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원망에 눈멀지 말고 이끄심에 눈을 뜨라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2022.03.12 06:29

 

제목 : 원망에 눈멀지 말고 이끄심에 눈을 뜨라 

본문 : 출애굽기 16:1-12

 

살면서 힘들어지거나 어려워지면 툭툭 튀어 나오는게 원망입니다.원망을 사전에 찾아 보니까” 못마땅하게 여기어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함 “이라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원망은 누구에게나 아주 자연스런 현상 입니다. 중요한 건 원망이 어디로 튀느냐 입니다. 원망에서 멈추느냐 아니면 원망을 가속화 하느냐 입니다. 중요한 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입니다. 

 

원망이 하나님과 대적하는 쪽으로 가는 경우 입니다. 자연히 더 많은 견고한 진들이 생겨 납니다. 원망은 스스로 미래의 삶에 걸림돌을 만들 뿐입니다. 원망은 스스로 무너지게 할 뿐입니다. 원망은 끼리끼리 수군거림, 중얼거림 하게 함으로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합니다. 원망은 방향을 잃어버린 채 갈팡질팡하게 합니다. 원망은 스스로 비천한 모습, 자격지심으로 씩씩 거리는 꼴불견 현상을 보입니다. 결국 원망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관계로 전락할 뿐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조금씩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오늘 본문 전에는 물이 없다고 원망을 쏟아 부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엘림에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오아시스를 제공해 주십니다. 

 

하지만 광야의 삶이 지속되면서 끊이지 않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바로 원망의 소리입니다. 백성들은 조금만 불편하거나 부족하다 싶으면  참아내지 못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불쑥 불쑥 원망이 툭툭 튀어 나옵니다. 

 

백성들이 건망증에 걸려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몇일이 지나지 않았는데 또 원망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부족함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믿음은 아예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전처럼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순수한 기억은 없습니다. 뭐든지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면서 또 원망을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첫째, 끊임없이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시는 하나님

2절을 보라.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우리를 왜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여기서 굶어 죽게 만드느냐는 원망입니다. 

민 20:5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지금 원망이 처음이 아닙니다. 원망도 나쁜 습관이 됩니다. 툭하면 원망하는 데 익숙해 집니다 .원망은 전염성이 빠릅니다. 

 

우선 왜 사람들은 원망을 할까 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하나는 과거에 대한 현재의 비교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라면 풍족한 때일 것입니다. 노예들에게 언제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불확실한 기억을 끄집어 내면서 지금의 현실을 비꼬는 투 입니다 

 

불확실한 과거에 이런 좋은 시절도 있었는데.. 이게 뭐냐.. 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여기서 주려 죽게 하느냐..라는 식입니다. 

 

또 하나는 떡을 배불리 먹던 때.. 라고 과장이 너무 심하게 말합니다 .

여기 보면 배불리 먹던 때에. 백성들의 과장된 표현을 보세요..노예들이 어떻게 배불리 먹을 수 있나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억지 주장 입니다 .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신섞인 말투로 투정 부립니다

3절에 주려 죽게 하는도다 는 말은 다 굶어 죽게 되었다 라는 의미 입니다 .이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가축들을 갖고 나왔습니다. 가축들도 목이 마르지 않도록 엘림에서 오아시스를 통해서 마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려 죽게 하는도다는 말은 믿음없는 행위 입니다. 불신이 가득차 있는 비아냥 거리는 말투 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원망의 이유를 찾아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원망의 이유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막연한 생각을 떠올라 그 때는 이랬는데..지금은 형편이 없다는 식으로 논리를 펴 갑니다. 과장법을 써 가고, 거짓말도 좀 덧붙여 가면서  원망을 합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골탕 먹이려고 이렇게 하느냐는 식으로 비아냥 거리면서 원망을 합니다 .

 

왜 이런 원망들이 일어날까요? 자기 생각이 하나님 생각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좁은 소견으로 하나님의 크신 생각을 스스로 닫아 버리는 경우 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생각과 계획에 자신을 맡기지 못합니다. 원망이 자기를 스스로 걸려 넘어지게 할 뿐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원망을 어떻게 처리해 가시나요.

원망하는 자들로 하여금 먼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다시금 보게 하십니다 .

여호와의 일하심을 알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결코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시지 않고 계심을 믿게 합니다. 

 

계속 반복되는 단어가 하나님께서 너희의 원망을 들으셨다고 계속 강조 합니다 .

7절, 8절에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정확한 워딩을 기억하신다는 말씀 입니다. 백성들이 원망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뭔지 정확하게 들으신다는 겁니다 .9절에도 그리고 12절에도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고 몇번에 걸쳐 말씀 하십니다. 

 

들었다는 말은 단순히 귀로 들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듣고, 받아들이고, 그들의 원망을 해결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고 원망을 그냥 들어주셨을까요. 그것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은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원망을 들으셨다는 말씀 다음으로 많이 반복되는 말씀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처방전을 보라

7절에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 

하나님은 툭하면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뭘까? 인간의 속성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성숙해져 가는 속도가 느림을 아십니다. 그냥 인간이 뭘 잘먹고 잘 마시면 변화되는 게 아님을 하나님은 아시는 겁니다 .

 

인간이 변화되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성령의 임재 밖에 없습니다 .

이미 1세기 초대 교회시절에 성령 충만을 경험했던 이들이 진정한 변화를 보여 줍니다. 이들이 보여준 성령 충만의 지속성이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배반과 배신을 더 이상 보지 못했습니다 .

 

원망을 들으신 것을 어떻게 처방해 주시나요..

4절 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하나님은 원망을 해결해 주십니다. 

 

저 같았으면 이 정도되면 야단 치거나 다 꺼져 버려 라고 말할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원망을 들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기로 원합니다. 4절 하반절에…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으시고 만나를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음식을 주시면서 몇 가지 원칙을 주셨습니다. 

하나가 날마다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4절에 나옵니다. 노동의 영성 입니다 .매일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노동의 영성 입니다 .육일은 열심히 일하라 하셨습니다.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양식을 잘 먹어야 합니다 .

 

둘은 각자 먹을 만큼만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16절 입니다.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절제의 영성입니다. 하나님은 각자 필요한 양을 계산해 주셨습니다. ‘한 오멜’만큼만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오멜로 되어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고 말씀 합니다. 

 

하지만 순종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거나 게으름으로 미리 몇일 씩 여러 오멜을 거두었던 사람들은 벌레가 생기고 썩어 냄세가 났다고 합니다. 더 많이 거둬가도 소용없도록 만드셨습니다. 꼭 먹을 만큼만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며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영성을 가르치셨습니다. 5절에 보면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고 말씀 합니다 .6일 동안 매일 한 오멜씩 거두다가 6일째에는 갑절이 되게 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안식일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는 겁니다. 놀랍게도 다른 날은 한 오멜이상 가져가면 썩어 벌레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위해 준비한 양식은 썩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만나를 먹게 하셨을까?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날마다 거두도록 하시고, 필요한 만큼만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며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개인 스스로가 게을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매일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주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근거라는 것입니다.

 

신 8:3에 “그분이 너희를 낮추시고 배고프게 하셔서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만나로 먹이신 것은 너희로 겸손하게 해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분이 너희를 낮추시고 배고프게 하셔서.. 가르쳐 주시려 함이라..광야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 속에서 이뤄지는 일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연단과 훈련을 기대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속에서 순종을 배우게 합니다. 광야는 허허벌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만나로 백성들을 이끌고 가심을 배우게 합니다. 

 

마지막, 광야의 삶은 원망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이끄심에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라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40년 동안 만나를 주셨다. 그리고 약 한달간 메추라기를 주셨다. 

메추라기를 주신 이유는 만나면 충분했다. 그런데 만나에 만족하지 못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분노 하셨다. 어디 한번 실컷 먹어 봐라 하며 보내 주신 것이 메추라기다. 그 메추라기를 먹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민 11:33-34을 보라.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고 말씀 합니다. 

 

메추라기를 먹고 죽었습니다. 욕심을 부리다 죽은 것입니다. 그들이 묻힌 곳의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 라 불렀습니다. 이들이 죽은 것은 물이 없어서 아닙니다. 탐욕때문 입니다. 광야에서는 만나 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데 , 파 배추 김 마늘이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광야에 묻힌 것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는 만나만 내려 주셔도 감사하며 사는 겁니다. 메추라기가 없다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의 메추라기..좀 불편하다고 좀 힘들다고 불평하기 보다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사는 겁니다 .

광야를 지날때는 이슬만 내려 주셔도 감사해야 합니다. 큰 비를 내려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로뎀 나무 그늘이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느티나무 그늘이 없다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매일 암송하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 합니다. 우리는 정말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있는지? 만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메추라기를 구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한 순종을 배움

하나님의 원하시는 길로 따라오게 하심이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에 따라 가던 길을 멈추거나 머물러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일주일 이상 아니 일년 이상 멈춰 서게 하셨습니다. 갈 길이 먼데 왜 빨리 가지 않느냐, 왜 이이렇게 오래 머무느냐,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내가 속도와 방향을 정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속도와 방향을 결정합니다.

이들은 이러면서 순종을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광야에서 더욱 섬세하십니다.

느 9:21에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라고 말씀 합니다. 

 

옷이 헤어지지 아니하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주 작고 세미한 것조차 신경 쓰십니다.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니 내게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고 다윗도 고백 합니다. 

 

이 광야에서 죽게 하겠는가..

출 16:3절 하반절에 …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원망하는 사람들이 모세와 여론에게 악의가 있거나 악한 의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을 죽이려 했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들을 보라. 전혀 얼토 당토한 것들로 원망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굶어 죽게 만드는가 라고 의심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생명에 아무 지장이 없도록 채워 주신다. 

양식을 주셨다는 사실 입니다. 이슬의 은혜 입니다. 바로 만나의 은혜 입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만나를 통해서 먹을 것을 주셨고 굵어 죽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광야의 삶을 보면서 지금 코로나 광야를 걷고 있는 우리 들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

광야의 삶이지만 하나님은 결코 주리지 않게 하신다는 확신 입니다. 하나님은 이슬 같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코로나 광야의 힘든 시기를 결코 개인의 욕심을 부리지 말고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면서 코로나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광야의 삶은 큰 비를 원치 않습니다. 이슬의 은혜인  만나로 충분 합니다. 하루에 충분한 양을 먹고 건강하게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

 

코로나 광야를 보내는 성도들이여..

원망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눈의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길을 이끌고 가십니다. 그 분의 이끄심에 때론 인내로, 때론 기다림으로 때론 감사로 반응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목마르지 않도록, 굶어 죽지 않도록,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광야가 없는 삶은 없습니다. 비단 코로나 광야만 광야가 아닙니다 .우리 삶이 광야의 삶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영적 소통이 끊이지 않기를 기대 합니다. 광야에서 결코 게으름을 피우지 맙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봅시다. 이걸 보지 못하면 눈이 멀어 원망이 끊이질 않을 것입니다. 

원망은 굉장히 파괴적인 특성을 갖습니다. 원망하면 할수록 자신의 삶은 부숴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빌 1:14에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고 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틀에 갇혀 있으면 절대로 성장이나 발전은 없습니다. 

원망은 믿음을 약화시키고 두려움을 키웁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불신하게 합니다. 원망에 눈이 멀어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결국 원망으로 인한 어리석은 생각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이해의 눈이 어두워 집니다. 생각을 혼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도록 생각하여 어리석게도 자기 마음대로 신을 만들어 냅니다. 

 

원망이나 투덜거리는 이유는 사람이나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마치 누군가 호텔에 무료로 숙박하게 해주었습니다. 주인이 관대하게 제공한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못하여 불만을 터트리어 주인을 지치게 하고 성가시게 하는 겪입니다.

 

백성들은 우리를 주려 죽게 하는도다 라고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주렸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로 건강한 생명을 갖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사는 방식은..

조금 불편하다고 조금 모자란다고 더 이상 원망의 틀에 갇혀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습관화된 원망에서 떠나 더 이상 투덜 거림에서 중단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고 가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들의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하나님의 이끄심을 기억하는 겁니다 .

 

원망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호와를 기억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늘 기억하라 는 단어를 강조 합니다. 왜 우리가 불평과 원망이 자주 일어날까요? 우리는 자꾸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원망 합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당신의 삶 전체에 걸친 하나님의 지문을 뒤돌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지난 2년여 동안 어떻게 코로나 팬더믹에서 보호해 주셨는지 기억해 보는 겁니다. 힘든 코로나 시기에도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잠잘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해 보는 겁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는지 기억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을 기억해 본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원망 보다는 감사가 넘쳐 날 줄 확신 합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에 감사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원망에 눈이 멀어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눈이 뜨여 감사로 화답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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