한 사람이 인간관계를 잘 맺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를 때, 울면서 따르던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28절)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울면 해결됩니다.
울어야 하는데 눈물이 말라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시대는 진실한 눈물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는지 눈물의 가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성도가 흘려야 할 눈물이 있습니다.(27-28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 고 하십니다.
1)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향한 눈물이 있어야 한다.(28절) 고 했습니다.
은혜중에 가장 큰 은혜는 자신을 제대로 보는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주님도‘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향한 눈물이 필요합니다.
은혜는 먼저 자신을 보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앞에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고 통곡하며 울 때, 천사가 나타나 부정한 것을 제하고 사명을 부여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16:)
바른 회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회개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영혼을 맑게 합니다.
회개를 통해 영혼이 맑아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밤마다 침상이 젖도록 눈물로 회개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달았을 때, 침상이 젖도록 회개하면서 울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실수와
허물은 있습니다.(시6:6~10)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인생 후반기를 더 귀하게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열락하던 한 청년이 눈병으로 심히 고통을 당하다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청년의 눈을 진찰한 의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눈에 살인적인 독이 감염되었으므로 두 눈을 뽑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므로 즉시 두 눈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절망 속에 처한 청년은 하나님을 떠난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밤 지난날을 회개하며 통곡하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밤새도록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날 청년은 두 눈을 뽑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는데, 진찰을 하던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토록 심하게 번졌던 독균이 깨끗이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의 눈물을 통해서 영과 육의 질병을 깨끗하게 치료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울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내가 변할 때 가정이 변하고 직장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나라가 변합니다.
자신을 바로 불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영안이 열린 사람입니다.
2) 또한,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는 다음세대의 희망이며 미래의 꿈나무 들입니다.
우리세대보다 더 나은 세대로 자녀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으로만 자녀교육을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줄을 놓치지 않도록 키워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떠나면 죽는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진실한 기도가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방탕한 자녀를 위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어거스틴은 비웃으며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말할 수 없이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이 돌아오기를 기도했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모니카는 암브로스 감독을 찾아가“내 아들 어거스틴을 하나님은 영영 버리시나 봅니다.
아무리 애타게 기도해도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10년을 기도했습니다.”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이런 모니카를 보고 있던 암브로스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한 아들은 결단코 망하지 않습니다. 계속 기도 하십시오.” 드디어 13년 만에 어거스틴이 변화되어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어거스틴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성경을 펴 보았는데‘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라’는( 롬13:13-14절)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보는 순간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이 떠올랐고. 어거스틴은 과거를 청산하고 돌아와 새사람이 되었고, 훗날 기독교 역사의 한 세기를 새롭게 한, 성자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가 있는 한,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눈물은 이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3)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서도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조국을 사랑했고, 조국을 위한 눈물이 많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바벨론 포로가 되어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을 생각하면서 노구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주저앉아 통곡했습니다.
진정한 성도라면 예레미야처럼 나라와 조국을 위한 기도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나라가 없으면 내가 존재 할 수 없고 행복이나 성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히틀러에게 6백만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들은 그 후 6백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으면서 눈물로 민족의 혼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후손들에게 그들을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라고 가르치고 있답니다.
아직도 분단된 조국을 생각할 때, 예레미야나 느헤미야와 같이,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한 눈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더 나아가 남쪽의 갈등을 치유해야 합니다.
2. 주님이 흘리신 눈물이 있습니다.(마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마 23:37-38)
1) 주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네 자녀를 모으려 함이 몇 번이냐고 하시면서 우셨습니다.
주님은 머지않아 멸망할 예루살렘의 미래를 아셨습니다.
주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성이 돌 하나 남지 않고 황폐하게
무너질 것을 생각하시면서 안타깝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타락한 이 시대를 보시고 울고 계실 것만 같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동성애 알몸 축제를 열어 소돔고모라 성을 만들겠다고 하니 이게 왠 말입니까?
주님이 서울도성을 바라보며 울고 계실 것만 같습니다.
우리가 의인의 손이 되어 막아야 합니다. 또한, WCC,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 이슬람, 신천지 같은 이단들을 막아야 합니다.
2)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우셨습니다.(요11:35)
한 인간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눈물입니다.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안 믿는 식구가 집안에 있을 때 견딜 수 없이 괴로워야 합니다. 때로는 금식도 하며, 철야도 하며,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눈물입니다.
3) 또한,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셨습니다.(마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을 부르면서 우리의 죄의 댓가를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주님도 우셨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죄는 세 가지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1) 하나님과 은혜관계를 파괴시킵니다. 죄를 짓고 나면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안식이 없어집니다.
(2) 죄는 기도의 응답을 파괴합니다. (사59:1-2)
(3) 죄는 축복관계를 파괴합니다.(창3:17) 주님은 하나님과 가로막고 있는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신앙의 가장 큰 위기는 눈물이 말라가는 것입니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조국을 위해,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손을
위해 은혜의 감동과, 눈물을 회복해야 합니다.
은혜를 깨달은 감사의 눈물이 필요하고, 은혜를 보답하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눈물 후에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세상을 보고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흘리는 기도의 눈물, 은혜의 눈물이 마르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