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느 9:1-6.
제 목 : 영성회복을 재건하세요.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에8:6) And Ezra blessed the LOR, the great God. And all the people answered, Amen, Amen with lifting up their hands: and they bowed their heads, and worshipped the LORD with their faces to the ground. (Nehemiah 8:6)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히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X2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생략)
2020년 8월 15일은 광복 75주년을 맞는 의미가 깊은 해입니다.
우리 민족이 싸움하지 않고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한 날이 2002년 서울 월드컵 4강 때와 광복절 밖에 없었답니다.
광복은 우리가 독립운동을 해서 일궈낸 복이 아니고, 일본 히로시마에 미국이 원자탄을 투하하면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는 바람에 얻은 해방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해방의 날이지만. 일본은 이날이 민족의 치욕의 날이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치욕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역사는 거울과 같습니다.
과거역사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백성,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우매한 민족입니다.
자기 역사를 부정하는 민족은 신뢰가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역사는 디딤돌과 같습니다.
역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정확한 과거의 역사를 거울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좋은 것은 좋은 데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대로 기록돼 있습니다.
다윗왕의 부끄럽고 수치스런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1:6절에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왕가의 부끄러운 가정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아니라 우리아의 아내를 통해 다윗이 자식을 낳았다는 부끄러운 가정사를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는 정확합니다.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경말씀은 진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시대를 인식하고 세 가지 소리를 질 들어야 합니다.
1) 역사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남긴 역사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입니다.
2) 양심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양심은 선악을 분별하도록 자신의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3)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고 하셨습니다.(사55:3)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70여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고, 무너진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하면서 있었던 많은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벽재건의 엄청난 일을 52일 만에 기적적으로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면 사람을 붙여주셨고, 자재가 필요하면 이방나라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공급해 주셨고, 적들이 괴롭힐 때 하나님의 손이 막아주셨습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후 첫 번째 나팔 절을 지키기 위해 유대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이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역사를 회고하면서, 에스라선지는 율법책을 낭독하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말씀을 들을 때 백성들은 다 울기 시작했고(9절)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사무엘선지자때 미스바 회개운동과 같은 역사입니다.(삼상7:5~6)
이때 수문 앞 광장에 모였던 백성들은 이 말을 듣고 세 가지 신앙개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이 느헤미야 여! 우리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첫째: 회개운동이요. 둘째: 말씀운동입니다.
셋째: 기도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도 이런 운동이 일어나야 삽니다.
한국교회는 일천만 성도라고 덩치만 컸지, 야성을 잃고 진리를 위해 복음을 위해, 싸울 용기가 없습니다.
강단에서 회개하라는 말씀이 사라졌습니다.
교회 권징조례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정치권을 향해서도 사회주의를 하겠다고 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도둑이 들어오는 데도 한번 짖지도 못하고 무서워 벌벌 떨고 있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의 송곳 같던 말씀들이 무디어졌습니다.
세례요한같이“회개하라”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그립습니다.
신앙(믿음)을 지키겠다는 야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허대만 커 가지고 다른 사람이 싸워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올해 8.15광복절 7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36년간 나라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름도, 성도, 언어와 민족의 혼까지 빼앗긴 슬프고 아픔 속에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이 해방의 기쁨도 잠시, 남북은 분열되고 민족끼리 싸우는 6.25전쟁이 일어나 폐허가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전 국토는 초토화 되었고, 우리는 1953년 $67달러로 세계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에서 $31,430로 500배 성장했습니다.
이런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민주화를 이루며, 우리 선조들이 다시 세계11위 경제 선진국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세계역사 가운데 이런 역사가 없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 어른세대들의 피와 땀으로 이룬 근현대화 역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철의 장벽에 갇혀 세계적으로 못 사는 나라로 전락했고,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동유럽을 중심으로 100여개 나라가 공산화를 했다가 뜨거운 맛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를 하겠다고 공헌을 해도 표를 주는 사람들은 도대체 같은 동족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북한이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유엔의 경제제재는 풀리지 않을 것이고, 뒤틀린 남북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75년간 한반도 평화통일을 하나님의 뜻이며, 역사의 필연으로 믿고 기도하며, 민족의 여명을 바라보면서
강단에서 외쳐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바벨론포로에서 구출하신 하나님께서, 한반도의 통일도 빗장을 풀어 주시는 역사의 현장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합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아놓고, 하나님의 은혜로 무너진 성벽을 완공하였는데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그 말씀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이 세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1, 하나는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9:1-2절)
1) 회개운동은 구별되게 살겠다는 결단입니다.(2절)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나실인 답게 살아야 합니다.
금식하며 굵은베옷을 입고 회개하면서 이방인과 절교를 선포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1)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2) 영이 맑아지고 지혜가 임합니다.
(3)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 평안이 옵니다.
(4) 기도의 응답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이방인들의 풍습을 따르고, 그들과 혼합되어 간음을 하며, 나실인의 거룩성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성도로서 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로서 거룩한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사기를 읽어보면 하나님 뜻대로 살면 은혜를 주시고, 돌봐 주시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하나님은 믿지 않는 불레셋을 통해, 아말렉을 통해, 바벨론을 통해서 채찍의 몽둥이로 사용하시면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하셨음을 역사를 통해 알려줬습니다.
(1) 바벨론 포로에서 70년간 갖은 고난을 당한 것이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였다는 것입니다.
(2) 코로나 문제도 우연이 아닌 역사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손을 보는 신앙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환경을 보면서 이러니, 저러니 하지 말고 신앙의 눈으로 보세요.
현상만을 보지 말고 본질을 보는 영안이 열리시길 축복합니다.
세계 첨단 문명아래 코로나가 우연이겠습니까?
느헤미야가 이런 과거역사를 회고해 줄때,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고, 이방인들과 절교를 결단하고, 이방인과 혼합된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1) 진정한 회개는 행동이 동반합니다.
(2) 마음만 회개한 것 아니라 생활이 구별되었습니다.
(3) 애굽에서 나와야 합니다.
(4) 길갈을 떠나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5) 이방인들과 절교하듯 성도는 행동까지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6) 구별되게 사는 것이 은혜 받은 자의 삶입니다.
어떤 사람이 룸싸롱에서 돈 벌면서 새벽 제단을 쌓는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1) 우리도 버릴 것과 정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 세상과 혼합에서 성별해야 합니다.(구별)
(3) 죄악에 매여 있는 줄을 끊어야 합니다.
(4) 걸터앉은 생활을 정리해야 합니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미련한 자는 미련한 것을 되풀이 한다고 했습니다.(잠26:11) 끊어야 합니다. 정리하세요.
사무엘도 미스바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을 버리라 그리하면 너희를 불레셋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고
했습니다. (삼상7:3)
도피성을 찾아야 합니다. 애급에는 열가지 재앙이 내렸지만 고센 땅은 안전했습니다. 주님 품이 도피성입니다.
2)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했습니다.(9:2절)
자기 죄만이 아닙니다. 조상들이 잘못했던 과거역사까지 자복하면서 회개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지은 죄가 아닌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성벽을 다시 재건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자기민족의 과거역사를 반성은 커녕 끝까지 왜곡하고 있어서, 우리 민족뿐 아니라, 아시아 주변국들과 갈등을 계속 일으키고 있습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가 유태인들을 학살했던 과거 자기조상들의 잘못을 사죄하면서, 유대인들에게 보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독일은 전범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진국이요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역사의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죄만 뉘우치는 것이 아니고, 조상들의 허물까지 후손들이 자복하면서 회개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축복해 주셨습니다.
과거 적폐라는 사회갈등이 우리민족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이 시대적 수문 앞 광장의 회개운동이 다시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또 하나 수문앞 광장에서 느혜미야가 하나님이 함께하신 역사를 회고할 때,
2, 백성들은 말씀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절)
1) 낮 1/4분의 시간을 일어서서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낮 1/4분은,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을 말합니다.
모든 백성들이 일어서서 3시간 동안을 율법책을 낭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1) 진정한 개혁운동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 말씀이 부흥운동으로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한 신앙운동입니다.
(3) 말씀으로 돌아가야 삽니다.
말씀이 모든 삶의 영역에 미쳐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영혼과 정신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기준이 되고 방향이 될 때 그 민족은 흥하게 됩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율법 책을 아침부터 읽을 때, 다 일어서서 백성들이 귀를 기울였다고 했습니다.(8:3)
너희는 내게 나와 귀를 기울이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고 했습니다.(사55:3) 성도가 사는 길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청종하면 삽니다. 사울 왕이 왜 무너졌습니까?
이는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를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상15:23, 26)
기독교정신의 최고의 가치관은 말씀이 살아있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이 성경을 풀어줄 때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고 했습니다. (눅24;32)
풀어 준다는 뜻은“열린다‘는 입니다.
말씀이 열릴 때 은혜의 불이 임 했습니다.
그 말씀에 백성들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돌아간 회개운동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말씀이 생명이요, 영의 양식이요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심령과 관절과 골수를 질러 쪼갠다고 했습니다.(히4:12)
하나님 말씀이 인생을 건강하게 전인격적으로 심령, 관절, 골수를 치료해 주십니다.
사람의 근본을 지식이 변화시키는 게 아닙니다. 윤리도덕으로 변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들으면 완악한 사람도 변화됩니다.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하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이 버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수문앞 광장에 역사가 우리 영안교회에도 일어나길 바랍니다.
생명의 말씀이 속에서 역사할 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사모하시길 축복합니다.
2) 또한,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다 울었습니다.(8:9절상)
말씀을 듣고 울수 있는 눈물이 있는 신앙은 은혜를 경험한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의 눈물은 고귀합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회개하며 흘리는 눈물, 감사해서 흘리는 눈물,
기도하며 흘리는 눈물, 사명을 깨닫고 흘리는 눈물 후에는 기쁨이요 희락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은 죽을 생명이 15년 연장되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민족정신을 깨웠고 멸망을 멈추게 했습니다.
한나의 소리없이 흘린 기도의 눈물은 한 시대를 깨우는 선지자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주님도 벧바게언덕에서 장차 멸망할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제사할 곳을 잃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배드릴 날을 사모하며 바벨론 강가에서 울때 포로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민족의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앞에 울어야 할 때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울어야 할 때입니다.
서서히 공산화로 물들어 가는 현실을 보며 울어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닫힌 교회 문을 열어 달라고 울어야 합니다.
거룩한 습관들이 깨어진 성도들의 영성회복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했습니다.(눅23:28)
대성통곡하며 울어야 합니다. 밤새 기도하며 울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울면 해결되듯, 하나님 앞에서 울면 다 해결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눈물이 마를 때가 가장 곤고한 때입니다.
현대는 IQ가 높은 지성적인 사람보다 EQ가 높은 감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두뇌는 명석한데 인간미가 말라버린 사람보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 감성이 풍성한 사람이 인간관계를 잘 맺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은혜의 감성이 메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인간의 가치관이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3. 또 역사를 회고하며 돌아온 백성에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느9: 8-10)
1) 하나님은 마음의 충성됨을 보셨습니다. (8절 상)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하나님은 어디를 보셨나요? 마음의 충성을 보셨습니다.
맡은 자들이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충성이란? 신실하다. 믿을만하다. 맡길만하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충성됨을 다 보셨습니다.
여러분의 충성됨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충성하다가 낙심하지 마세요. 성도는 주의 일 할 때 너무 사람의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시길 바랍니다.
환란과 고통,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잘 지키는 것 주님은 다 알고 생명의 면류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것 같으나 다 알고 계시고, 안보는 것 같으나 다 보고 계십니다. 반드시 일한대로 갚아 주십니다.(계22:12)
2) 또한,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9절)
애굽에서 고난받는 것을 감찰하시고 부르짖음도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작은 신음소리까지도 듣고 계십니다.
고통의 작은 신음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여러분의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신음소리도 큰 몸부림의 부르짖음도 다 듣고 계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다윗도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넓은 곳에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시118:5)
3) 또한,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셨습니다.(12절)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길을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1) 가나안의 축복의땅을 들어가려면 반드시 광야를 통과해야 합니다.
(2) 광야는 고달프고 힘든 길입니다.
(3) 그러나 광야같은 세상에서도 염려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광야에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고, 홍해가 앞을 막을 때 동풍을 일으켜 길을 만드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여러분의 길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역사를 회고하면서 신앙을 회복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다 마친 후,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 역사를 회고할 때, 회개하면서 이방인과 절교하며, 끊을 것은 끊고, 버릴 것을 버렸습니다.
마음에서 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끊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 울며 하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
감격하여 기뻐 울면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요, 은혜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영성회복이 재건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을 축복하셨습니다.
8.15 광복절 75주년을 맞이하면서 바벨론 포로생활 해방을 주셨듯이, 우리 민족의 남은 숙제인 평화로운 통일의 빗장을 하나님이 열어 주시도록 기도하세요.
그런데 국가통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여러분의 영성회복을 재건하는 일입니다.
영적으로 답답함은 다른 어떤 것보다 힘이 듭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세요.
눈물 콧물 흘리며 사모했던 그 영성을 회복하세요.
그들이 부르짖는 울부짖음은 하늘 보좌를 움직입니다.
주여! 이 분단된 민족의 복음통일을 지체하지 마시고 통일의 빗장을 풀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