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사도행전 20장 22-24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2.07.10 20:33

 

본문말씀: 행20:22-24

제  목: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But none of these things move me, neither count I my life dear unto myself, so  that I might finish my course with joy, and the ministry, which I have received of the Lord Jesus, to testify the gospel of the grace of God. (Act 20:24) 

 

 

바울은 예수님께 받은 사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만의 사명이 아닌, 모든 주의 종들의 사명입니다.

 

주의 종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사명(使命, mission)과 소명(召命, calling)입니다.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심부름을 시키려고 세상에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났을지라도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은 그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사명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주여!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깨닫게 하소서! 

 

사도 바울의 사명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입니다.

 

사명자의 삶을 위해서 세 가지를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먼저: 사명을 찾아라!

 

둘째: 사명에 확신하라!

 

그 다음은 사명에 순종하라 입니다.

 

사도행전 20장의 배경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때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소아시아의 마지막 거점인 ‘밀레도’ 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바울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라 하였습니다.(딤후4:7)

 

즉 바울이 믿음으로 자기의 갈 길을 잘 마쳤다고 피력한 것은, 그가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에 충실하였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목적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반드시 체포되어 죽임을 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가보선지자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4절)

 

바울은 내가 죽는 것이 사명이라면, 얼마든지 죽을 각오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내게 맡겨진 사명이 분명하다면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을 때는 죽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활동했던 리빙스턴은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이 있는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리빙스턴은 1840년 의료 선교사로서 남아프리카에 파견되었습니다.

 

이 때 그는 한창 젊음을 발산하는 27세였습니다.

 

사람의 발길조차 드문 두메산골까지 들어가 전도사역에 진력했습니다.

 

그러다가 전도와 의료를 겸하면서 아프리카 각지를 탐험하기 시작했고 세계 사람들에게 오지의 땅인 아프리카의 실상을 밝혔습니다.

 

그는 탐험을 계속하는 동안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는데, 다행히 스탠리의 수색 탐험대를 만나 구출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만났는데, 그 때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리빙스턴은 자신의 경험으로 "사람은 자기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 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신념을 가지고 계속 탐험과 선교를 강행했습니다.

 

그 후 리빙스턴은 사역을 하다가 1873년 이질로 사망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신 증거가 정령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너희가 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쉬운 길이 아닌 바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편한 길이 아닌 옳은 길을 가고,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이라도 생명의 길로 갑니다.

 

갈림길에 놓일 때, 양심과 믿음을 따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매를 맞고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라고 고백하며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편한 길을 택했다면, 왜! 순교의 길을 가겠습니까?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를 대표한다면 저는 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끝까지 저항한 애국운동을 하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47세의 젊은 나이에 옥중에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한국교회에 유일하게 남긴 유산이 있습니다. 

 

목회 철학으로 삼았던 ‘일사각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입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의 신앙이 바로 일사각오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가장 힘 있는 사람, 무서운 사람은 죽을 각오하는 사람입니다. 

 

싸우려고 덤비는 사람이 아니다. 죽으려고 덤비는 사람이랍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성령의 인도라면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사명을 위해서 생명까지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세상 만물은 모두 다 사명이 있습니다. 

 

나무는 열매 맺을 사명이 있고, 꽃은 피는 사명이 있고, 마이크는 소리를 내는 사명이 있습니다.

 

개는 짖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둑이 들어왔는데 개가 안 짖더랍니다. 

 

주인이 왜 너는 도둑이 들었는데 짖지 않느냐고 했더니, 개가 하는 말이 우리 집 주인이 부정부패하는 도둑이라 안 짖었다고 하더랍니다. 

 

모든 만물이 사명이 있는데, 그리스도인이 왜 사명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남아 있습니까?

 

 

사도행전 27장에 유라굴로 광풍은 미친바람입니다. 

 

광풍이 일어날 때 하나님이 살려주신 건 바울이 불쌍해서 살려준 게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 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신 것도 불쌍해서가 아닙니다. 

 

히스기야로 하여금 해야 할 사명이 남았기 때문에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시간이 많아서 주의 일 하는 게 아니라. 주의 일하라고 하나님이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2) 건강해서 주의일 하는 게 아닙니다. 

  주의일 하라고 건강을 주신 것입니다.

   

(3) 소유가 많아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일 하라고 소유를 주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4) 재능이 뛰어나서 봉사하는게 아니라, 봉사하라고 재능을 주셨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받은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달란트)

 

사도바울처럼 사명 따라 살기를 기도하세요. 

 

사람은 오래 사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더 중요합니다.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과 사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자신의 사명에 대한 고백입니다. 

 

나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라면 복음을 위해 죽을 것도 각오했노라 고 하는 일사각오의 신앙고백입니다.(24절)

 

지금 모든 사람들이 3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너무 고생을 했습니다. 

 

교회(신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런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영혼의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기도자로, 멈출 수 없는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온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의 일사각오의 신앙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1. 바울은 오직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22-23절)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22절)

 

‘성령에 매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 붙잡힌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승리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23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고 환란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 성도들이 울면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때 행21:13에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는 일사각오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도행전의 중심은 오직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 삶속에서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성령에 매였다고 했고(22절),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였습니다.(23절)

 

성령을 감독자로 삼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고 했습니다.(28절)

 

바울은 오직 성령에 사로 잡혀서 편한 길이 아닌, 오른 길, 쉬운 길이 아닌 바른길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의 길, 사명의 길, 진리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지금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결박이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할지라도 나는 그곳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왜? 성령이 나를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붙잡혀 살아갑니까? 

 

사도 바울처럼 성령에 붙잡히길 바랍니다. 

 

1) 성령은 우리의 스승이 되십니다. (요14:26-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절)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26절)

 

몰라서 잘못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모릅니다. 

 

성수다리가 끊어 질 때, 그 시간 끊어질 줄 알았다면 누가 그곳을 지나가겠습니까?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 무너질 줄 알았다면 그 시간 누가 거길 들어가겠습니까?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지진이 나서, 짐승들은 다 도망을 했는데 사람들은 해일이 밀려올 때 까지 보트를 타고 물놀이를 하다가. 23만이 죽었습니다. (2004,12,26 규모9.1-9.3)

 

인간이 지혜로운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하답니다. 

 

돼지가 미련하다고 하지만 80% 이상 먹지 않는 답니다. 

 

사람은 150% 먹고 위장병이 걸리는데, 돼지가 위장병 걸렸다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성령은 인생의 길을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지혜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생각나게 하십니다.

 

회개할 것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베드로에게 하찮은 닭 울음소리가 주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명이 생각나서 회개하고 뜻을 돌이켰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신 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먼저 성령님을 의지하세요, 성령께 길을 물으세요. 

 

성령께서 우리의 스승이 되셔서 믿음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2) 성령은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아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롬8;26)

 

(1)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질, 건강, 이성 등)

 

건강하고 잘 나가던 사람도, 연약한 한 부분 때문에 무너집니다.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때로 너무 큰 충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재난을 만날 때, 불치의 병을 선고 받을 때,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도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누군가 날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찬) 누군가 날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바울처럼 성령께 붙잡히길 축복합니다.

 

2. 바울은 복음에 미친 사람입니다. (24절) 

 

‘내가 달려갈 길’.....(24절)

 

1) 내가 달려갈 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려는 길은 천천히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달려갈 길이라고 합니다.

 

달려갈 수 있는 길은 여행자처럼 천천히 구경하며 가는 길 아닙니다.

 

달려갈 길은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빨리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의 목표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면 반드시 체포되고 죽을 것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심지어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바울이 띠로 손과 발을 묶이고, 이렇게 결박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행21:10-11)

 

그러나 바울은 가는 길이 분명하게 정해졌기 때문에,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발 당할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행21:13)

 

바울은 주 예수께 사명을 받았습니다.

 

바울에게 사명을 맡기신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셨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그분,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사울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오라고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고 있을 때 홀연히 빛이 하늘로부터 사울에게 비출 때 사울은 땅에 엎드렸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거늘(행9:4) 

 

사울은 “주여, 누구 시니이까?” 이르시되 (행9:5)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예, 누구.라구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9:6)

 

같이 길을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행9:7)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행9:8)

 

그리고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행9:9)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 라는 제자를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일어나 직가로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행9:10-1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행9:12)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합니다. (행9:13)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4-15)

 

사울의 목표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예루살렘 공회로 끌고 오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는 목표를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지려면 사울과 같이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세미한 음성을 들려야 합니다.

 

3. 바울이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은 무엇입니까?

 

 예수께 받은 사명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 입니다.(24절)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려고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과거에 세웠던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바울이 머물고 있던 ‘밀레도’ 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계획을 말합니다.

 

바울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아가보’ 의 예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행21:10)

 

‘아가보’ 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손과 발을 묶은 후에 이 띠의 임자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체포가 될 것이라고 실물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11절)

 

성령의 감동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바울은 체포되는 것과 죽는 것도 무서운 것이 없었습니다. (13절)

 

바울은 이미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내 목숨까지도 내래놓을 준비가 되었다고 당당하게 설교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사명’ 입니다. 

 

바울의 사명은 ‘복음’ 전하는 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는데 미쳤다고 했습니다. 미치면 삽니다. 

 

뭐든지 한 분야에 미쳐버리면 그 사람이 전문가가 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미쳐야 합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미쳐야 합니다. 예수에게 미친 사람, 복음에 미친 사람을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미치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설(덜) 미치니까 불행해 집니다. 

 

과일도 설익으면 못 먹습니다. 밥도 설익으면 못 먹습니다. 

 

신앙도 하나님께 목숨 걸고 미쳐버리면, 하나님 붙들어 주시고, 책임지셨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미쳤다고 했습니다.(행26:24)

 

1)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롬1:16)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1) 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2)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육적인 죽음, 영적인 죽음, 영원한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3)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공중권세 잡은 악의 영들을 정복하셨습니다. 

 

4) 주님은 지금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네 가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1)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롬8;34)

 

(2)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요14;2)  

 

  거룩한 성도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천국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3) 성령을 보내셔서 지금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4) 그리고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너희 본대로 다시 오리라.(행1:11) 재림의 약속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예수를 영접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요1:12)

 

여러분이 하나님 자녀입니다.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원수마귀를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됩니다. 

 

권세 있는 하나님 자녀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4.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10)

 

(1)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라.

(2)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3)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하나님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십자가에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죽음, 저주의 권세를 끊으셨습니다.

 

승천하시면서 모든 사람을 제자삼아 성부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생명보다 귀한 사명을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사명을 욕심으로 감당하면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을 은혜로 감당할 때, 성공의 길은 열릴 것입니다.

 

바울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었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려는 사람이, 세상 즐거움에 붙잡히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세상 즐거움을 포기해야 합니다.

 

심지어 바울은 자기 목숨까지도 포기했다고 합니다.

 

오직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의 일사각오의 신앙이 부럽습니다. 

 

복음에 사람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하고 마지막 설교를 ‘일사각오’ 란 주제로 하고 순교 당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성령께 붙잡힌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성령에 붙잡힌 사람, 복음에 미친 바울을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에서 가장 존귀하게 쓰셨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이 시대에도 성령의 붙잡힌 사람을 쓰십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하나님께 붙잡힌 삶이되시길 축복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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