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믿음의 길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2022.03.26 08:05

 

제목 : 믿음의 길

본문 : 잠언 1:10-19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 김형석 교수님이 출연했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현재 103세 입니다. 사회자가 질문을 합니다. 103세가 되기까지 믿음의 길을 지켜 오셨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질문 합니다. 두 가지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욕심부리지 말라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남 욕하지 말고 감정을 아름답게 하라 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요? 

성도가 가야 할 길은 분명 합니다. 십자가의 길, 믿음의 길입니다. 환난 앞에서도 위기 앞에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시기라 할지라도 십자가의 길에서 이탈하면 안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고백 합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달려가는 길에 너무나 많은 유혹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더라면 쉽게 무너지고 유혹에 포섭되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유혹을 물리치기기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게 했다고 강조 합니다. 

 

달려가는 동안 육체적 피곤이 가중됩니다.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길, 믿음의 길에서 결코 이탈하지 않습니다. 우선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결과가 어떠했는지 알려 줍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었다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길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힘써  합니다. 어떻게 믿음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할까요?

 

첫째, 악한 자들이 날마다 유혹한다 할지라도 결코 허락하지 말라

10절에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고 합니다.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꾀는 이유가 뭘까요?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겁니다. 꾀는 것들을 보면 시시한 게 아닙니다. 솔깃하게 합니다. 꾀에는 반드시 숨겨진 함정은 있습니다. 눈에는함정은 보이지 않아요..모든 게 완벽해 보여요.. 그러다 보니까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쉽게 설득 당합니다. 

 

믿음이 약하면 단호한 거절이 어렵습니다. 조금이라도 뜸을 들인다거나 미적 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마귀는 그 틈을 타서 더 집요하게 달려들 것입니다. 미연적인 태도는 “실은 나 마음은 있긴 있는데 좀 겁도 나고.. 두렵기도 하고 ..” 뭐 그런 무언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왜 성도들이 미연적인 태도를 보일까요? 왜 단호하게 거절하거나 끊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마음 구석에 욕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 1:14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악인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자가 유혹 할때는 반드시 미끼가 있습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니라.. 미혹 이라는 단어가 바로 미끼 입니다. 욕심을 부추키기 위해서 미끼를 던집니다. 미혹이라는 단어는 낚시 용어입니다. 미끼를 던져 놓으면 물고기가 미끼를 먹다가 낚시바늘에 걸리는 것처럼, 욕심에 끌려 나도 모르게 그것이 나를 죽이는지 모르고 덥석 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미끼는 그냥 미끼가 아닙니다. 듣기에 달콤합니다. 보기에 보암직 합니다. 이미 우리는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유혹 할때에 하와가 보인 반응을 보세요.. 먹음직 하고 보암직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고 합니다. 

 

미끼가 던져주는 또 다른 유혹이 뭔가요? 미끼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환상을 보게 합니다. 

사람들에게 뻥튀기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단번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승진은 따논 당상이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당신을 좌지우지 못할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게 하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 버리는 겁니다. 듣고 있노라면 벌써부터 흥분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홀딱 넘어갑니다. 

 

그리고 미끼 속에는 거짓말로 걱정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을 해소시켜 줍니다. 

즉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음을 잊게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아니오 라는 단어를 올바르게 사용하면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악인들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해소 시키기 위해 별의 별 달콤한 말로 no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쉴드를 쳐 놓습니다. 결국 아니오를 사용하지 못하면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을 보라. 

19절에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이익을 탐하는 자들의 종말을 보라. 자기의 생명을 잃어 버린다. 고 말씀 합니다. 

 

유혹의 미끼을 덥석 잡고 사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주로 합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자기 정당성을 갖고 삽니다. 그런 삶이 어느새 나의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양심은 무디어 졌고, 진리는 내 안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주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정복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성 전투를 합니다. 전리품을 절대로 개인이 취득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엔 안중에 없습니다. 욕심이 가득차면 이런 생각을 갖고 행동 합니다. 내가 좀 취한 다가 설마 알까 하는 마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설마가 사람 잡는 다는 말도 있습니다. 설마 내가 좀 주머니에 챙긴다고 한들 알 수 있을까 ? 혼자 생각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행동 합니다.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의 결과는 동일합니다. 자기의 생명을 잃는 다고 합니다. 마음의 욕심 때문에 한 순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결국 어떻게 되나요? 욕심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결국 한 사람의 유혹의 손길이 결국에는 민족 전체에 아이성 전투에서 엄청난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와가 보여준 정말 큰 실수가 뭘까요? 생각의 게으름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생각의 게으름이 하나님을 잠들게 합니다. 달콤한 뱀의 유혹 앞에 하나님의 말씀은 아예 생각조차 못합니다. 그저 앞에 보이는 교만한 미끼만 덥석 잡아 버립니다. 그렇기에 하와에게서 아니오 라는 귀중한 단어가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되지 못합니다. 

지식의 말씀이 둔하여 지고 게으르게 되면 육적인 행동이 빨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까봐 서두르게 됩니다. 마음이 급해 집니다. 발이 급해 집니다. 말이 빨라 집니다. 

 

한 사람의 올바른 결정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반면에 한 사람의 이기적인 선택은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 오게 합니다. 아픔과 실망에 빠져 들게 합니다.

 

왜 이들은 툭 하면 유혹에 넘어갔을까 진지하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입니다. 혼은 이성 과 경험 입니다. 육은 욕망 욕심이 주도적인 상태 입니다. 영이 하나님 중심성이라고 한다면 육은 자기 중심성 입니다. 철저한 자기 위주의 삶을 선택 합니다. 자기 이윤에 마음이 쏠립니다. 자기 배부름을 위해서라면 눈가림식의 삶에 조금도 양심에 꺼리낌이 없습니다. 

 

육이 앞서면 늘 욕심과 욕망에 눈이 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영적인 부분이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삶이 되다 보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세상적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이 살아 있느냐 아니면 육신이 살아 있느냐에 따라 선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믿음의 길로 가느냐 아니면 세상의 길로 가느냐가 결정됩니다. 어떻게 반응하는가 입니다. 육으로 반응하느냐.. 영으로 반응하느냐 입니다. 

자연히 이성이나 경험이 어느쪽으로 갈 것인가.. 계산을 합니다. 

 

왜 유혹에 쉽게 넘어질까.. 

영적으로 메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중요 합니다. 욕심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욕심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늘 깨어 있을 때에 올바른 분별력을 갖고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에 위태로워졌을때 입니다 .영이 죽으면 육이 행사를 결정하려고 합니다.

믿음이 충실했던 아브라함도 자기 생명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거짓말을 합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영이 죽어 있으면 진지하지 못합니다. 그저 아무거나 좋아 합니다. 가려 낼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저런 제안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진지하게 묻고 분류해야 합니다. 

 

삶의 힘든 시기가 지속될 때에 육적인 선택에 더 호감이 갑니다. 

그런 선택을 하면 할수록 뒷 감당은 더 어려워 질 뿐입니다.

 

더 이상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영적 상태를 쉬지 말고 메인터넌스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기도생활이 필요 한 것입니다. 

영성 생활을 통해서 내면을 수시로 확인해야 합니다. 내면이 지금 무슨 상태인지, 어떤 상태인지 그냥 점검은 어려워요.. 말씀이 내 안에 들어갈때에 내면이 지금 어느 수준인지 정확하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냥 겉으로 차를 보면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뚜껑을 열어 봐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분간을 잘 하려면 기준이 필요 합니다. 절대적 기준이 말씀 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주님과 동행함으로 믿음의 길을 가라. 

15절에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고 합니다.

 

그들에 함께 길에 다니지 말며.. 자신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동행은 과감하게 끊어야 합니다. 

이기적이고, 분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동행을 거부해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전염이 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사람에게 기대려고 합니다. 혼자는 겁이나고 어떻게 될까 두려움이 진취적인 삶을 스스로 가로 막습니다. 

 

성도는 엄청난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의 동행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고난과 고통도 대처 해 나가야 합니다 .

 

고통에는 '생산적인 고통'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생산적인 고통은 반드시 참아내고 헤쳐나가야 합니다. 고통에 맞서려면 두려움이 따르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성숙을 향해 크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생산적인 고통을 즐기는 믿음의 삶이 필요 합니다. 

성도는 게으름을 피우고 두려움에 얽매어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게으름과 두려움의 반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울이 고백하잖아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기근이나 칼이라.. 그 어느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자기 욕심에 눈먼 인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을 위한 생산적인 고통을 즐길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 확실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렘 17:7-8에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시 1:3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 합니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살아가면 됩니다. 늘 말씀이 내 안에 순환되게 하는 겁니다. 내 안에 말씀이 역동적으로 숨쉬게 하는 것입니다. 

 

영이 충만할 때에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모든 교훈들에게서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을 하면 좋은 점이 뭘까요?

거기엔 자기 비판을 할 줄 아는 믿음이 생겨 납니다. 

또 하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에 형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절실하게 느낌니다. 

 

때론 실수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넘어지는 나를 향한 완벽한 사랑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지금 믿음의 길에서 이탈한 채 살고 계시나요.. 이유가 하나님은 나를 실망시켰다고해서, 하나님은 도대체 내 기도를 들어준 적이 없어 화가 났다구요.. 매사에 좋은 일 보다는 꼬이는 일이 많아서 이탈했다구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성서에서 이탈한 자, 다양한 종류의 탕자들, 잃어버린 양들을 향해 예수님이 보여주신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끊임없는 용서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일흔번씩 일곱번 용서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은 변덕스런 죄인들, 넘어지는 자를 야단치거나 훈계 하지 않습니다. 넘어진자를 향해 먼저 손을 내마십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 끌어 당겨 일으켜 세우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게 하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과 제대로 된 관계를 유지하면 하나님은 견뎌낼 힘을 주십니다. 

스스로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영적 자존감을 주십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지만 결국 믿음을 붙잡고 살 때에 아름다운 마무리가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룻을 보세요.

룻이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게 되었다면 육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룻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바라 봅니다. 

그러니 여유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습니다. 돌짝밭 같은 현실속에서 믿음의 길을 아주 담대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생산적 고통을 즐기는 사람은 다른 이들의 연약함을 참아 줍니다. 스스로 타인을 위해 영적 버팀목이 되는 것을 즐거워 합니다. 룻이 지쳐 있는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향해 영적 발판이 되어 줍니다. 자신을 밟고 뛰어 넘게 합니다. 축쳐진 영적 상태를 생명력 넘치는 상태가 되도록 영적 펌프질해 줍니다. 

 

룻이 나오미와 동행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파워가 바로 언어 입니다. 말의 힘입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하는 말을 보세요..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상대방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하여금 신경끄기 작업을 합니다. 불필요한 생각들을 제거해 줍니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생산적인 믿음을 갖게 합니다. 

 

베들레헴을 향해 나아가는데 머뭇거리지 않게 합니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이런 동행자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주변엔 믿음을 상실한 사람들, 하나님을 향해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동행자가 되어 주는 겁니다. 

 

함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삶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려는 유혹과 믿음을 대적하는 자들 앞에 “저항”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죄에 대해 아니오 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생명을 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앞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믿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도 일생동안 동일한 길을 가도록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부르셔서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고 우리를 안심시키십니다. 

 

하나님의 길엔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각자를 향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최고의 코디네이터 이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속에 내 삶을 맡기는 겁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내 삶의 방파제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때론 유혹으로 길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주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내십니다. 

뻔뻔스럽게 욕심에 사로 잡혀 사는 양이라 할지라도 결코 놓치지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믿음의 길이란 하나님이 항상 인도하심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삶입니다. 

늘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날마다 성장하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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